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인도여행기 2, 2010

이춘아 2019. 8. 5. 16:54

인도여행기② 얼굴이 역사다

2010년 7월13일

이춘아 한밭문화마당 대표

 

 

로버트 카플란의 [지중해 오디세이] 중 밑줄 그었던 대목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면 거기 숨어있는 역사 때문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막연히 생각했던 인도인들은 영화나 사진을 통해 보았던 이미지였다. 실제 인도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사람들은 영락없는 중동사람들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남한의 33배나 된다고 하는 땅덩어리 만큼이나 많은 인종과 언어가 있다고 하지만 내가 다닌 인도 북부 지역은 고대에 유럽과 중동을 거쳐 이주해온 아리아인들이었음을 나중에 알았다. 

 

가보는 유적지중 몇 곳을 빼고는 대부분 이슬람 문명권 하에 건축되었던 것들이었기에 아라비안나이트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15-16세기 번성했던 이슬람 지배세력은 그 이전의 힌두 불교유적을 훼손시켰고 굳건한 이슬람식 건축물을 남겨놓아 문화유적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여행자들에게 오늘날 인도를 형성해왔던 전체 역사를 조망하는데 혼란을 주게 된다. 우리나라 역시 대부분 남아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중심으로 보게 됨에 따라 전체적인 이미지는 과거 역사가 조선시대만 있었던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어쨌거나 내 눈으로 본 인도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했으나 공통점은 잘 생겼다는 것이다. 움푹하게 들어간 쌍거풀진 검은 눈, 우뚝 솟은 콧날, 둥근 두상, 짙은 검은 머리. 현재 가난한 모습으로 비춰져서일 뿐 우리나라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형하고 싶어하는 모습이 아닌가. 긴 속 눈썹이 멋지게 휘어 올라간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결혼식 때 붙이는 가짜 속 눈썹이 얼마나 멋적게 여겨지는지. 

 

몇 달전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 잠시 시간 나서 보았던 인도네시아 영화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도사람 같았다. 인도네시아 역시 다양한 인종들이 있지만 영화배우 주인공 정도 되려면 인도풍의 얼굴이어야 될 것 같았다. 서기 1~2세기부터 인도는 축적된 부를 기반으로 동남아시아와 지중해 등지로 해외교류를 하였고 이미 이때부터 인종과 불교문화를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김해 허씨의 시조인 허황옥도 인도에서 불교와 차를 우리나라에 가져와 김수로왕과 국제결혼했다고 하지 않는가.

 

기원전 1천년 유럽과 중동에서 철기문명을 갖고 들어온 아리아인들과 혼혈을 시작으로(그 이전부터 있어왔겠지만) 기원전 300여년 그리스 알렉산더대왕의 침략을 통해 들어온 지중해 문명과 혼혈, 그리고 간다라 미술양식. 싫든 좋든 외부 상황에 의해 교류되는 끊임없는 혼혈이 다양한 언어만큼이나 다양한 DNA의 조합에 의한 얼굴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순혈 중심으로 고정되어 있는 우리나라 의식으로는 그 역사를 알지 못하면 감이 잡히질 않는다. 우리나라도 속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몽골형을 유지하고 있기에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고 있지만 순혈의 역사란 있을 수 없음을 해외여행을 통해 느끼게 된다.

 

간디기념박물관에서 본 간디 사진을 다시 본다. 간디가 인도사람인줄 알았지만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시기였던 1970년대 함석헌 선생과 간디가 겹쳐진다. 나에게 각인된 간디의 모습은 지금 다시 보아도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이다. 여행하면서 보았던 인도인의 모습과는 또 다르다. 너무 말라서인가. 간디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그의 캐치플레이즈가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My Life is My Message. 이미지 시대에 이 말만큼 강렬한 언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간디는 얼굴에서뿐 아니라 머리에서 발끝까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

 

 

                       자이뿌르 시티 팰리스내 안내원. 카이젤 수염이 짙은 눈썹과 눈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자청하여 포즈를 취하였는데 나중에 팁을 요구하였다. 

 

 

                     자이뿌르 외곽의 암베르 성에서 만난 오누이 모습. 아이들이 사진찍어 달라고 졸라 여러장 찍었는데,

                      찍은 화면을 보면서 좋아했다.

 

 

                              아그라에서 카주라호 가는 길가에서 - 빨래해서 널고 있는 여성

 

 

                    카주라호 동부 힌두사원에서 만난 남매- 동생을 안고 놀러나왔다. 여동생은 얼굴이 흰편이다

 

 

             카주라호 주민들이 식수차로부터 물을 공급받고 있다- 나역시 어릴때 우리동네에 식수차가 오면 신이 나서

             줄서서 물을 받아 머리에 이고 집으로 왔던 기억이 있다. 

 

 

                     바라나시 갠지스 강에서 보트를 저어가며 유창한 한국말로 설명해주고 있는 '철수'라 불리는

                     인도남성. 5개국어를 한다고 하는데, 관광객의 흐름이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길가면서 한국인 관광객들을 호객하는 '아줌마 어디가세요'라는 한국말을 심심찮게 들었다.

 

 

                                   인도에서 5위권에 든다고하는 바라나시 힌두대학에서 길을 안내해준 학생과 함께.

                                   선량하고 잘 생긴 젊은이였다. 아리아계통과 몽골계통이 비교된다.

 

 

                         통학 버스 아닌 자전거, 초등학생들도 교복을 입고 있다. 

 

 

                  망고와 야자를 팔고 사는 사람들. 인도 망고는 정말 맛있다. 초록망고를 사면 다음날 속이 익는다.

                  노란색 망고는 사서 금방 먹어야한다. 망고를 먹기 위해 과도까지 샀다. 인도에서 마지막날

                  길에서 파는 노란망고 쥬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에라 하고 사먹었는데 일주일 가량 배탈을 앓았다.

                  집에와서 그랬으니 다행이다. 

 

 

                          델리 간디기념박물관의 간디 초상화 - 간디가 인도사람인줄은 알았지만

                          70년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과의 연장선상에서 만났기에 고뇌하고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간디였지 인도인의 모습으로 느낀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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