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여성독립운동 다시 보기

이춘아 2021. 12. 11. 21:12

(사)역사여성미래, [부부독립운동가 열전], 역사여성미래 총서3, 2021.

여성독립운동 다시 보기

15부부 외에도 그들의 친족 중에 부부독립운동가들은 상당수 더 있기도 하였다. 그런데 임정 등에서 활동한 (대체로 민족주의계) 부부들은 모두 다 서훈 됐지만, 의열활동이나 사회주의 노선을 지향한 여성들, 허정숙이나, 조선의용대에 참여한 이화림 등은 남편은 독립운동가로 서훈 됐지만, 그들은 안 되었다. 또한 박차정은 서훈됐으나 그의 남편 김원봉은 안 됐다. 민족주의계 부부는 대체로 둘 다 서훈되지만, 사회주의계에서는 둘 다 함께 되기 어려운 게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그런가 하면 이은숙의 사위 장기준은 되고 함께 활동한 딸 이규숙은 안 됐다. 그 밖에도 이런 사례들은 적지 않다. 또한 독립운동을 한 부부지만 둘 다 서훈받지 못한 예는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다. 주로 사회주의계 운동가들로 아직도 민족의 분단과 이념의 문제가 작용한 탓이다. 

그밖에 국제결혼한 부부의 예도 흔치 않게 있다. 국적을 불문하고 항일이란 목표 아래 협조한 부부들이다. 뒤준페이(두근혜)와 김성숙, 유자명과 중국인 처 등은 앞으로 과제를 미뤄 둔다. 또한 드문 경우이지만 부인이나 남편이 여럿인 경우도 세밀한 분석, 심층적 고찰이 요구된다. 젠더 시각으로 여성독립운동, 또는 그들의 삶은 어떠했는지? 그 상처와 피해는 없었는지 고찰해봐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앞에서 서술한 ‘살림’ 중심의 여성들이나 임정 활동과 무장투쟁에까지 발벗고 나선 여성들, 그리고 사회주의 여성단체를 조직하고 여성의식 고양에 주력한 여성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를 기초로 앞으로 더 많은 사례들을 심층 분석, 연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이 유교를 기반으로 한 양반여성이든, 기독교 집안의 신교육을 받은 여성이든, 또는 사회주의나 무장 투쟁을 접한 여성이든 그것은 모두 민족의 독립과 여성의 해방과 인권 회복이란 큰 목표 아래 이뤄진 것이었다. 또한 그들 삶의 터전이 국내든 중국, 또는 만주와 미주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든 상관없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실제 활동 방안에서 주어진 조건이나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실천을 달리한 것밖엔 아니었다. 

독립운동에 대한 올곧은 인식에 큰 걸림돌이 있다면, 이념이나 사상의 문제로 정부에서 서훈되지 못한 아내나 남편이 있다는 것도 우리 현대사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직도 남북한이란 분단 아래 현실적인 벽이 그들 부부를 갈라놓고, 독립운동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로막고 있음을 어렵잖게 보게 된다. 아마도 민족 분단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들을 제대로 기리고 바르게 기억하는 문제는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항일여성독립운동에 대한 사회인식, 역사인식에 일대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민족독립운동에 기여한 구체적인 여성의 역할이나 활동 양상이 남성과 동일한 잣대로 비교될 수도 없고, 비교 분석되어서는 안 된다. 남성과 함께 직접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했을 때도 그러하거니와 이른바 남성독립운동가들의 ‘뒷바라지’ 또는 ‘살림’이라는 내조적 역할이 단순히 보조에 그쳤다는 식으로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독립운동 일선에 나선 남성의 일은 중요하고, 그를 도운 여성의 일은 언제나 부차적, 보조적이었다는 선입관 또는 고정관념을 떨쳐낸다면, 여성의 일 ‘살림’과 역할이 자연스레 재조명될 수 있을 것이다. 

명분을 중시한 남성 못지않게 여성도 한 인간으로, 민족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하였다. 단지 여성은 말 그대로 이름 없이도, 남편을 대신하여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도, 가정과 민족을 지키기 위해 온갖 곤경을 무릅쓰고 후방을 지키는가 하면, 또한 후대 즉 민족의 자산이 되는 토대를 일궈낸 것이다. 당시 여성들의 이같은 분투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에 번영과 평화가 있을 수 있을까. 여성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이같은 재조명, 재해석은 여성사 인식에 대한 확장에도 기여할 것이며, 앞으로 한국 사회젠더 문제에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연구자들의 분발도 다짐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