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신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이춘아 2021. 10. 8. 23:20

김용옥, [도올의 중국일기 2], 통나무, 2015. 

10월 3일, 금요일. 위대한 날씨

새벽 5시 반경 눈을 떴다. 창밖을 내다보니 먼동 속 어슬프레 푸른 색조로 다가오는 산세들이 위압적이면서도 인간적이다. 와아! 여기가 과연 주몽이 도읍한 그곳인가? 가슴이 설렌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라! 오늘 도망하는 중에 날 쫓는 자들이 이르렀으니 어찌하라!"

이 절박한 주몽의 외침이 귀에 쟁쟁히 들리는 듯하다. [삼국사기]에는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을 엄호수, 엄사수, 개사수 등의 말로 표현하고 있고, 호태왕비 비문에는 엄리대수로 되어있다. "엄리"를 "엄내"로 보아 그것을 "압록"의 고칭과 상통하는 것으로 비정하나, "엄니" "엄내"라는 것 자체가 큰 물이라는 뜻이니, 이 강은 대강 지금 흑룡강성과 송화강이 만난는 지역 언저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송화강은 다시 라린강과 만나는데, 그 아래는 아직도 부여현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하여튼 이런 이야기, 다시 말해서 그 긴박한 시점에 강으로부터 물고기떼와 자라떼가 떠올라 큰 물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고, 그 어별교는 그들이 건너자마자 사라져 추자들을 따돌렸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사실인가? 신화인가? [삼국사기]에는 어별의 떼로만 되어있고, [광개토대왕비]에는 거북이와 갈대를 엮어 제대로 된 다리를 만드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신화적 상상력의 차원에 있어서조차, 이러한 중대한 사건을 상상하는 우리민족의 관념적 스케일은 겨우 몇사람이 어떻게 거북이나 자라의 부력을 이용해 도강한 사건의 규모에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이스라엘민족이 모세의 영도하에 홍해에 이르렀을 때 시내산에서 영험성을 부여받은 지팡이로 홍해를 갈라 민족이 바다벽 사이로 이동하는 그 장쾌한 모습의 스케일을 연상하지는않는다. 그러나 양자는 동일한 신화적 표현이다. 진도 고군면 금계리 앞바다에서도 바다가 갈라지는 자연현상이 목도되곤 하는데, 하여튼 불가능하지만 가능할 수도 있는 자연의 현상을 조합하여 신화적 사건으로 지어내는 인간의 상상력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이다. 신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자아! 우선 이 환인에서 166km 밖에 안떨어진 곳에 이곳의 역사를 알려주는 당대의 기록(광개토대왕비)이 있고, 그 기록의 사실성과 실체성을 입증하는 수없는 유적(고분군이나 궁터, 성터, 그리고 여타의 벽화, 문자 자료)이 있다고 할 때, 이 환인의 흘승골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삼국사기]의 몇 줄에제약되어 있는 아득한 먼나라의 신화적 환영에 그치고 말 수는 없는 것이다. 

광개토대왕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 비는 그가 서거한지(AD 412) 2년 후에 그의 아들 장수왕이 아버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자기 아버지능묘 동편에 세운 것이다(AD414). 그러므로 이들에게 있어서 자기네 나라의 건국자인 시조 주몽의 이야기는 신화가 아닌 당대에 전승된 담론이다. 그러면 무엇보다도 우리의 모든 담론의 사실근거를 확보할 수 있는 확실한 자료인 비문을 한번 해석해보자! 이것은 서류상으로 조작할 수 없는 AD414년 당대의 확실한 언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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