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망명지사들의 역사적 의미와 기여

이춘아 2021. 7. 16. 23:26

이옥희, [우리가 몰랐던 북간도 독립운동 이야기], 바이북스, 2020.

한국사회에 익히 알려진 대부분의 독립투사들이 이 시대에 만주로 망명을 한 지사들이다. 그들이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위치, 이주 조선인 사회에 끼친 영향이 자못 크다. 봉건사회에서 바야흐로 근대정신의 맹아가 싹트고 있는 시대를 살아야 했던 그들이 우리 역사에 남긴 유산이 무엇인지 먼저 긍정적인 부분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망명 지사들의 기여는 조선 이주민들에게 항일민족 의식을 심어준 것이다. 
1907년 만주에 진출한 일제는 자기들의 정치적 군사적 침략의 기반을 닦으면서 경제적 약탈을 감행하는 한편 사상문화침략을 강행함으로 식민지강점을 하루 속히 실현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간도조선인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조선인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며 식민지 민족 말살정책과 우민화 교육을 실시하였다. 일제의 이런 정책에 저항하여 망명 지사들은 사립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신학문을 수용하여 잃어버린 국권을 찾는 일에 전력을 다하였다. 당시 사립학교 설립자나 교사는 다 독립투사였고 애국자로서 긍지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교육과 계몽활동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함양하고 투철한 항일정신을 배양하여 조선인들을 독립투쟁의 길로 이끌었다. 

두 번째 기여는 기존의 교육을 혁파하고 신교육의 체계를 정비한 것이다. 
조선 500년 동안 서당, 서원, 향교, 학당에서 교육된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사서오경 등 공맹을 공부하며 주자학의 도덕윤리를 가르쳤던 교육체계를 과감히 혁파하고 근대적인 새로운 문화지식으로 교육을 전면제으로 개혁하였다. 새 지식을 전수하기 위해서 교과목 선정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연길에서는 ‘간민교육회’가 산하에 우수한 학자를 초빙하여 사립학교를 위한 교과서를 편찬하였다. 용정, 동변도, 하얼빈에서도 사립학교 교과서가 편찬되었다. 이런 교재는 민족 언어, 민족 문화, 민족의 역사와 지리에 대한 지식을 전수하는 한편 과학, 정치, 수학, 외국어 과목도 중요시 되었으므로 후세대가 세계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특별히 남존여비사회에서 여성교육은 망명 지사들이 이루어낸 교육혁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세 번째 기여는 전쟁 없이는 독립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은 것이다. 
사대교린의 외교정책으로 임진전쟁, 정유전쟁, 정묘전쟁, 병자전쟁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유지해온 조선의 사대부들은 국방을 튼튼히 세우기보다는 주변의 큰 나라에 적당히 기대는 사대정책을 선호하였다. 아이가 부모에게 기대듯이 큰 나라에 기대어 나라를 유지하며 권력을 잡으려고 했던 친청파, 친러파, 친일파, 친미파로 얼룩진 대한제국의 역사가 당시 사대부들의 나라의 주권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를 잘 보여준다. 헤이그밀사 파견, 파리강화회의 대표파견, 임시정부의 외교론, 상해파공산주의자들의 레닌 의존 등도 망명 지사들의 사대주의적인 자세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한국사회가 무저항, 비폭력 시위로 자랑하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3.1운동은 외교로, 평화로, 지혜로, 인내로, 여론으로, 지배자를 감복시켜서 독립을 얻으려는 사대부들의 자기도취의 결과물이 아닌가. 결국 조선반도가 일제에 의해 다 유린당하고 난 뒤에야 전쟁 없이 독립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망명 지사들은 3.1운동 후부터 독립군 양성을 위해 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단체를 만들지 않았는가 말이다. 

네 번째는 신분과 파벌에서 벗어나 연합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망명지에서 인간관계나 생활도 그대로 조선 생활의 축소판이었다. 관내나 동북지방이나 할 것 없이 기호출신은 기호출신끼리, 서북인은 서북인끼리, 한 사부 밑에서 공부한 동문들은 동문끼리, 대종교는 대종교끼리, 천주교는 천주교끼리, 개신교는 개신교끼리, 왕당파는 왕당파끼리, 공화파는 공화파끼리, 양반은 양반끼리, 상놈은 상놈끼리 어울렸다. 

1907년 용정에 통감부 파출소가 세워지면서 일제의 만주 진출로 고난과 시련에 직면한 이주조선인 사회와 지도자는 ‘간민교육회’ ‘간민회’를 통해서 비로소 자기 단체와 집단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연합활동을 시작하였다. ‘3.13 만세시위’는 교파, 지연, 신분을 벗어나서 하나 된 망명 지사들의 위대한 연합활동의 결과물이었고 이로써 연변의 조선인들은 파벌과 집단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독립투쟁을 위해 하나로 뭉치기 시작하였다. 봉오동전투에서 신민단, 도독부, 국민회군, 홍범도부대가 연합하였고, 청산리전투에서는 9개 이상의 무장단체가 연합해서 승리를 거두었다. 일반 백성들 또한 연합해서 군자금 모금과 독립군 지원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여 하나 된 조선인의 긍지와 승리의 기쁨을 함께 누렸다. 연합이 살 길임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명 지사들의 한계점은 분명하였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봉건사회의 장자라는 태생적인 한계가 그들의 의식과 활동을 제약하였으며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920년대 조선이주민사회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의 구호가 ‘반제반봉건’이었다는 것과 1917년 10월 혁명 이후 10년도 채 안 되는 상간에 조선이주민사회가 사회주의 물결에 휩쓸렸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그 이후로 만주는 사회주의노선의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근거지가 되어 1920년에 있었던 전투보다 더 치열한 항일 독립 투쟁을 벌였다. 20년 상간에 항일투쟁으로 희생된 열사가 무려 13,000여 명, 연변자치구에 세워진 조선족 열사기념비가 무려 610개에 이른다는 것이 바로 그 증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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