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브람스, 헝가리 무곡과 표절 논쟁

이춘아 2021. 5. 15. 00:53

조병선, [클래식 법정], 뮤진트리, 2015.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의 음악은 촘촘하고 두텁게 느껴지는 음악의 대표적 예다. 공교롭게도 그가 태어난 곳도 거의 1년 내내 어두운 회색조의 날씨가 지속되는 북독일의 함부르크다. 한 여인을 늘 먼 발치서 바라보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고독 속에서 평생을 보낸 그에게 어울리는 날씨였다. 그가 스승 슈만의 부인인 클라라를 만난 날은 정확히 1853년 9월30일이었다. 당시 브람스는 스무 살, 클라라는 서른네 살이었다. 거의 무명의 신인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의 소개로 뒤셀도르프에 있는 슈만의 집을 방문했다. 당시 독일 청년들에게 유행하던 도보 여행을 하던 중 내친 김에 언젠가 요아힘이 알려준 라인 강변의 슈만 집을 찾아간 것이다. 슈만의 집에서 브람스는 자신의 곡을 직접 피아노로 연주했고, 슈만은 첫눈에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았다.

이 날 그가 연주한 작품 가운데는 피아노 소나타 1번 C 장조. 청년의 곡이라고 하기에는 깊고 성숙한 영혼의 울림이 느껴지는 이 곡을 들은 슈만은 당장 2층에 있던 클라라를 불러냈고, 클라라는 젊은 청년 브람스의 연주에 심취했다.

브람스의 인생에는 슈만과 클라라와의 만남 외에도 또 하나의 중요한 만남이 있었다. 항구 술집에서 알게 된 정치적 망명자의 신분으로 정처없이 떠돌던 다섯 살 연상의 바이올리니스트 에두아르드 레메니와의 만남이 바로 그것이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항구의 술집들을 돌며 함께 연주를 했다. 레메니가 집시 바이올린 곡을 연주하면 브람스가 반주를 하는 식이었다. 브람스는 레메니에게서 배운 집시 음악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해 열정적으로 연주했다. 레메니-브람스 듀오가 해체되고 16년이 지났을 때 그들 사이에 또다른 갈등이 발생했다. 레메니가 1869년 출간된 브람스의 ‘헝가리무곡집’이 자신의 작품 표절이라는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레메니는 10년이 넘도록 끈질기게 표절 시비를 벌였으나 브람스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표절사건에서 유난히 주목을 끄는 것은 브람스의 겸손한 성격이다.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도 그는 끝까지 고결하고 의연하게 처신했다. 브람스는 음악관과 성향의 차이를 이유로 레메니와 결별하긴 했지만 집시 음악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그에게 항상 고마워했다. 헝가리무곡을 출간한 짐록 출판사는 브람스의 결백을 증명하고자 그의 사망 직후인 1897년 [브람스와 헝가리 무곡을 위한 변명]을 출간했다. 표절사건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엉뚱하게도 출판사 사장인 니콜라우스 짐록이 큰돈을 거둬들였다는 점이다. 당시는 유럽 중산층에 피아노가 보급되면서, 가족이 함께 피아노 앞에 앉아 연탄으로 연주하는 것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브람스도 이에 발맞춰 헝가리 무곡을 클라라와 함께 연탄곡으로 초연하기도했다. 브람스의 거의 모든 작품(op.16 부터 op.120까지)을 출간한 짐록 출판사는 이런 연탄곡 [헝가리 무곡집]을 엄청나게 팔아 큰 이득을 올렸다.

브람스의 피아노 연탄곡으로 큰돈을 벌어들인 짐록 출판사는 당시 무명의 비올라 주자였던 안톤 드보르작에게 슬라브무곡을 연탄곡으로 쓰게 했는데, 이때 드보르작을 짐록에게 추천한 사람이 브람스였다. 드보르작은 레메니와 브람스 간의 장기간에 걸친 표절사건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표절 시비가 일지 않도록 집시풍의 전통적 내용을 가급적 배제하고 그 형식만을 적용하여 그만의 독특한 곡으로 만들어냈다.

표절 시비가 일 만큼 브람스는 집시 음악에 반했고 애정을 바쳤다. 집시 음악의 리듬은 브람스의 비장의 무기가 되었다. 그의 음악에는 집시풍의 텍스처가 구석구석 은은하게 스며들어 있다. 어쩌면 브람스는 자신의 고독한 인생을 평생 유랑하는 집시들의 애환 어린 삶에 빗대어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독일 레퀴엠’ 중 제2곡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는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영원히 정착할 수 없는 집시 같은 존재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하다. 그의 작품 가운데 ‘피아노4중주 G단조 op.25’도 그러하다. 이 곡의 4악장은 ‘알라 칭가레제’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직역하면 ‘집시풍으로’라는 뜻이다. 일명 ‘집시-론도’로 불리는 이 4악장을 들으면 집시풍으로 승화된 브람스의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집시풍 음악에는 싱코페이션(당김음)이 들어간 강세나 박을 살짝 앞당기는 재치가 돋보이는 폴라리듬(복합리듬)이 종종 사용된다. 리듬이라는 맥박이 밀고 당기며 곡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 같은 미묘하고 섬세한 박자 감각은 연주가들에게는 도전이자 과제일 것이다. ‘집시-론도’ 악장은 마치 집시 밴드가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을 전달한다. 떠들썩한 결혼식에서 연주되는 집시 밴드의 흥겹고 신나는 음악을 떠올려 보라. 실제로 브람스는 때때로 홀로 빈의 공원에 나가 방랑하는 집시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 ‘FAE(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역시 스무 살 무렵 레메니와의 듀오 시절에 배운 집시의 삶과 집시 음악에서 기원한다. 그러고 보면 진짜 브람스는 흔히 독일 중산층의 음악을 대변하는 보수적인 음악가 아니라, 집시처럼 방황하고 고독했던 보헤미안인지도 모른다. 그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밀려난 자를 연민했고, 떠도는 삶을 동경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여전히 클라라를 품은 채 고독하게 늙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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