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만감)
작년에 말린 무청 씨레기를 무친 것, 머위를 캐서(장독대를 넓히기 위해) 데쳐서 무친 것, 한겨울 내 항아리에 보관했던 배추로 김치 만든 것으로 밥을 먹었다. 식은 밥에 먹었지만 뿌듯했다. 씨레기 배추 무, 그리고 올 봄에 나온 머위는 나의 작은 텃밭에서 나왔다.
매년 여름이 다가올 때 즈음이면 밭에서 바로 딴 풋고추와 상추를 고추장 찍어 먹을 때 뿌듯한 포만감이 있다. 올해는 이곳에서 만들어진 고추장에 찍어 먹게 될 것이다.
나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것을 먹을 때 그야말로 생명의 양식을 먹는 것 같다. 2010년 가을, 이곳을 매입했을 때는 소나무 있는 집이 좋았다. 사실 텃밭을 할 땅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씩 땅을 일구어 가면서 내 노력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 것이 좋았다.
이러한 뿌듯함과 포만감은 나이들어 가면서도 좋을 것이다. 십여년전에 노후, 나이듦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은 분명 아닌데 내가 한 일중 가장 잘 한 일이다. 이곳에 터를 마련한 것, 정말 다행이고 앞으로도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
며칠 전 고사리 영상모임이 끝나고, [영혼의 순례자]를 마저 보고, 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를 보다가 잤다. 이전에도 흡족하게 보았던 것인데, 다시 보아도 텃밭과 땅을 일구고 일구어진 결과로서 생명을 만들어 먹는 일이 틀린 게 아니구나 생각되었다.
포만감과 흡족함이 있으면 이제 그게 틀린 것은 아니구나, 라 여기게 된다.
(경배)
오랫만에 단배공을 했다. 아침에 식사준비를 한다든지, 모닝 페이지를 써야한다든지 등에 밀려 단배공하기를 게을리 했다. 오늘은 눈 뜨자 마자 이불 갠 후 단배공을 했다. 하게 되면 흐흠 역시 하는 게 좋구나 한다. 단배공을 하면서 이 운동 역시 내가 죽을 때까지 이어가야할 종목이다, 라 생각했다. 1984년 경 여의도에 사무실이 있을 때 사무실 가까이 동아일보 문화센터가 있었다. 그곳에서 국선도 강좌를 새벽반으로 다녔다. 국선도 이전에도 나는 요가 형태의 몸움직임을 했었기에 국선도가 익숙한듯 했다. 일여년간을 다녔지만 국선도의 단계를 많이 들어가지는 못했다. 단전호흡을 깊게 들어가지 못하고 이전 몸풀기 과정을 익혀 그것으로 짬짬히 혼자서 했었고, 결혼 후에 한동안 멈추었다. 나의 일과가 아침에 혹은 잠자기 전 하게 되질 않았다. 그러다 2007년 경 유성문화원에 근무할 때 기천문 수련자가 찾아와 강좌를 열겠다하였고, 나는 일단 3개월 해본 후 결정하자 하고 내가 아는 분들을 몇 분 모셔와 강좌를 열었었다. 3개월 후 인원이 차지지 않아 폐강되었다. 그 이후부터 기천문 첫 단계에 해당하는 단배공을 거의 매일 20여분간 해오고 있다.
이 과정은 몸풀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나는 이 20여분간을 매일 꾸준히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 몸풀기 역시 내가 죽을 때까지 해야할 종목 중의 하나라 여기고 있다. 어제 본 영화, [영혼의 순례자]에서 그들이 오체투지하고 있는 과정을 보면서 저렇게오랫동안 하고 싶었다. 나도 신원사 앞에서 짧게나마 한 적 있다. 땅에 엎드렸을 때 느꼈던 땅의 냄새가 좋아 자꾸 땅에 엎드려 경배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면서 저렇게 온 몸으로 절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그나마 이 땅에서 연명할 수 있는구나 생각되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나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몸을 엎드려 경배하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
단배공 과정은 여러가지로 좋은 것 같아 계속 하고 싶고 해야한다고 여기고 있다.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 라는 제목은 현재 내가 가장 좋다고 여기고 있는 것을 계속 끌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