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도미니카넌 서점
‘800년 세월 품고 있는 장대한 고딕교회가 서점이 되었다.’
책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 피어 있는 인간정신의 꽃이다. 서점은 인간정신의 꽃들이 어깨동무하면서 군무하는 열린 공간이다.
1294년에 지어진 도미니크파의 고딕교회가 서점이 되었다. 가로 25미터, 세로 80미터, 높이 25미터의 장대한 공간이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찬란한 햇빛이 쏟아진다. 인간정신의 꽃들이 경이로운 자태로 다시 탄생한다. 책을 사랑하는 세계인들은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마스트리흐트의 보석같이 영롱한 서점 도미니카넌에서 고독한 영혼을 위로받을 수 있다.
책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도미니카넌서점에서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
고전이다! 나는 도미니카넌서점은 고전이라는 생각을 불현듯 했다. 위대한 고전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슬픔을 승화시킬 것이다. 무한한 세월을 인고해내는 고전이란 그 세월처럼 슬픔일 것이다. 플라톤(BC428~347)이 그렇고 지브란(1883~1931)이 그렇고 함석헌(1901~1989)이 그렇다. 우리의 눈을 슬픔에 젖게 하기에 고전이다. 그 슬픔이 우리의 삶을 일으켜 세운다.
2008년 [가디언]은 도미니커넌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고 찬탄했다. 2011년 그해 도미니카넌서점을 찾아간 나에겐 충격이었다. 오늘도 나는 도미니카넌서점을 꿈꾼다. 책을 극상으로 예우하는 도미니카넌서점은 2015년 여름 다시 찾아간 나를 편안한 친구로 맞아주었다. 찬란한 빛 속으로, 책의 숲속으로 나는 뛰어들고 말았다. 벨기에와 독일의 빛깔을 띤 인구 12만5천의 고도 마스트리흐트. 2011년 그땐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승용차로 두 시간 정도 달려 도착했다. 이번에는 파리에서 네 시간을 달렸다. 벨기에에서는 전차를 타고 네덜란드 국경을 넘으면 바로 마스트리흐트 역에 도착할 수 있다.
마스트리흐트의 응접실 프레이트호프 거리. 그 한구석에 자리 잡은 도미니카넌서점의 이력은 파란만장하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고딕건물이지만 1794년 네덜란드를 침공한 나폴레옹의 프랑스혁명군이 도미니크파를 퇴출하면서 교회로서의 역할을 마감했다.
프랑스 침략군의 마구간이 되었고 물품 보관창고가 되었다. 복싱시합장으로, 자전거 보관소로, 자동차 전시장으로, 소방서 장비 보관소로 사용되었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장이 되었고 여자핸드볼 경기장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시신보관소가 되었지만 한때 콘서트홀로도 사용되었다. 마스트리흐트 청소년들이 ‘키스댄스’를 하면서 나름 이성에 눈뜨는 카니발 공간이 되었다.
2004년 12월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네덜란드 최대의 서점체인 셀렉시스가 이곳에 서점을 열었다. ‘셀렉시스 도미니카넌’이라고 이름 붙였다. 도미니크 교회공간의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는 것이었다. 애플 같은 대기업이 탐내는 공간이었지만, 교회 소유권을 가진 마스트리흐트 교구는 이 교회 건물에 서점을 개설하겠다는 셀렉시스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단 교회 안에 설치하는 서점시설은 손쉽게 철수할 수 있어야 하고, 교회의 그 어떤 시설도 파손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벽에 못을 박아 파손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이 교회는 건축 이래 한 번도 화재 같은 것으로 손상되지 않고 온존해왔다. 건물 천장 위에 있는 2미터 높이의 다락 나무서까래도 파손되지 않았다. 이 역사적인 건물을 서점으로 바꾸는 디자인을 맡은 암스테르담의 건축사무소 메르크스+히로트는 검은색 철재를 수직으로 세워 거대한 3층 서가를 만들었다. 서가는 물론 벽과 천장에 닿지 않도록 일정한 간격을 두게 했다. 1층에서 2,3층으로 오르는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집 안의 집이 된 것이다. 일종의 가건물이지만 공간의 역사성을 존중함으로써 석재라는 클래식과 철재라는 현대가 잘 조화되는 설계 솜씨를 발휘했다.
도미니카넌서점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순간 경외감에 사로잡힌다. 목소리를 낮춘다. 까마득히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엄숙해진다. 고딕건축의 견고한 벽체와 천장,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돌기둥들, 1층 테이블에 놓여 있는 책과 1,2,3층의 검은 철재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의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도미니카넌서점에 들어선 사람들은 무심코 계단을 오른다. 걸어올라가는 서가다. 책의 하늘로 다가서는 것이다. 저 높은 벽과 지붕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지상에도 책들의 꽃이 만발하고 하늘에도 책들의 꽃이 별무리가 되는 경이로움!
옛것과 새것이 하나되는 도미니카넌서점의 가장 드라마틱한 사이트는 저 옛날 계단으로 사용했던 중앙의 카페공간이다. 십자가 모양의 긴 테이블이 놓여 있다. 까마득하게 높은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투영되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사람들은 커피를 마신다. 바리스타가 내리는 커피향이 제례할 때 피워놓은 향으로 느껴진다. 책을 펼치는 독자들은 그 시대 수사들의 기도 소리가 귓가에 낭랑해짐을 체험할 것이다. 카페공간의 둥근 벽에는 주기적으로 미술작품들이 전시된다. 커피맛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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