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태, [두 번의 자화상], 창비, 2015
(188~197쪽)
“드러누워 있으니 성한 사람도 안 쑤시고 배겨? 나가서 바람도 쐬고 몸뚱어리를 움직여야 허리도 펴지, 원.”
벽을 기댄 심 씨가 한숨을 쉬며 꺼졌다.
“어쩌오. 생겨먹은 바탕이 약골인데.”
“그 말본새는 평생 살아도 왜 적응이 안 되는지 몰라.”
“내 말이 그 말이요.”
그래 놓고 심 씨는 드러누웠다.
“암튼 저녁 참에는 읍내에 좀 나갔다 와야 하니까 가게 좀 봐.”
“……”
“시향 준비하려 그래. 올해는 돼지머리랑 떡도 맞추고 전역한 부사관들도 좀 부르려네.”
“인제 땅도 내놨는데 그 진을 왜 해요?”
“그러니까 마지막으로다 좀 차려보겠다는 거지.”
“훈장 받겠네.”
“다 나 편하자고 하는 짓인가?”
심 씨는 휘뚝 일어나 앉았다. 허릿병은 역시 아닌 모양이었다.
“자기 몸 편한 짓은 그렇게 재바르면서 왜 나한테는 그 모양이오? 삼십 년을 자기 맘대로 이 골짝 저 골짝 끌고 다닌 양반이오, 당신이. 이 나라에 있는 삼거리라는 동네를 일곱 군데나 살아본 년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다방 레지들도 그렇게 안 살아봤을라. 이제 자식들 가까운 데로 나가 살면 좀 좋소. 안산 큰애도 옆으로 오라 하지, 대전 딸애도 새 내준 아파트 내주겠다고 하지. 두 내외 몸만 쏙 빠져나가면 될 걸 이 골짜기에 뭘 묻어놨다고 말뚝질을 하느냔 말이오? 여기에 고향 선산이 있어, 부쳐먹을 전답이 남았어? 구멍가게도 그래요. 오늘 닫아도 아쉬워할 사람 하나 없는 판에 뭔 돈벼락을 맞겠다고 지키고 앉은 속을 통 모르겠네.”
심 씨는 받은 입에 침을 삼켰다.
“연금이 안 나와, 손 벌리는 자식이 있어? 내가 뭐가 아쉬워서 이 나이에 이 골짜기에서 낮에는 고추 고랑에서 개미한테 뜯겨, 밤에는 침침한 눈으로 미싱을 돌리냔 말이오. 뭐 이런 팔자가 있는지 몰라. 당신이 나를 사람 취급한다면 이리는 안 하지. 열여섯에 객지가서 미싱 돌리다가 직업군인 신랑 만난 것도 원통해 죽겠는데, 이 나이까지 군부대 나팔에 깨고 자고 해야 쓰겠소?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을라.”
드디어 심 씨는 눈이 벌게졌다. 무릎을 쓸며 울었다. 이건 노인이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만날 하던 소리, 인저 지겹지도 않은가?”
노인은 헛기침을 놓으며 슬그머니 뒷방을 나왔다.
네시 반 군내버스가 들어왔다. 휴가와 공용 출장에서 복귀하는 인근 부대의 병사들이 여남은 명 내려서 가게로 몰려들었다. 조용한 가게가 이내 소란스러워졌다.
비닐봉지를 하나씩 꾸린 병사들이 썰물처럼 가게를 빠져나갔다.
노인은 병사들이 컵라면을 먹고 사라진 시식대를 치웠다. 그러고 보니 이등병이 보이지 않았다. 노인은 가게 마당으로 나서 보았지만 흔적이 없었다. 맡은 아이를 잃은 사람처럼 노인은 더럭 겁이 났다.
얼마나 가게 주위를 서성거렸을까. 김 중사에게 알려야지 하고 가게로 들어설 때였다. 병사가 나타났다. 그는 강가 언덕으로 올라왔다. 걸음이 태연했다. 노인은 호통을 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물로 낯을 씻었는지 얼굴이 젖어 있었다. 젖은 데가 얼굴만이 아니었다. 눈자위가 붉었다. 노인은 모른 체했다.
병사는 시식대가 제자리인 듯 그곳에 도로 박혀 앉았다. 노인은 계산대에 앉아 물었다.
“대학 다니다 왔어?”
“네.”
병사가 힘없이 대답했다.
“양친은 계시고?”
“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언제 갈까 싶지? 그래도 가게 앞에 트럭 받쳐놓고 전역하게 됐다고 인사하는 날이 금방 온다네.”
병사는 성끗 웃었다.
노인은 졸음이 몰려왔고 의자에 깊숙이 몸을 부렸다. 병사도 몸을 돌리고 앉았다.
김 중사는 다섯 시가 넘어서 돌아왔다.
이등병은 비닐봉지를 챙겨서 육공트럭으로 달려갔다.
