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꽤 오래전부터 동식물을 표현해왔다. 선사시대 유물 가운데 처음으로 구체적인 동물 모양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울산에 있는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유물이다. 이 암각화에는 고래, 사슴, 멧돼지, 호랑이 등 여러 동물이 새겨져 있다. 비록 도식적이지만 대상의 특징이나 상태를 적절하게 표현하여 그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수렵사회에서 점차 농경사회로 전환되면서 주술적인 의도를 투영하는 동물 가운데 가장 많이 표현된 것이 바로 ‘새’이다. 새는 하늘을 난다는 것 때문에 ‘하늘 세계의 연락자’로 인식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제례의식에 사용하는 용기에 새 문양을 새기거나 죽은 사람의 무덤 안에 새의 뼈나 새 형상의 부장품을 만들어 넣기도 햇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농경문 청동기’ ‘조문청동기’ ‘압형토기’ 등은 이러한 새에 대한 의미를 형상으로 만든 예라 할 수 있다.
그중 ‘농경문 청동기’는 조금 특별하다. 보통 청동기는 추상적이든 그렇지 않든 도식적이고 반복적인 문양으로 표면을 꾸민 경우가 많은데, 이 유물은 비록 단순한 선각화임에도 상당히 회화적으로 보인다. 이 청동기는 양쪽 면에 각각 그림을 새겨 넣었는데, 한쪽은 밭을 일구는 남자가 표현되어 있고, 반대쪽은 나무 위에 새 두마리가 서로 조응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정경이 새겨져 있다. 단순한 형태이지만 도식적인 느낌이 적어 그 안에 자연의 서정이 스며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농경문 청동기’에 새겨진 ‘나무 위의 새’는 우리나라 화훼영모화의 시작을 알리는 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선사시대의 동식물 표현은 주술적 목적을 지닌 단순한 형태의 도상으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회화 재료의 표현 기술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미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도식적에서 사실적으로 표현이 발전해갔다.
화훼영모화의 흔적은 삼국시대에 이르러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을 띤다. 특히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동식물 그림이 고분벽화에만 그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은 되지만, 남아 있는 것이 없어 고분벽화나 고분 안에서 발견된 유물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동식물은 독립적으로 표현된 화훼영모화라고 할 수는 없다. 주로 어느 장면 안에 부속된 소재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식물은 주로 연화문이나 당초문처럼 문양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으며, 동물은 학, 말, 소, 개, 사슴, 호랑이, 두꺼비 등 실재하는 것과 청룡, 백호, 주작, 현무 같은 사신이나 삼족오 같은 상서로운 짐승인 서수를 볼 수 있다.
5세기 경에 지어진 무용총에서도 여러 동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무용총에는 그 유명한 ‘수렵도’가 있어 사슴, 말, 호랑이, 사냥개의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힘차고 자신감 있는 운필에서 화공의 능숙한 솜시를 짐작할 수 있다. 무용총에는 ‘수렵도 외에 여러 동물이 묘사된 그림이 있는데, 특히 널방 천장에 그려진 수탉 모양의 ‘주작도’가 사생적이라 흥미롭다.
백제의 세련된 동식물 표현은 오히려 공예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6세기로 추정되는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 미술의 정수로 당시 장인의 놀라운 예술 정신과 솜씨를 보여준다. 용의 형상을 한 받침, 연꽃 형태의 몸통, 겹겹이 쌓인 산악 형태의 뚜껑이 조형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용 한 마리가 연꽃을 물고 있는 형상이다. 특히 뚜껑 부분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데, 겹겹으로 산봉우리를 배치하고 그 안에 다양한 동물과 인물을 넣었으며, 사이사이로 산길과 시냇물과 폭포를 표현했다. 동물로는 호랑이, 멧돼지, 원숭이, 새 등 현실의 짐승과 상상의 동물이 섞여 있으며, 각 산봉우리에는 다섯 악사와 다섯 새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정상에서는 봉황이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각각의 형상들이 매우 작음에도 섬세하고 정교한 솜씨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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