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린 마이어: 기업문화는 모호한 언어와 불완전하고 애매한 설명이 질척거리는 습지다. 게다가 많은 기업이 내세우는 가치와 그들의 실제 활동이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포스터나 연례 보고서에 등장하는 번지르르한 슬로건은 대부분 공염불에 그친다.
미국에서 내로라했던 어느 기업은 본사 로비에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여러 해 동안 자랑스럽게 걸어놓았다. ‘진실, 소통, 존중, 탁월.’ 어느 회사냐고? 2001년 파산한 에너지회사, 엔론이다. 그들은 사상 최대의 기업 사기와 부패로 몰락하는 순간까지도, 자신들은 고결한 가치를 앞세웠다고 강변했다.
반면, 넷플릭스 문화는 매사에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으로 이미 유명하다. 아니 어쩌면 유명한 것이 아니라, 악명이 높은 것일 수도 있다. 지금도 무수한 기업인들이 넷플릭스의 ‘컬쳐 데크’를 연구하고 있다. 컬처 데크란 원래 넷플릭스에서 사내용으로 만든 127개의 슬라이드를 말한다. 그러나 2009년에 리드 헤이스팅스는 이를 인터넷에 올려 전 세계인과 공유했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인 셰릴 샌드버그는 이 넷플릭스의 컬처 데크를 두고, “실리콘밸리에서 나온 그 어떤 기록보다 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내가 넷플릭스의 컬처 데크를 좋아하는 것은 그것의 정직성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 내용 때문에 컬처 데크를 혐오한다.
< 다른 회사와 똑같이, 우리도 채용을 잘하려고 애쓴다>
< 다른 회사와 다르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지킨다. “적당한 성과를 내는 직원은 두둑한 퇴직금을 주고 내보낸다”>
비범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직원은 해고한다? 이러한 기업문화의 윤리적 옳고 그름은 차치하더라도, 경영 측면에서 볼 때 이 슬라이드는 형편없는 발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는 하버드경영대학원의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가 말하는 ‘심리적 안전’에도 위배된다. 에드먼슨은 저서 [두려움 없는 조직]에서, 혁신을 이루려면 사람들이 마음 놓고 꿈을 펼치고 자신 있게 발언하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회사 분위기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바뀔수록 혁신은 더욱 활발해진다. 아마도 넷플릭스 직원 중에 에드먼슨의 책을 읽은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최고의 인재를 데려다 놓고, 남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 ‘두둑한 퇴직금’을 받고 쫓겨날 줄 알라며 겁을 주는 것이야말로 혁신에 대한 한 가닥 희망을 짓밟는 확실한 방법이 아닌가?
넷플릭스 컬처 데크에는 다음과 같은 슬라이드도 있다.
< 넷플릭스의 휴가 규정과 확인 절차: ‘규정도 없고, 확인도 하지 않는다” 복장 규정도 없지만, 벗고 출근하는 사람도 없다. 교훈: 일일이 규정을 정할 필요가 없다>
< 항상 정직하라. 당신이 리더라면 당신이 데리고 있는 누구도 당신의 견해에 놀라서는 안 된다>
물론 비밀과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일터를 대놓고 지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직한 것이 좋다며 퉁명스럽게 툭, 의견을 내놓는 것도 문제다.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하고, 같은 말이라도 기왕이면 약간의 기술을 발휘하여 외교적 언사를 구사한다면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실수를 연발하는 팀원의 사기를 북돋우거나 자신감을 키워줄 필요가 있을 때는 특히 그런 기술이 필요하다. 때로는 정직을 보류할 필요도 있다. ‘항상 정직하라’와 같은 원칙만 고집하다가는 관계를 망치고 의욕을 꺾어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기게 된다.
넷플릭스의 컬처 데크를 모두 보고 난 뒤, 나는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남성적이고 대립적이며 노골적으로 호전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 관해 다소 기계적이고 합리주의에 편향된 견해를 가진 엔지니어가 만들 법한, 그런 종류의 기업을 반영하는 문서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 모든 생각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넷플릭스가 기업공개를 하던 당시 1달러였던 주가는 17년 뒤인 2019년에 350달러까지 올랐다. 다른 기업의 주식과 비교해서 보자면, 넷플릭스가 상장했을 때 S&P 500이나 나스닥에 1달러를 투자했다면 2019년에는 3달러나 4달러 정도밖에 안 됐을 것이다. 주식시장만 넷플릭스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소비자와 비평가들 역시 넷플릭스를 좋아한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과 [더 크라운] 같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프로그램은 10년 동안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드라마가 되었다. [기묘한 이야기]는 아마도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시청하는 TV시리즈일 것이다. 스페인의 [엘리트들]과 독일의 [다크], 터키의 [수호자], 인도의 [신성한 게임] 등은 각각 그 나라 스토리텔링의 수준을 한껏 끌어올린 동시에, 국제적인 스타들도 다수 배출했다. 넷플릭스의 작품들은 지난 몇 년 동안 미국 에미상에 300회 이상 후보로 올랐고, 수차례에 걸쳐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게다가 넷플릭스는 골든 글로브 후보에 17회 올랐는데, 이는 다른 어떤 네트워크나 스트리밍 서비스가 거둔 기록보다 많은 횟수이며, 아울러 2019년에는 레퓨테이션 인스티튜트가 매년 매기는 전국 순위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는 기업’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직장인들 역시 넷플릭스를 사랑한다. 하이테크 인재를 구하는 닷컴 시장인 하이어드가 2018년에 실시한 조사에서, 기술직 근로자들은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 1위로 넷플릭스를 지목했다. 이는 구글(2위),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3위), 애플(6위) 등을 제친 성적이다. 기업의 임금과 평판을 조사하는 컴패러블리가 미국의 대형 기업 4만 5,000개의 임직원 50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2018년에 실시한 무기명 조사 ‘가장 행복한 직원’ 부문에서도, 넷플릭스는 다시 한번 수천 개의 기업을 제치고 당당히 2위에 올랐다(1위는 케임브리지에 본사를 둔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인 허브스팟이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산업 성격이 바뀔 때 적응하지 못하는 대다수 기업과 달리, 넷플릭스는 지난 15년 동안 소용돌이치는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 왔다는 사실이다.
* 우편을 이용한 DVD 대여업에서, 오래된 TV시리즈나 영화를 인터넷에서 스트리밍 서비스하는 사업으로 전환.
* 추억의 콘텐츠를 서비스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하우스 오브 카드] 등 외주 제작한 새로운 오리지널 콘텐츠 론칭으로 전환.
* 외주 콘텐츠를 라이선싱하던 방식을 버리고, 직접 제작사를 설립하여 권위 있는 상을 받은 TV 프로그램과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전환( [기묘한 이야기], [종이의 집], [카우보이의 노래] 등).
* 미국 내수용 기업에서 190여 개국 전 세계인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
넷플릭스의 성공은 이례적이라는 말로는 모자란, 기적 같은 성과다. 뭔가 특별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2010년에 파산을 선고한 블록버스터에는 그런 특별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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