‘모든 꽃은 언젠가 핀다’ - 박웅현이 만난 소리꾼 장사익
모든 사람은 꽃을 피우는 시기가 있다.
늦게 피는 꽃도, 일찍 피는 꽃도 있다.
꿈이 있다면 언젠가 꽃은 피기 마련이다.
보험사에서 사무를 보다가,
가구점에서 캐비닛을 옮기다가,
카센터에서 손님 응대를 하다가,
사십 대가 되어서야 마침내 소리꾼으로 꽃을 피운
장사익을 만나 본다.
박: 저기, 악기를 좀 하셨더라고요. 따로 배우셨어요, 취미 생활이셨어요?
장: 저는 악기를 배웠죠. 국악기를. 1985년도에 처음으로 배웠죠. 직장 생활하면서 틈틈이, 저녁에.
박: 그럼 아마추어로, 취미로 배우신 거예요?
장: 그렇죠. 실은 제가 1967년부터 3년 동안, 1970년도에 제가 군대 갔었거든요. 지금 종로센터 있잖아요. 화신백화점, 그쪽 가는 길에, 거기 제가 고려생명보험이라는 데 내근 사원으로 있었어요. 거기 낙원동에 보면 가수 학원들이 많았어요.
박: 그럼 그때도 노래가 좋으셨던 거예요?
장: 그렇죠. 제가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웅변한다고 목을 튀웠거든요. 한 5년 동안. 노래를 많이 부르고, 그때부터 고등학교 서울로 올라와가지고 소풍 때 노래 잘한다구 뽑혀가지고.... ‘그래 나도 가수해 볼까?’ 하고. 그래가지구 노래를 배웠죠.
박: 그때 악기를 배우신 거예요?
장: 아니죠. 안 배우고, 군대 가서 노래를 또 하고, 나와서 다시 직장 생활하면서, 직장에서 깨지고 터지고 하니까, 잊어버리기위해서 새로 소일거리 없을까.... 그래서 그때부터 단소도 한 1년 배우고, 또 피리도 아마추어 단체 가서 한 5년 배우고, 또 대금도 한 10년 배우고, 태평소도 한 3개월 배우고, 독학을 했죠. 태평소 좋아했죠. 태평소는 막 재즈 같애요. 막 불어제치고.
박: 그게 지금에 영향을 준 것 같으세요?
장: 지금은 제가 그 악기를 다 접었죠. 왜냐하면 태평소 같은 건 힘이 너무 들어가서 소리를 뺐어 먹어요. 노래가 잘 안 나와요. 그래서 다 접고. 그런데 국악적인 느낌이라든가 가락이라든가 이런 게 제 노래 속에는 완전히 깔려 있어요. 국악도 클래식도 있고, 정악이라 하는데, 그다음에 판소리라든가 사물놀이 같은 속악들이 있습니다. 대중음악처럼, 저는 이런 걸 전부 다 아마추어로 겪어 보고 공부 했기 때문에 이 바탕 위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박: 그때 악기를 배우실 때는 이렇게 가수가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하셨죠?
장: 그렇죠. 사회 생활하면서 힘들고 어려우니까. 음악으로 위안을 삼으려고 배웠죠. 그러니까 그런 과정들이, 웅변을 하고, 목청을 튀우고, 노래를 배우고, 국악기를 배우고, 그런 것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께, 결국 제가 노래를 하잖아요. 제가 끈을 잡고 있었던 거예요. 얘기들이 나오기 전에 엄마 탯줄을 붙들고 있잖아요. 제가 삶의 어떤 탯줄을 붙잡고 세상을 살았던 거예요. 음악의 끈을 놓지 않고, 어렸을 때 송창식 씨 나왔을 때 우리가 얼마나 기타를 쳤어요. 옛날에 갖고 다니는 전축도 많았잖아요. 하나씩 다 갖고 있었어요. 기타도 다 갖고 있었고. 그래서 옛날 양병수 씨라든가 YMCA 판도 고르고, 그걸로 기타 치고 노래도 가끔 하고, 감정 잡으면서 계속 혼자.....
박: 말씀 듣다 보니, 제가 [여덟 단어]라는 책에서 젊은 친구들한테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냥 열심히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다 보면, 그때는 의미 없어 보이던 것들이 연결되면서 나만의 별이 될 수 있다.’ 그때 악기 배우신 것들이 국악의 바탕이 되고.... 그때는 모르셨던 거잖아요.
장: 그렇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맨날 얘기하는건데, 노래라는 집을 짓기 위해서 저도 모르게 벽돌을 쌓은 거죠.
박: 그땐 벽돌인지도 모르셨죠.
장: 그땐 몰랐죠. 그게 인생이고 그런 거죠.
