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의 숲으로

이춘아 2020. 12. 13. 07:14

김언호, [세계서점기행], 한길사, 2016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의 숲으로’


1973년 가을, 나는 신문사의 월간지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나는 편집회의에서 한신대 교수이자 민중신학자인 안병무(1992~1996) 선생에게 ‘사람으로 살기 위해’라는 주제로 원고를 청탁해 잡지의 권두에 싣자고 제안했다. 그때 우리는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불온시하던 정치 상황에서 가쁜 숨을 쉬어야 했다. ‘유신’이라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권위주의 권력의 폭압적 통치하에서 우리는 고뇌하면서 신문 잡지를 만들어야 했다. 사람으로 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나는 동시대인들에게 묻고 싶었다. 어떻게 살 것인지를 함께 성찰하고 그 해답을 모색하고 싶었다.

사람으로 살기 위해!

나는 이 메시지를 책 만들면서 나의 주제어로 삼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쓰고 만들고 읽는 일이란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다. 1970년대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책 만드는 나에겐 변함없는 주제적 질문이고 늘 탐구해야 할 해답이다.

나의 여행은 책의 숲으로 가는 여행이다. 책의 숲이기에 나의 여행은 늘 싱그럽다. 책의 숲이야말로 열려 있는 생명의 세계다. 인간정신의 유토피아이다. 인간의 사유는 한 권의 책으로 존재하고 발전한다. 인간의 열려 있는 사유를 담아내고 체계화시키는 책이야말로, 그 책들이 모여 있는 서점이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이다. 지혜의 합창소리다. 나의 여행의 궁극은 도시의 거리거리에 열려 있는 서점들이다. 저 변방을 밝히는 서점들이다.

책과 서점은 당초부터 열린 사유의 세계이고 자유의 세계다. 이런 책 저런 책, 이런 사상 저런 아이디어를 포용하고 관용하는 다원의 숲이다. 함용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상하이의 명문서점 지펑을 창립한 서점인 옌보페이가 말한 바 있다.

“서점이란 시대정신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공간이다. 서점이란 태생적으로 시민사회다.”

나는 세계의 서점을 탐방하면서 책의존귀함, 서점의 역량을 새삼 각성했다.
책 만들기와 책 읽기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했다.
책을 위해 헌신하는 서점인들의 정성에 감동했다.
물질주의자들과 기계주의자들의 디지털문명 예찬론과는 달리 종이책의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고 있음을 세계의 명문서점들애서 확인했다.
책을 정신과 문화가 아니라 물질과 물건으로 팔아치우려는 디지털주의자들에게 현혹당하지 않는 신념의 서점인들을 만났다.
독립서점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음도 관찰하게 되었다.
서점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치는 문화공간으로서
그 어떤 문화기구보다 탁월한 성과를 구현해내고 있었다.
서점은 총체적인 문화공간 담론공간이다.
사회적 문제의식을 이끌어내는 서점에서 우리의 생각은 승화된다.
세계의 서점인들과 책과 서점의 가치를 토론할 수 있어서
나는 행복했다. 우리는 이내 친구가 되었다.
서점인들의 책에 대한 정성과 정신, 헌신이 있기에
오늘도 출판인들은 한 권의 책을 위해 일할 수 있다.

나는 무너져 내리는 우리 서점문화의 현실을 한 출판인으로서 그냥 보아 넘길 수 없었기에, 만용을 무릅쓰고 세계의 서점들을 찾아 나섰다. 고단한 문명적 현실에서도 변함없이 서점의 가치를 지키는 서점인들과 만나 대화하고 싶었다. 경험과 지혜를 얻고 싶었다.

서점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나의 여정은 즐거웠다. 행복했다. 나의 취재여행은 빡빡했지만 늘 흥미로웠다. 책과 서점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정신과 생명이 약동하는 지식과 지혜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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