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스타인: 에단과 저녁 식사를 한 뒤, 그가 뭔가를 탐구하고 있지만 탐구에 진전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가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이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하비: 동감합니다.
번스타인: 그가 자신이 찾던 것을 내게서 본 모양입니다. 이를테면 예술가와 개인을 하나로 통합하는 능력이죠. 나는 평생 음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통합을 이루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의식적으로 이루어야 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감성적 지성적 육체적 세계에 주목해야 하고, 예술을 하면서 이것들이 어떻게 하나로 섞이는지 살펴야 합니다. 제 의견을 말하자면, 예술적 세계에서 이런 통합을 이루기가 더 쉽습니다. 사회적 세계는 예측하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혼자서 예술에 몰입할 때, 연습에 집중할 때,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비: 그러면 선생님은 에단이 인격과 재능의 통합에 관심이 있었다고 보는 건가요?
번스타인: 맞아요. 나는 그가 이런 통합을 찾고 있었다고 믿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그는 이런 통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보고 싶었던 겁니다.
하비: 결국에는 그가 스승을 찾고 있었다는 말이군요. 그리고 자신의 영혼과 공감하는 스승을 선생님에게서 찾았고요. 그의 천재성은 자신이 찾은 스승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번스타인: 뭐니 뭐니 해도 나는 교사입니다. 열다섯 살 때부터 가르치는 일을 해왔어요. 에단을 만났을 때는 여든여섯 살이었어요. 그 정도면 오래 가르쳤다고 할 수 있겠죠? 역시 가르치는 일을 하는 제자가 어느 날 내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연주를 끝낸 제자에게 무엇을 말해줘야 할지 어떻게 아세요?” 한 번도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바로 대답을 알았습니다. “오, 그건 아주 쉬워. 네가 너의 제자가 되는 거야. 제자의 모든 면, 감성적 지성적 육체적 세계의 모든 면들을 떠맡아. 그런 다음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봐. 어떻게 하면 내 연주를 향상시킬 수 있을까? 그 순간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알게 돼.” 나는 에단이 이것을 알았다고 봐요. 그가 자신의 무대 공포증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내가 깊이공감했다는 것을 그는 알았습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요. 모든 연주자가 공연 전에 어느 정도 불안에 시달립니다. 모두가 심각하게 겪는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연주자들은 무대 공포증에 대해 압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죠? 이겨내려면 열심히 연습해서 무대 공포증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연주를 하도록 하면 됩니다. 이걸 없앨 수는 없어요. 자신이 하는 일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초인적인 무엇을 해야 해요. 음악가는 엄청나게 복잡한 음악 작품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외워서 연주해야 하죠. 배우의 경우 셰익스피어의 [멕베스] 대본을 외워야 할 뿐 아니라 감정을 한껏 실어서 살려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도와줍니다. 그 책임감이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물론 그 때문에 긴장되겠죠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내가 정말 이런 일을 할 자격이 있을까? 준비가 되었을까? 미천한 인간은 그래서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에단은 무대 공포증에 대한 내 논의를 듣고 우리가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녁 식사 때 내가 대담하게 그에게 물었어요. “당신의 긴장은 어떤 형태로 표출됩니까? 무척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군요. 그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나요?
하비: 아니요.
번스타인: 이렇게 말했어요. “말을 멈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하비: 맞아요.
번스타인: 쉽게 말해서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는 거죠. 나는 재빨리 그에게 [뉴욕타임스]에 실렸던 기사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햇어요. 당신은 무엇 때문에 긴장히게 됩니까? 80퍼센트, 그러니까 거의 만장일치로 기억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긴장하게 된다고 답했습니다. 에단은 무대에서 깜빡하게될까 두려워 심각한 긴장에 시달립니다. 그가 맡은 배역은 그저 정해진 대사를 외우는 데만도 엄청난 양의 암기를 요구합니다. 60페이지짜리 베토벤 소나타를 외워서 쳐야 하는 나와 비슷해요. 엄청난 책임감입니다! 몇 주 뒤 촬영 때 에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사가 생각나지 않아 소름 끼치는 비명을 내질렀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연극에 돌입했죠. 청중 모두가 내 비명이 연극의 일부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내가 대사를 잊었다는 것을 모르더군요.”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공포증이 사라진 것 같아요.”
하비: 감동적이고도 재밌는 이야기네요. 존 길구드가 언젠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납니다. “대사가 생각나지 않으면 나는 미친 듯이 노려보고 혼잣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청중은 내가 ‘길구드’를 연기한다고 생각하죠. 다음 대사가 생각나면 활기차게 이어갑니다.
번스타인: 오랫동안 연주 생활을 했던 나는 독주자 경력을 마감하기로 결정해야 할 순간이 왔습니다. 내가 연주를 그렇게 오래 해올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음악적 도전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두려움을 무대를 통해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루의 반은 교습을 해서 돈을 벌고 나머지 시간에 연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창작을 할 시간이 없었어요. 작곡하고 글을 쓰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쉰 살이 되었을 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삶이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책도 쓰고 작곡도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독주자 생활을 끝내는 수밖에 없겠어. 콘서트 무대를 떠나고 나서 가르치고 작곡하고 글을 쓰면서 대단히 만족스러운 삶을 보냈습니다. 쉰 살에 무대를 떠났을 때 누군가 내게 여든여덟 살에 ‘영화스타’가 된다고 말했다면 내가 들은 가장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했을 겁니다.
하비: 나이를 떠나 영화 스타가 된다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일이죠, 하지만 봐요 선생님은 돌고래가 바다를 즐기듯 유명세를 즐기고 있잖아요. 원래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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