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오두막 편지], 이레, 2007.(1999년 1쇄)
그 절에서 십 분쯤 숲길을 따라 올라간 곳에 자리잡은 오두막은 벼랑 아래 돌과 흙과 나무로 지어졌다. 마당에 들어서면 앞이 툭 트여 멀리 바다가 내다보이는 그런 곳이다. 빈 집인데도 뜰은 말끔히 비로 쓸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집 구조는 수행자가 단촐하게 살기에 알맞도록 간소하고 질박하다. 높지 않은 마루를 올라서면 방 두 개가 장지문으로 이어져 있는데, 한 칸은 선방으로 썼음인지 빈방에 달랑 방석 한 장뿐, 불단으로 쓰기 위해 네모로 벽을 파 놓았는데, 불상은 없고 방석만 좌대 위에 도도룩하게 올려져 있었다. 그 빈 자리가 그 방에서 눈길을 끌었다.
장지문을 통해 들어선 작은 방은 유리 대신 투명한 비닐로 창을 바르고 안으로 창호지를 드리워 놓았다. 드리워진 창호지를 걷어 올리면 방 안에 앉아 차를 들면서 멀리 바다를 내다볼 수 있게 하였다. 한쪽에 조촐한 다기가 다포에 덮여 있었다. 그 창으로 달빛도 들어오고 봄바다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도 내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방 안은 더 소개할 거리가 없을 만큼 텅 비어 있었다.
추녀 밑에는 다음에 와서 살 사람을 위해 장작과 삭정이를 넉넉하게 준비해 두었다. 가지런하고 반듯하게 쌓아 올린 장작더미를 보면 그 일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훤히 짐작할 수 있다.
절에서 오두막으로 올라가는 경사진 길에도 군데군데 통나무로 층계를 만들어 놓아 그 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방 안은 말끔히 도배를 해 놓았다.
그 스님은 지난 겨울 한 철(석 달)을 이 오두막에서 지내다 갔는데, 그 자취를 보니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청정한 승가의 규범이 그곳에서 행해진 것을 보는 마음도 맑고 청정해졌다. 한 마음이 청정하면 여러 사람의 마음에도 그 청정의 메아리가 울리게 마련이다.
뒤에 올 사람을 위한 이와 같은 배려는 예전부터 온 전통적인 승가의 말없는 규범인데, 요즘에는 절에서도 마을집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규범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오두막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맑은 가난 속에서 길러진 따듯한 그 마음씨다. 자기 한 몸만을 위하지 않고 뒤에 와서 살 사람을 배려한 그 마음씨는, 우리에게 보여준 말없는 그의 가르침이다. 오두막을 내려오면서 말없는 그의 가르침이 이 오두막에서만이라도 두고두고 이어지기를 염원했다.
간소하고 질박한 삶의 모습에서 우리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숲향기처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모자람이 아니라 충만임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거룩한 가난의 성자, 프란체스코는 수도자의 집과 오두막이 그들의 신분에 어울리도록 보다 작고 간소하게 그리고 편리하게 지어지기를 항상 염원하면서 그런 집에서 머물기를 좋아하였다. 마지막 임종에 이르렀을 때에도 가난과 겸손을 보다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수도자의 집과 오두막은 꼭 나무와 흙으로만 짓도록 당부하였다. 그러면서 이런 집을 개인의 소유로 삼지 말고 그 속에서 순례자나 나그네처럼 살기를 원했다.
절제된 아름다움인 이와 같은 맑은 가난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일시적인 생활방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맑은 가난은 우리가 두고두고 배우면서 익혀 가야 할 항구적이고 지속적인 청정한 생활규범이 되어야 한다.
절제된 아름다움은 우리를 사람답게 만든다. 불필요한 것을 다 덜어내고 나서 최소한의 꼭 있어야 될 것만으로 이루어진 본질적인 단순 간소한 삶은 아름답다. 그것은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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