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꺼지지 않은 관심사에 불을 붙이고

이춘아 2021. 1. 3. 06:50

시모어 번스타인&앤드루 하비,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장호연 옮김, 마음산책, 2017


번스타인: 에단과 나는 완전히 멍했습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감동하는 것을 믿을 수 없었으니까요.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격찬의 리뷰와 칭찬을 받은 지 1년이 지났는데, 보고 난 사람이 내게 와서 하는 말은 한결같았습니다. “나는 음악가가 아니어서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다큐멘터리에서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이 제게 와닿았습니다.”

하비: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일까요? 

번스타인: 우선은 자신이 관심 갖는 활동, 자신의 재능에서 비롯되는 활동을 충분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꼭 음악일 필요는 없습니다. 무엇이든, 열정이 있는 무엇이든 다 해당됩니다. 또 하나는 뭔가에 열정이 있었는데 포기한 사람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뉴욕에서 공연 인터미션 때 한 여성이 내게 와서 말했습니다. “당신의 영화를 보았어요. 나는 예전에 작가였는데 10년 동안 글을 쓰지 못했어요. 하지만 당신의 영화를 보고 다음 날 아침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의 뭔가가 사람들에게 너무 늦지 않았다고 알려준 겁니다.
나를 봐요. 여든여덟 살인데 아직 정정하잖아요. 질의응답 시간에 나는 과학자들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계속 되풀이합니다. 뇌손상을 입은 게 아니라면 나이가 들수록 배움의 용량은 커진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젊었을 때보다 나이 들어서 더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어요. 다큐멘터리가 이제 전 세계에 상영되면서 이런 메시지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 덕분에 용기를 내서 아직 열정이 꺼지지 않은 관심사에 다시 불을 붙이고 이로 인해 행복하게 될 겁니다. 

번스타인: 나는 그 독주회에서 내가 멋지게 연주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연주하기 위해 어떤 고생을 했는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인정하고 싶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연습한 대로 연주해요.
이런저런 이유로 대중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그만두었다가 다시 컴백해서 비참한 결과를 맞은, 나보다 훨씬 어린 음악가들을 알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지 않은 경우에는 대체로 그런 결과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요? 하루에 여덟 시간을 연습했습니다. 살아남으려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두 배 더 준비해야 해요. 나는 다른 친구들을 사적으로 초대해서 두어 차례 예행연습을 가졌습니다. 내 연주를 내가 지적하고 싶은 평가와 함께 녹음해서 다시 듣고, 해석의 태도를 바꾸고, 어떤 패시지는 다른 운지법으로 연습했어요. 요컨대 살아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무대에 다시 섰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알고 싶어요?

하비: 네!

번스타인: 에단이 말을 시작하자마자 기적 같은 차분함이 내게 밀려들었다는 것을 믿겠어요? 나는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편안해. 참으로 다행이야. 한편으로는 의아했습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차분해졌지?

하비: 이유가 무엇이던가요? 

번스타인: 다음 날에 밝혀졌습니다. 에단이 나를 위해서 해준 모든 것에 감사를 표하고자 연주한 것이란 사실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그를 실망시켜서는 안 될 일이었죠. 다큐멘터리를 보니 연주하기 전에 내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설마 그들에게 사라 베른하르트와 그녀가 긴장했던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겠죠.” 내 목소리에는 떨림이 전혀 없었습니다. 완벽하게 차분한 목소리였어요. 나는 그런 차분함을 피아노에 가져와서 독주회를 곧장 짜깁기 없이 연주했습니다. 비디오나 영화로 촬영하는 음악회는 재촬영을 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연주자는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다시 촬영해서 이어 붙이죠. 나도 몇몇 실수를 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실수여서 그냥 넘어 갔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한 순간 공황장애에 가깝게 긴장했던 내가 다음 순간에는 어떻게 그렇게 놀랄 만큼 차분할 수 있었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할 때면 일시적으로 자신의 취약한 상태를 넘어선다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내게 일어난 일이었어요. 나는 에단을 위해 연주했습니다. 

하비: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선생님이 이렇게 공연과 차분해진 순간에 대해, 에단을 위해 어떻게 공연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좋아요. 사람들이 왜 영화가 끝나고 기쁜 마음으로 선생님에게 다가갔는지 너무도 잘 이해하겠어요. 

번스타인: 내가 비록 천재는 아니지만 나의 모습에서 사람들이 영감을 받고 용기를 얻어 자신의 재능을 추구하리라 믿습니다. 꼭 천재가 아니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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