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간도 풍경

이춘아 2021. 5. 28. 21:55

최삼룡 허경진 엮음, [만주 기행문], 보고사, 2010.

강경애, '간도 풍경'
   - 이 글은 [신여성] 1932년 1월호에 게재된 것.  강경애(1907~1943)는 소설가로 평양 숭의여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대부분 용정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 글은 작자가 간도로 들어가던 때를 회상하며, 당시 국경의 풍경을 묘사하였다. 


어실어실한 이른 새벽에 회령을 떠나 상삼봉을 향하여 닫는 경편열차는 두만강을 왼편에 끼고 돈다. 붉은 물이 핑핑돌며  꾸불꾸불 구비처 흐르는 두만강 ! 호탕한 장강을 연상하고 들었건만은 지금에 보니 장강엔 어김엄슬망정 놀랄만큼 좁다랐다. 이 강을 새이로 완연히 눈앞에 보이는 저편! 이편과는 산색조차 확연히 다른 중국의 땅! 듣던 바의 간도다. 

내가 간도에 들어오기는 생각하니 지난해 늦은 봄날이었다. 흰옷입고 밭가는 농부가 저편에 보일때 이 편 강변에서 읍막짓고 미간지를 이루워먹는 농부와 다름없을것이나 별로히 애닯고도 반가운듯한 정서가 내 가슴 속을 긁어준다. 더구나 빨간 저고리에 남치마 입은 계집애가 혼자 산비탈로 타박타박 걸어가는 것이 보일 때 마음속이 선뜻할만큼 그애의 신변이 위태함을 느껴지는 동시에 그애가 퍽도 용감해보이며 아직까지 머리속에 깊이 새겨두었던 권총들고 국경을 엿보는 청년의 자태는 점점 희미하게 멀어가는 듯하다. 

강변에 휘늘어저 바람에 흔들리는 버들가지를 바라보며 숨차게 닿는 기차는 상삼봉을 지나 두만강의 국제철교를 우릉우릉 건너서 도문강안역에 이르렀다. 눈에 얼핏 띄운 것은 국경을 수비하는 중국헌병과 순경의 색다른 복색이다. 단총을 옆에 찬 것과 오른 편 어깨에서 왼편 아래까지 내려 맨가죽끈이 꼭 신문에서보던 장개석 장학량 등 중국 군벌의 사진 그대로이다. 그러나 그 차림에 맞지 않는 서투른 동작이 어김없이 우리 고향에 있는 포목상 하는 덕생각 요리업하는 춘향원 배채재배하는 왕서방과 틀림없음에 나는 속으로 웃음이 칵 치밀어 올라옴을 겨우 참았다. 그러나 그들을 경멸히 보다가는 큰 봉변이다. 

승객이 천도차로 옮겨타기 전에 그들은 수하물을 일일이 조사한다. 역시 내에게도 딸려와서는 유달리 벌컥 뒤집어본다. 만일 [자본론]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가는 큰 일이다. 이 사정을 도중에서 미리부터 들었던 나는 집에서 가지고오던 웬만한 서적을 회령서 도로 집으로 부쳐 버린 것을 이 자리에서는 다시 없는 요행으로 생각하였다. 군경은 다음 청년에게로 가서 힐란을 부리고 있다. 

나는 곁에 앉은 사람에게 “언제나 이같이 경계가 심하냐?” 물은 즉 “오주폭동후 중국인과 조선인을 막론하고 더욱 청년에 대하여는 저 모양으로 엄밀히 조사한다”고 하였다. 

오전 열시삼십분에 기차는 도문강안역을 출발하였다. 차안에는 연전히 순경 두명이 경계한다. 차장은 약종행상 모자가 튼 것을 쓰고 차표 검사를 하며 지나친다. 그럴 때마다 그 뒤에 순경이 호위하여 준다. 

객차는 몹시 돌아서 그런지 흔들림에 따라 히룩해룩하는 것이 방금 쓰러질 듯이 생각키워진다. 차창에 전개되는 양면의 경치가 나무 하나 볼 수 없는 붉은 개간지가 막연히 보일 뿐이었다. 따라서 휘맴도리를 치고 돌아가는 것이 강 저편으로 이따금 동포의 농촌! 그 가운데에 중국인 지주의 두틈한 집이 섞여뵈인다. 

방금 내 몸을 싣고 닿는 이 천도철로는 공사비를 헐케 한 탓인지 개간공사는 제략되고 선로는 경사지를 빙빙 돌어오르고내림으로 불과 60리 되는 용정시까지 세시간만에야 겨우 도착되었다. 광막한 큰 들을 닿는 호마차의 속도보다 조금도 빠른 것이 없고 나지막한 산비탈을 안고도는 것까지도 꼭 호마차와 흡사하다. 

1931년! 버들가지는 신록을 방사하며 지사의 핏점을 섞어 흐르고 흐르는 두만강변에서 나붓기는 봄날 그때 삼민주의를 부르짓고 신흥 중국을 구가하며 서백리아(시베리아) 차디찬 바람을 막으려 높다란 행벽을 쌓기에 열중하였든 그때도 벌써 옛날이다. 보라!! 지금 극동의 정세는 어떻게 변하였느냐? 의문의 ‘마크’를 머릿 속에 그려놓고 송구영신인 이때에 닥쳤다. 

고요히 잠들어가는 용정시가! 찌르릉 울리는 만주의 독특한 호마차의 종소리가 말굽과 차바퀴 소리가 섞여 간혹 들릴 뿐이다. 개털모자에 총을 메고 골목골목에서 파수보는 중국순경 전당포에 권총강도 든 것도 모르고 얼빠지게 서 있다. 

적막한 공기를 깨뜨리고 자동차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히 들린다. 영사관무장경관대의 **! 그들은 매일밤 이렇게 청년남녀를 ***하여 **하기에 **하였다. 

중국보위단의 무법한 압박과 착취에 신음하는 농민! 그들을 본둥만둥 동포애 조차 싸늘하게 식어버린자와 고리대금업자는 코허리에 안경을 걸고 주판만 들여다본다. 호모래에 눈보라 섞여 불리우는 선풍에 휩싸여 계층 계급은 극단과 극단에서 혈전난투를 하고 있다. 폭탄의 용렬 권통의 난사 등은 항다반의 일이다. 

이것은 간도의 풍경을 단편적으로 그려본데 지나지 못하나 이렇다고 나는 간도에 대한 촉망을 가졌으며장래를 기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시금 그리울 것은 산명수려한 삼천리 강산 따라서 그속에서 꾸준히 싸워주는 동지가 퍽도 그리우며 그들의 운동에 많은 기대와 촉망을 갖고 있다. 

더욱 조성여성동지에게 바라는 것은 항상 마음을 튼튼히 하고 백척간두에 다시 한보를 내집어주기를 기대와 희망이 넘치는 1932년을 맞으며 뛰는 가슴을 누르고 그만 붓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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