김 중사가 떠나지 않고 가게로 들어섰다. 그는 낡은 예초기 정비가 늦어졌고, 신형 예초기를 세대나 수령했다고 말했다.
“벌초 작업이 좀 당겨지겠네.”
노인이 말했다.
“예. 한 이틀 뺑치면 끝나겠어요. 근데 주임상사님!”
하고 김 중사는 노인을 불러놓고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
“올해도 꽃이 올까요? 김 대위 말이에요.”
북한군 묘역의 묘지 하나를 두고 이르는 말이었다. 김광식 대위는 1992년 서해 반잠수정 침투사건 때 사살된 여섯 명의 무장 침투공작원 중 하나였다. 중국군 묘역과 달리 북한군 묘역에는 성묘객이 없었다.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재작년과 작년 이맘때 김광식 묘지 앞에 국화 다발이 놓이는 일이 벌어졌다.
처음 국화 다발을 발견한 이는 벌초 작업을 지휘하던 김 중사였다. 김 중사가 시든 국화 다발을 들고 노인의 고추밭으로 내려왔다. 밭일을 하며 성묘객들을 노상 지켜보는 노인이었으므로 김 중사는 뭘 아는지 탐문하느라 그랬겠지만 기분이 묘하다는 표정이었다.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간첩 무덤에 놓인 국화라…. 그때는 서로 놀랐지만 어떤 철없는 관광객이 감상에 젖어 벌인 일이거니 추측하고 말았다. 연고자가 아니더라도 꽃다발을 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에도 그 묘지 앞에 국화 다발이 놓였다. 이번에는 박 노인이 식전에 밭을 둘러보다가 발견했다. 이남에 무덤 연고자가 있다는 의미였다. 노인은 미궁에 빠진 느낌이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노인과 김 중사는 심란해졌다.
“남파된 간첩의 소행이 아닐까요?”
“그건 너무 소모적이지 않나? 적지에서 죽은 공작원 무덤에 꽃다발을 갖다 놓으라고 공작원을 보냈다는 소리인데, 정신 나간 소리지.”
“아니, 군인은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소리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그쪽에서 영웅일 테니 유해를 수습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어요.”
“뼈 도둑질을 한다는 소린가?”
“그렇죠.”
“뼈 도둑질을 하면서 흔적은 왜 남겨? 국화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잖은가?”
“그건 그러네. 그럼 혹시 이런 가정은 어떤가요? 그때 남파된 공작원이 총 여섯이 아니라 더 있었다. 혹은 말이에요, 여섯이 다 사살된 게 아니다. 생포된 공작원이 있었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된 전직 공작원은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동료의 무덤을 찾는다.”
“영화 같은 소리네. 나는 말일세, 동료라기보다 가족이 아닐까 싶어. 요새 이쪽에 정착한 탈북자가 좀 많은가. 저 김 대위한테도 가족이 있었을 거란 말이지. 노모라든가, 형제라든가, 결혼을 했다면 아내라든가 말이야. 또 아는가, 남파될 때 어린 자식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커서 북을 탈출했는지?”
“그래도 저 사람 정도면 그 유족들을 북에서 어쨌든 돌보지 않았까요. 넘어올 이유가 있겠느냐고요.”
“모르는 소리. 저 사람들이 왜 여기에 묻혀 있는데? 자기 공작원이라고 인정을 안 하니까 여기 버려져 있는 것 아니냐고. 우리 쪽에서도 북파공작원을 인정 안 해줘서 당사자들도 힘들게 사는데 그쪽이라고 다를까.”
끝도 없는 추론이 결론도 없이 한해를 넘기고 그맘때에 이르렀다.
“글쎄, 올해도 한번 지켜봐야지.”
가게 앞까지 따라나서며 노인이 말했다. 김 중사는 중얼거렸다.
“참 궁금하단 말이야. 대체 누가 성묘를 다녀가는 거야? 며칠 병력을 매복시켜볼까요?”
“거기에 꽃다발 바친다고 죄는 아니잖은가? 우리 호기심 채우자고 그런 일을 벌여?”
“궁금해서 그러죠.”
김 중사는 떠날 채비를 했다. 트럭에 오르기 전, 그는 봉투를 건넸다.
“올해는 관두지.”
“받으세요. 양 상사랑 형님들한테는 제가 전화를 드리려고요. 박 상사님도 오시겠다던데요.”
노인은 김 중사의 팔을 끌어 세웠다. 노인은 트럭에서 등을 돌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현역들은 빠지는 게 어떨까? 괜히 오해받을까 걱정이네.”
“우리도 마음이 불편해서 그러죠, 뭐.”
“어이, 김 중사.”
노인은 김 중사를 트럭에서 한 발짝 끌어 세웠다. 그는 속삭이듯 말했다.
“저 녀석 말일세. 여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신경 써야겠어.”
