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나빠지지 않는 감염’의 상태로 60대를 살고 있다. 나의 인생 이해나 자기 정체성 이해는 2016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렇지 않아도 또래보다 일찍 ‘기우는 몸’을 경험하기 시작한 내게 당시 4개월 정도 세 군데 병원의 상이한 병동에서 보낸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이 되었다. 몸으로,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아픈 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나이가 들면서 질병과 함께 ‘장애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통증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다른 감각을 갖게 되었다.
특히 돌봄의 ‘장’에 대해 체화된 문제의식을 지니게 되었다. 환자와 ‘보호자’, (종종 실제 보호자인) 돌봄/의존 노동자, 의사와 간호사, 환자를 방문하는 친구나 지인들. 여러 주체들이 상이한 이해관계와 마음, 감정, 시간 감각, 의례 등으로 구성하는 돌봄의 ‘장’은 2016년 이후 소중한 삶의 탐구 대상이 되었다. 특히 늙은 환자, 늙은 몸은 내 삶의 모든 층위에서 첨예한 각성을 일깨운다.
이제는 어떤 증상으로 병원에 가든 “다시 좋아지는 일은 없습니다. 더 나빠지지 않게 신경 쓰세요.”라는 말을 듣는다. 안과에 가든, 심혈관내과를 가든, 류머티즘내과를 가든, 산부인과를 가든 마찬가지다. 현상 유지에도 특별한 공력이 필요한 시간대를 얼마간 살다 보면, 나빠지는 것과 친해지는 시간대가 어느덧 시작되었음을 또 알게 될 것이다.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라는 말은 유행가 가사로는 매력적일지 몰라도, 현실은 아니다. 종종 6080 노년들 대상으로 나이 듦 관련 강의를 한다. 그들이 참여자이고 내가 강사지만,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늙고 있는 우리는 각자 경험하는 나이 듦에 대해 같고도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눈다. “마음은 청춘인데… 넘어지면 이전에는 타박상이었는데 이제는 골절상이라고 하네요. 마음을 계속 청춘으로 유지하는 방법이 없을까요?”라며 위로를 구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나이 들면서 품게 되는 질문들의 이모저모를 다룬다. 답이나 위로보다는 그야말로 질문들이 어디서 어떻게 구성되는지, 질문의 허상과 실상은 무엇인지, 누가 질문하고 그러면서 정작 누구를 소외시키는지 등에 가까이 다가가려한다.
나이 듦과 돌봄은 엄청나게 광대하고 포괄적인 영역이어서 늘 당혹스럽고 난감하다. 부분들이 명료하게 다 채워지지 않아도 큰 그림의 윤곽만은 제대로 그려야지 생각하는 동시에, 부분들을 가능한 더 얇게 저며 더 치밀하게 탐색하는 것이 밝혀줄 길들을 놓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페미니즘은 삶의 모든 국면, 그동안 역사가 구축해 온 지식체계 전반을 젠더 관점에서 낯설게 보고 새롭게 정초하는 데 힘을 써왔다. 그러나 그 페미니즘의 대안 세계 안에서도, 늙고 병들고 아프고 돌보며 돌봄받는 이들의 이야기는 변방에 머문다. 어느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늙은 이’를 가리키는 적절한 대명사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노인도, 노년도, 어르신도, 시니어 선배도,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할매나 할배도 다 온전한 자긍심을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현재로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즉 당사자들이 가장 무난하게 받아들인다.
예순 넘은 여성이라는 정체성도 다른 정체성들이 그렇듯 여러 층위가 교차하는 맥락의 한가운데서 세워지고 부서지고 또 다시 세워진다. 페미니즘이라는 대안 세계 안에서도 가장 변방에 있는 이 정체성의 당사자들이 어떤 이중 삼중의 대안을 꿈꾸고 살아낼지 궁금하다. 책임과 즐거움의 양 날개를 퍼덕이며 천천히 푸르른 창공을 날아오르는 당사자/성 운동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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