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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옌, [개구리](심규호 유소영 옮김), 민음사, 2012. 한국어판 서문
‘나는 왜 [개구리]를 썼는가?
중국 독자가 왜 이런 소설을 썼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에게 50여 년간 시골 마을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했던 고모가 있다. 성격이 분명하고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인데 우리 가오미 현 둥베이 향에서 상당한 명성을 누리고 있으며, 우리 가족 중에서도 가장 연장자에 속한다. 우리 가오미 둥베이 향의 아이들은 몇 대에 걸쳐 그녀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는데, 나는 물론이고 나의 딸 또한 그녀가 받은 아이들 가운데 하나다. 그녀는 지금 여든이 넘어 이미 수년 전에 퇴직했지만 여전히 여인들이 진료를 받거나 문의를 하러 찾아오고 있다. 1980년대부터 창작 활동을 시작한 나는 고모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동안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고모에 대해 쓰려면 중국의 ‘계획생육’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문제는 중국의 기본적인 국책으로 대단히 민감한 문제이고, 수년 동안 서방에서도 이 문제를 가지고 중국을 비판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고모에 대해 쓰면서 ‘계획생육’의 문제를 회피한다면 근본적으로 소설이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고모라는 인물의 다양성과 다면성이 바로 ‘계획생육’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른바 ‘계획생육’은 인구를 계획적으로 조절한다는 뜻이다. 이는 그 자체로 잘못이 없으며, 문명사회에서 당연히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의 ‘계획생육’은 문제가 지극히 복잡하다. 1980년부터 중국 정부는 도시에서 ‘한자녀' 정책을 실시했다. 부부가 평생 아이 한 명만 낳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광대한 농촌에서 한 쌍의 부부가 남자아이를 낳을 경우 더 이상 낳지 못하며, 만약 첫째가 딸일 경우 8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한 명을 낳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정책은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중국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수많은 가정에서 셀 수 없을 정도의 고통과 비극을 안겼다. 도시에서 ‘한자녀'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그나마 어려움이 덜했지만, 농촌 사회에서 이를 시행하자 요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저항이 격렬했다. 정책이 시행되던 그 몇 년 동안 중국 각급 정부는 ‘계획생육’ 정책 관철과 실행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간주했다. 지방 정부의 각종 과업이 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올렸다고 할지라도 일단 생육지표를 초과하면 간부들이 비판과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이렇게 해서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생육지표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것이 지방 각급 정부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야만적이고 비인도적인 행위가 발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일이었다. 내 고모는 우리 가오미 둥베이 향에서 가장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계획생육’의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그녀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거나 산부나 가족들의 웃는 얼굴을 보는 데 익숙했다. 그러나 돌연 모든 것이 뒤바뀌면서 그녀는 병원에 끌려온 임부의 낙태 수술을 해야 했고 그녀들의 통곡 소리와 그 가족들의 욕설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녀의 깊은 마음 속 고통과 모순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정도를 벗어난 것이었다. 나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고모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갑자기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사실 간단했다.그것은 바로 고모를 대상으로 쓰는 것이었다. 나는 아주 분명하게 나 자신에게 일렀다. 나는 중국 ‘계획생육’의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쓰는 것이며, 소설을 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을 쓰는 것이라고. 나는 ‘사람을 똑바로 보고 쓰기’로 했다. 고모를 원형으로 하고 허구와 상상을 덧붙여 세계문학에서 일찍이 출현한 적이 없는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만약 그런 인물을 제대로 묘사해 낸다면 소설은 성공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실패할 것이다. 이렇게 쓴다면 ‘계획생육’은 역사적 배경이 될 것이고, 인물을 형상화하는 데 필요한 것이 될 것이다. 물론 창작 과정에서 많은 장애를 만났지만 나는 나의 문학적 지혜를 통해 이런 장애를 극복하고자 했다. 나는 소설 구성에서 서신체와 연극을 서로 결합시킨 새로운 형식을 창조했다. 이는 분량이 너무 많다는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며, 동시에 허구와 진실이 번갈아 등장하는 방식과 ‘연극 속에 연극이 있는’ 일종의 소격효과는 소설의 서사 공간을 크게 확대기켜, 소설을 더욱 풍부하고 다의적으로 만들 것이다.
[개구리]를 통해 한국 독자들이 필자의 자비심에서 발로한 서원을 이해하고 아울러 인간의 고통과 존엄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2012년 5월 5일
모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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