“그렇죠? 제 입으로 뭐라고 그래요?”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몇 달 지나면 툴툴 털겠지만 티 내지 말고 다독여줘. 아무것도 안 보이는 때 아닌가.”
“글쎄 말이에요. 한번 살짝이 떠봐야겠어요. 한 녀석이 또 있어요. 편모슬하에서 자란 아이인데 너무 말이 없어서 속을 알 수가 없네요.”
“그래, 어서 가게나. 오늘 일직 선다면서.”
트럭이 떠났다.
산 그림자가 내리고 있었다. 노인은 고추 멍석을 거두었다.
가게 안팎으로 전등을 켜고 노인은 읍내 나갈 준비를 했다. 심 씨는 어두워진 방에서 조용했다.
“죽 좀 사다 줄까? 입맛 돌리는 데는 삼거리 족발도 괜찮을 듯싶고.”
아랫목에서 끙, 돌아눕는 기척이 들렸다. 괜한 걸 물었는지 모른다. 제 집 식구한테는 왜 이리 서툰가, 노인은 열패감이 들었다. 노인은 오늘 아내가 제 속마음을 다 벌려 보여주었다고 여겼다. 그간 몰랐거나 새삼스러운 것도 없었지만 아내의 진심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이제 자신이 대답할 차례였다. 아내 말대로 여기를 떠날 수 있을까? 못 떠날 것도 없었다. 어차피 떠도는 인생이었다. 그러나 노인은 문득 두려움에 떠는 자신의 얼굴을 마주한 느낌도 들었다. 오열하는 아내를 지켜보며 자신이 몇 남지 않은 인생의 계단 하나를 툭 밟고 내려선 기분이 들었다.
노인은 가게를 나서며 오늘은 이만 문을 닫을까 궁리했다. 그러다가 이내 마음을 바꿨다. 어쨌든 아내가 일어나 문지방으로 넘어와야 했다. 집에서 나온 게 자신이 아니라 어떤 사나운 기운인 듯싶었다. 문득 남의 집에서 나와 여행길에 든 사람처럼 외로움이 몰려들었다.
골짜기 아래에서 버스가 올라왔다. 노인은 김 중사가 주고 간 봉투를 꺼내보았다. 십만 원이 들어 있었다. 이런 일들, 적군의 묘지에 제물을 올리는 아주 생경하고 특이한 경험들에 대해 그는 생각했다. 군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왠지 감당이 안되지만, 그러나 은밀하게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이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게 인간적인가? 그래서 나는 사람인가? 그는 이런 수수께끼 같은 질문에 거듭 시달렸다.
버스가 닿았다. 병사들이 내리고 노인은 올랐다. 병장 하나가 버스 계단에 서서 소리쳤다.
“가게에 할머니 계시죠?”
노인은 잠시 망연히 섰다가, 들어가 보라고 손을 까불렀다. 병사들이 우르르 가게로 몰려갔다. 노인은 제 집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개를 들고 눈을 떼지 않았다. 그것은 참으로 거대한 산 밑에 앉은 작은 불빛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제 작은 집이 더 애틋해졌고, 제 인생에 남은 건 아내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군묘지 초입에서 버스가 멈추었다. 처녀 하나가 버스로 올라섰다. 인근에서는 못 보던 처녀였다. 흰 남방에 청바지 차림이었고 등에는 작은 배낭을 메고 있었다. 이런 평일에 애인을 찾아온 면회객 일리 없고, 이 골짜리로는 인가도 없었다. 처녀는 노인 맞은편에 앉았다. 군인을 애인으로 두기에는 조금 나이 들어 보이기도 했다. 노인은 어떤 직감에 몸이 경직되었다.
버스는 노인과 처녀만을 태운 채 강가를 달려갔다. 노인은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처녀는 이어폰을 귀에 걸고 휴대폰에 고개를 박은 채 아무 곳에도 눈길을 던지지 않았다. 국화를 안고 묘지에 오르는 처녀를 그려보았다. 공연한 상상 같았다. 적군묘지는 누구든 한 번쯤 구경해보고 싶은 곳일 수도 있었다. 서울에서 한나절 만에 다녀올 수 있는 관광지 같은 곳. 어떤 사연도 없이 외진 섬을 찾아갔다가 알 수 없는 인생을 보고 오는 젊은이들처럼 처녀도 그런 여행길로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나이는 제 그리움으로 채색된 엉뚱한 여행들을 하는 나이니까. 기억에는 오래 남지만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는 한나절의 여행을 처녀는 다녀오는지도 모른다.
올해도 김 대위 무덤 앞에 국화가 놓인다면, 그래서 내일 아침에라도 자신이 꽃을 발견한다면? 노인은 생각했다. 아까부터 드는 생각이지만 그 꽃을 남모르게 치워야 하지 않을까. 김 중사도 아마 그럴 테지. 누구도 국화를 목격하지 못할 테고. 그래서 누군가의 성묫길은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제야 노인은 처녀에게서 놓여나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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