박: 그래서 제게 최근에 잡힌 화두 중 하나가, ‘할 뿐’이에요. 그냥 해라. 네 눈앞에 있는 거 그냥 해라. 마당 쓸고, 밥 먹고, 사람 만나면 만나고... 말씀 들어 보면 제 화두와 비슷하네요. ‘걱정하지 말고, 초조해하지 말고, 주변 사람 말에 휘둘리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하는 게 좋다.’
장: 그렇죠. 긍께 지금 멀-리. 물론 우리가 목표는 멀리 있는 높은 걸 생각하지만, 산악인 고 박영석 씨가 돌아가시기 4개월 전쯤 우리 집에 놀러 왔었어요. 저도 그날 처음 뵀는데, 조용하고 그러시더라고요. 근데 그분 얘기가 안나푸르나에 가는데, 안나푸르나에 목표를 두면서도 그 봉우리를 안 본대요. 요 앞 일 미터에 최선을 다한대요. 여기서 미끄러지면 말짱 헛거예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면 언젠가는 되는 것인데... 그리고 개똥 같은 소리지만은 아까 우리의 인생이 길 가는 것과 같다고 했잖아요. 우리의 길이 저 멀리 있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집 내려가서 이쪽으로 항상 가는데, 저쪽에도 길이 바로 옆에 있어. 근데 거긴 1년에 한두번도 안 가. 맨날 보는 가까운 길이지만, 가장 가까운 길,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거, 고거에 최선을 다하믄 뭔가가 돼요. 엉뚱한, 엄한거 가지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우리 아들, 지금도 놀고 있는데, 얘도 악기 하는데... 그때 한창 몸이 안 좋아서, 그때 결혼 전이라 같이 살 땐데, “야 임마, 여기서 저 홍제문까지 한 200미터 되는데, 6개월만 맨날 빗질하고 쓸어. 그럼 답이 나와.” 그랬는데 하루 이틀 하더니 그만 두더라고욧. 하여튼 그래서 스스로 나를 쓸고 허다 보믄, 누가 좋은 얘기, 나쁜 얘기하더래도 내가 나를 위해서 하는 거니까....
박: 아까 박영석 대장이 안나푸르나에 대해서 한 얘기를 듣다 보니 생각나네요.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한 말인데 제가 좋아서 자꾸 인용합니다. ‘인생을 대충대충 살아라. 하루하루는 최선을 다해 살아라.’ 이런 얘긴 거 같아요.
장: 그렇죠. 이 하루하루가 나도 모르게, 나한테는 큰 영향을 끼치게 되죠.
박: 마지막으로, 카센터 다니고 있고, 앞날이 안 보이고 불안했던 젊은 시절의 장사익에게 지금 상황에서 뭐라고 말씀해 주시겠어요? 뭐라고 한마디 충고하시겠어요?
장: 근데 그때 제가 세상에 자신이 없었어요. 내가 배우지도 못 허고, 많이 부족하고, 그래서 항상 깨지고 있었는데... 내가 젊은 친구들, 젊은 나한테 얘기하고 싶은 것은,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 부모님은 다 떠나갈 사람들입니다. 솔직히 부부도 그래요. 내가 나를 위해서 세상을 살어야지. ‘네가 담배 피우면 네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거여.’ 왜? 담배 피우믄 본인 폐가 안 좋잖아요. 마찬가지로 내가 술 먹으면 본인 간 나빠지고요. ‘아 우리 주인이 술 먹었다. 죽겠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운동도 않고 막 그런단 말이지. 내가 나를 믿고 사랑을 하고 확신을 가지면 뭐가 돼도 됩니다. 이 세상에 요만한 애들도 꽃을 피운단 말예요. 북한산 가면 요만한 것들도 방실방실 꽃을 피운단 말이죠. 아 이런 애들도 꽃 폈는데, 인간들이 세상에 나와서 한 타임을 어영부영 살 순 없는 거 아녜요. 제가 젊을 적에는 늘 주눅이 들었거든요. 자신을 갖고, 확신을 가지고 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그때 저도 계획 없이 살았지만은, 물론 한참 다른 길을 가서 음악이란 걸 가졌지만은, 무언가 하나, 이 세상에 나와서 딱 하나 무기를 가져라. 사람 죽이는 무기가 아니라 내가 남들보다 뭐래도 잘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것. 내가 세상에 나와서 가족을 차리고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기본이거든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별 거 아녜요. 세상에 나온 이유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은 세상에 반짝반짝 빛을 내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얼 해야 할 것인가? 그래서 자신을 가지고 목표를 가지고, 뭔가 하나만 가지고. 열정을 가지고 살면은 어떨까. 최소한 10년 이상 노력을 해서 투자해야, 인생을 투자해야 뭔가 결론을 얻지 않을까... 10년을 제가 가장 강조합니다. 10년이면 만사형통입니다.
박: 저도 10년 동안 붓글씨를 시작하겠습니다.
장: 됩니다. 무조건, 선생님은 감각이 있어서 기본은, 뭐 한 50퍼센트는 먹고 들어가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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