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수 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동네책방], 사계절, 2022.
(71~82쪽)
‘오래된 미래’ - 잃어버린 영혼을 만나는 곳, 면천읍성 안 작은 책방
책방지기 지은숙
“혹시 작가님인가요?”
“아니요, 전혀!!! 저는 그저 책만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책방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작은 마을에 책방을 차린 이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묻는다. 하지만 작가가 아닌 나의 대답은 분명히 그들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내 마음에 맞는 책 읽기만 좋아하는 내가 책방을 하기에는 뭔가 자격미달인 듯하여 민망해진다. 그래도 다행히 “사장님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 책방 곳곳에 묻어 있네요.”라고 공간에 담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손님들이 있어 감사하다.
책방을 해서 좋은 이유는 너무나 많다.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판매한다는 구실로 책을 들이고, 읽고 싶은 책을 바로 꺼내서 볼 수 있다. 책 팔아서 책을 사니 수익이 거의 없다는 한 가지 단점을 빼면 장점은 백 가지도 말할 수 있다.
그래도 그중에 가장 좋은 일은 날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새로운 만남에 소극적이고 낯가림이 심한 나에게는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책방을 하는 큰 이유이다. 그러다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고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스며들어 혼자 생각만 하던 일들을 같이 실행하며 꿈이 현실이 되는 기쁨을 맛본다. 책방을 유지하는 힘은 바로 그 다양한 사람들의 발걸음에 있다.
책방을 한다는 것은 날마다 다른 오늘을 선물 받는 일이다.
60년이 넘은 구옥인 책방은 아침마다 처마 끝에, 건물 모서리에 실낱처럼 엮인 거미줄을 쳐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휴무라 한가로이 옥상에서 커피를 마시던 어느 날, 비 그친 뒤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거미줄을 자세히 바라본 적이 있다. 촘촘히 쳐진 거미줄은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감탄스러워 방에 있던 아이를 불러 함께 바라보며 신기해했다. 이렇게 옥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일이나 책방의 곳곳에 앉아 여유를 누리는 일은 일주일에 한 번 책방 휴무일에나 가능하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내가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내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책방을 좋아해서 꾸준히 들러주는 사람들, 온라인 주문보다 늦게 도착하는 책을 수고로이 직접 방문해 찾아가는 사람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일을 분담해주는 사람들로 인해 ‘오래된 미래’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나의 책방이 아닌 우리들의 책방이 되었다.
이렇게 거미줄처럼 촘촘히 엮인 인연은 책방을 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들의 책방이 흉물스럽고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걷히지만 않는다면, 책방을 중심으로 견고하고 아름다운 인연들이 더 넓고 두텁게 확장되어갈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책방2층에 있는 140자 원고지에 첫 글을 남긴 손님이 있다.
“아침 여덟 시, 출근길 버스에서 어제와 다른 곳에 내렸다. 터미널, 졸던 눈을 뜨니 당진의 서점에 와 있는 나를 누가 알 수 있었을까요.”
이 글은 내가 면천이라는 작은 마을에 책방을 연 이유이기도 하고 책방에 오시는 분들에 대한 바람이기도 하며 지금까지 책방을 열고 있는 힘이기도 하다. 그분이 이곳에 다시 방문하셨는지는 모르겠다. 면천은 작은 관광지이기도 해서 손님의 반은 마을관광이나 책방투어를 오는 외지 손님들이다. 그래서 꾸준한 인연보다 다시 보지 못하는 분들이 더 많다. 그분들이 잊히지 않고 기억에 남는 이유는 책방에 시간과 마음을 놓아두고 가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래 계속해주세요.”라는 한마디는 그래서 눈물겹도록 감사하다.
늘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도 책방이 하고 싶어서 엉엉 울음을 쏟아냈던 처음 그 마음으로 책방을 운영할 수 있을까? 아직은 그렇다. 책방을 하는 일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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