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10월 혁명의 승리는 많은 조선 독립투사들과 청년들에게 사회주의에 대한 신뢰와 꿈을 심어주었다. 레닌의 피압박민족의 해방에 대한 관심과 지원 약속은 조선의 독립투사들에게 한 가닥의 희망이 되었다. 이에 고무된 이동휘, 박애, 박진순은 1918년 6월 26일 연해주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을 결성하였고 김철훈, 이성은 또한 1919년 9월5일에 하바롭스크에서 ‘전러시아 고려공산당’을 결성하였다.
이동휘는 레닌의 자금으로 사회주의를 선전하는 잡지 [새벽종]과 소책자들을 만들어 동북지역에 배포를 하였다. 조선인이 집중되어 있는 연변에는 다양한 루트를 통한 신문과 잡지 그리고 여운형이 번역한 [공산당선언]을 비롯하여 [노동조합독본], [레닌], [우리 무산계급이 나아갈 길] 등의 책들이 재빨리 들어 왔다.
공산주의 간행물들이 밀물처럼 들어오자 이를 연구하기 위한 모임들이 속출하였다.
1922년부터 1923년에 이르는 기간에 용정의 대성중학교와 동흥중학교의 진보적인 학생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는 비밀 학습단체인 ‘광명회’를 설립하였다. 은진중학교 학생까지 망라한 30여 명으로 구성된 ‘광명회’ 학생들은 이인구와 이주화의 지도를 받았다.
1923년 2월 초에 최웅렬, 한상오, 오성륜은 북경 의열단원인 김강, 이열과 함께 영안현 영고탑에서 비밀 결사인 ‘적기단’를 결성하였다. 김사국은 1923년 3월에 조선에서 용정으로 와서 ‘동양학원’을 꾸리고 동북의 조선인은 물론 연해주의 조선 청년들까지 받아들여 공산주의 사상을 학습시켰다.
박윤서와 주청송 등이 1923년 9월에 연해주에서 용정으로 와서 동흥중학교의 진보적인 학생들을 담합하여 ‘사회과학연구회’ ‘학생친목회’ 등을 조직하고 과외시간을 이용하여 사회주의를 선전하였다. 상해 공산주의 단체에서 1924년 7월, 장기영 주건 등을 연변에 파견하여 옹성라자를 중심으로 청년학생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였다. 1924년 7월, 일본 동경에서 유학하고 용정에 돌아온 김봉익, 오리근, 주채희 등 공산주의자들이 ‘노동학원’을 만들어서 노동자들에게 공산주의와 노농혁명사상을 가르쳤으며 ‘노농동맹’을 창설하였다. 1924년 12월 길림성 반석현에서 김응섭의 발기로 ‘한족노동당’이 조직되었고 기관지 ‘노동보’를 통하여 노동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1924년 11월 반석현에서 반석일대 11개 단체의 22명 대표가 참석한 회의에서 ‘남만청년총동’을 창립하였다. 1925년 11월에 ‘북만노력청년동맹’이 결성되었고, 1926년 12월 봉천성 홍경현에서 ‘남만청년연맹’이 조직되었다. 1926년 1월25일 용정에서 동진청년회 등 20개 단체의 대표 28명이 모여 ‘동만청년총연맹’을 창립하였다.
1926년 8월에 조선공산당 중앙에서 파견된 조봉암 등이 용정에 조선공산당 동만구역국을 설치하였으며 산하에 9개구와 16개 지부를 건립하였으며 동흥중학교와 대성중학교에 4개의 지부가 있었다. 동만구역국의 상부인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은 1926년 초에 중동선 일면파에서 건립되고 본부는 영고탑에 두었으며 산하에 동만구역국 외에 남만구역국, 북만구역국을 두었다. 1926년 10월에 고려공산청년회 동만도위원회가 창설되었다. 1927년 12월 용정에서 ‘전간도조선인단체협의회’와 ‘동만여자청년동맹’이 결성되었다. 1927년 10월 중공만주임시성위가 설립되었고 1928년 5월에 동북조선족의 최초 공산당지부가 용정에서 건립되었고 8월에 중공동만특위가 건립되었다.
사회주의 사상이 일파만파가 되어서 연변조선인 사회를 뒤흔들었다.
양반상놈의 계급사회에서 숨을 죽이고 살았던 소작농민 출신의 1세대이주 조선인들과 2세대들은 착취 없는 세상, 평등한 세상과 대중적 투쟁에 대하여 비로소 눈을 떴다.
조기 공산주의자들은 연변의 조선족을 사회주의 세계로 인도하였고 사상을 접한 진보적인 학생과 청년들은 농촌순회 공연을 통하여 농촌 남녀 청년들을 조직하여 사상학습을 시키며 몸소 실천에 앞장을 섰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및 그 산하의 각 구역국과 기층조직들은 동북 각지의 조선인들에게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항일혁명사상을 선전하고 민족문화교육을 발전시키는 활동을 추진하였다. 기층 조직인 정치 야학교, 농민조합, 노동조합, 청년단체를 확장하여 동북의 도시와 농촌의 조선인 거주지에서 반제와 반봉건의 불길을 일으켰다. 1928년부터 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기 위하여 각파 성원들은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에 파견하거나 민족유일당촉성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인청년학생들과 조선 농민들을 이끌고 수차례나 항일시위운동을 벌려 일제침략자들에게 타격을 가하고 조선이주민들의 항일투지를 고무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투쟁은 거듭 탄압을 받았다. 일제는 1927년 10월, 1928년 9월, 1930년 4월에 걸쳐서 제1차, 제2차, 제3차 공산당검거사건으로 조선공산당의 수백 명 간부와 당원, 군중들을 체포, 감금하여 조선공산당 만주총국과 그 기층 조직을 파괴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생명을 걸고 저항하는 항일유격대와 동북항일연군을 괴멸시키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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