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27 화
어제는 윤여정의 날이었다. 나는 축하의 쑥떡도 만들고 황회장님은 작은다방 음료 5백원씩 깍아주는 ‘문화행사’도 했다.
[노매드랜드]로 감독상을 받은 클로이 자오 감독이 궁금하여 검색해보았다. 82년생 중국인, 중학교 때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공부를 했으니 미국인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클로이 자오가 영향받은 감독은 왕가위 감독이었고, 자오가 주도해 만든 세 영화(로데오 카우보이, 노매드랜드, 이터널스)에서는 테렌스 맬릭 감독의 영향력이 강했다는 평가가 눈에 띄었다. 테렌스 맬릭 감독을 검색해보니 맬릭 감독의 영화 중 ‘트리 오브 라이프’가 있다. 나도 보았던 영화이다. 브래드 피트만 기억났던 영화. 왓챠와 넷플릭스에서 검색하니 영화가 없다. 유튜브로 검색하니 내가 이미 구입한 영화라 한다. 다시 보기로 한다. ‘트리 오브 라이프’ 역시 레바논계 미국인인 맬릭 감독의 유년을 다룬 자서적인 영화라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그의 성찰과 고민이 묻어나는 작품들은 관객들의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든 자극시킨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아카데미 수상에는 실패했으나,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영어를 한글로 쓴 글자는 뜻이 머릿속에 입력이 잘 되지 않는다. ‘트리 오브 라이프’ 자세히 보니 ‘인생 나무’ ‘삶의 나무’ 이다.
내 삶도 나무처럼 씨가 떨어져 싹이 올라오고 줄기가 만들어지고 잎이 생기고 꽃도 피고 진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나무 수형이 있는 것이다. 금산집에서 신기했던 것이 소나무 씨가 떨어져 싹이 올라올 때 씨 껍질을 모자처럼 쓰고 올라왔고 힘이 뻗치면서 모자를 날려버리고 작은 솔잎 모양을 이루는 것이었다. 작은 솔 모종을 파서 여기 저기 심었다. 어느 순간 소나무가 형태를 잡고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나를 위협했다. 위협이란 것은 너무 커질까봐 두려운 것이다. 나는 가위로 전지작업을 하면서 키가 더 크지 않도록 교정도 하게 된다. 내가 처음 금산 집에 매료된 것은 장송이었다. 그 장송은 누구의 위협도 없이 점잔하게 잘 컸는데 내가 들어오면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가지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손대지 않고 잘 자란 소나무가 좋았는데, 내 영역과의 다툼에서 가해되는 것이다. 이 또한 사람과 식물의 영역 싸움이 되었다. 쑥, 개망초도 마찬가지 들판에 있을 때는 그냥 쑥이고 개망초 꽃인데 내 영역 안에서는 다툼이 된다.
‘트리 오브 라이프’
나무의 삶이 아닌, 내 삶의 나무를 생각한다. 내 삶을 영화로 한다면. 드라마틱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 어떤 영향력이든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각각 커나간다.
함흥에서 피란 내려온 엄마 아버지가 만나 거제도에서 결혼하고 오빠를 낳고, 부산으로 이주해서 나를 낳고 동생들을 낳고 우리들은 같은 공간에서 살았고, 성장하여 오빠는 청년시절에 돌아가시고 나는 김씨와 결혼하여 일가를 이루었고, 남동생도 김씨와 결혼하여 일가를 이루었고, 여동생은 오씨와 결혼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이러한 서술은 인생나무의 종류와 형태가 결정되었다. 형제들은 각각의 삶을 살고 있고 가끔 거의 매일 전화 문자를 주고 받고 있지만 각각의 삶의 방식은 다르고 각자에게 각인된 상처와 영광은 제 몫이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테렌스 맬릭 감독의 생애사, 그 중 어릴 때 가족관계를 다루고 있다. 엄격한 아버지가 세 아들을 세상에서 강한 사람으로 키우고자 하는 열망이 아이들을 주눅들게 하고, 그러다 둘째 아들이 19세로 사망하면서 주인공인 첫째 아들이 성인이 되어 그 부모가 자식을 잃었을 때의 고통, 동생에 대한 회한 등을 회상한다. 성경 귀절로 모든 교육을 대신했던 시대이라 그 성경구절이 중간중간 인용된다. 잠재 무의식을 표현하는 방식과 혼재된다. 1943년생 감독이 살았던 시대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면서도 가족들의 모습들이 전 삶에 깊이 배어 있어 수시로 무시로 밀물과 썰물처럼 들어왔다가 빠져나간다.
이 영화를 보며 청년기에 돌아가신 오빠, 당시 나는 대학교 3학년. 나는 오빠 대신에 잘 살아주겠다는 다짐을 했다. 부모님의 고통을 깊게 생각지는 않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의 슬픔을 느꼈다. 태어난 아이의 작은 발에서부터 성인이 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아온 아버지의 애환을 나는 헤아리지 못했다. 이렇게 나이들어 영화 한편을 보며 그 당시를 나도 회상하고 있다. ‘미나리’ 역시 정이삭 감독의 어린 시절 가족, 할머니를 아이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아이들은 많은 것들을 보고 자란다. 누군가는 성인이 되어 어려서부터 보아 온 것들을, 자신에게 각인된 것들을 글로, 영화로, 이야기로 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