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지미르 메그레, [소리내는 잣나무](아나스타시이 2, 한병석 옮김), 한글샘, 2015.
(29~37쪽)
아나스타시아를 처음 만났을 때, 독특한 외톨이라고생각했다.
이제 그녀에 대해 사람들이 말하고 쓴 것을 듣고 본 지금, 그리고 그녀가 우리의 삶에 침투한 지금, 그녀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되어 버렸다. 내 머리는 혼란스러워졌다. 그동안 수없이 접한 정보나 주장들을 제쳐두고 단순했던 처음의 인상으로 돌아와 본다. 그리고 내게 자주 던진 질문에 답해 보고자 한다. 왜 아나스타시아를 타이가로부터 끌어내지 않았고?
나도 아나스타시아를 타이가로부터 무척이나 끌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강제로는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우리 세상에 나와야 할 명분과 구실을 찾아야 했다. 그녀의 능력 중 일부를 어떻게 하면 그녀 자신과 사람들과 나의 회사에 유용하게 쓸 수 있을까 궁리해 보았다. 그리곤 무릎을 탁 쳤다. 내 앞에 서 있는 아나스타시아는 돈을 찍어내는 진짜 기계였다. 그녀는 사람의 병을 쉽게 치료한다. 진단 내리는 과정도 없이 그냥 몸 속에 들어온 모든 병을 쫓아낸다. 몸을 만지지도 않는다. 난 스스로 체험해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정신을 집중한다. 선하고 푸른 눈은 깜빡이지 않고 쳐다본다. 그러면 몸이 그녀의 시선을 받아 따뜻해지는 느낌이고 발에서 땀까지 난다. 땀과 함께 온갖 유독물질이 몸 밖으로 배출된다.
사람들은 약과 수술비로 큰 돈을 지불한다. 한 곳에서 못 고치면 다른 의사한테, 무당한테, 치료사한테 찾아 가서 병을 고친다. 치료에는 몇 주도 걸리고 몇 해도 걸린다. 그런데 아나스타시아는 딱 몇 분이면 끝난다. 아나스타시아가 한 환자한테 15분을 할애한다 해도, 그리고 그 비용으로 10불을 청구하면(민간요법사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이 받지만) 한 시간에 40불이다. 어디 그뿐인가? 수만 불짜리 수술도 있지 않은가…
내 머릿속에는 훌륭한 사업계획이 그려지고 있었다. 난 몇 가지 세부적인 내용을 정리할 참으로 아나스타시아한테 물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어떤 병이든 쫗아낼 수 있단 말이지?“
”그래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을 거야.“
”한 사람 치료하는 데 얼마나 걸리지?“
”오래 걸리는 때도 있어.“
”오래? 얼마나?“
”언젠가는 10분 넘게 걸린 적도 있어.“
”10분은 시간도 아니야. 병을 고치기 위해 몇 해를 보내기도 해.“
”10분은 아주 긴 시간이야. 난 정신을 집중해야 하거든. 깨달음의 과정도 정지해야 한다고…..“
”그거야 뭐. 도 닦는 것은 나중에 해도 돼. 그렇지 않아도 당신은 엄청나게 아는 게 많잖아. 내게 좋은 생각이 하나 잇어.“
”무슨 생각?“
”나하고 같이 가. 큰 도시에서 근사한 사무실을 임대하고 광고도 하고 당신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거야. 당신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하게 되고 우리는 돈도 많이 벌 거야.“
“난 그냥 사람들을 치료해 줘. 다즈니키들이 주변의 식물세계를 이해하도록 하려면 난 여러 상황을 모델링해야 하는데, 이때 내 빛 줄기가 사람들의 병을 쫓아내거든. 그런데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
”당신이 고쳐 주는지도 사람들은 모르잖아. 돈을 내지 않는 것을 고사하고 고맙다는 인사도 안 하잖아! 그렇게 일하고도 당신을 아무것도 안 받잖아.“
”받아.“
”뭘?“
”기쁨을 얻지.“
”좋아. 그렇다고 쳐. 그럼 당신은 기쁨을 얻어. 나는 소득을 얻을 테니까.“
”병을 치료할 돈이 없는 사람은 어쩌고?“
”뭐 벌써부터 사소한 걸 갖고 그래. 그건 당신 일이 아니야. 당신한텐 비서도 있고 메니저도 붙을 거야. 당신이 할 일은 치료하고, 기술을 더 연마하고 세미나에 다니며 경험을 교환하는 거야. 당신의 치료법, 당신의 빛 줄기가 어떻게 적용하는지 알지? 어떤 원리가 작용하는 것인지 알지?“
”알아. 세상에서도 이 방법을 알고 있어 의사나 학자들은 알지. 그것의 좋은 효과를 느끼고 있어. 병원에서는 환자를 대할 때 명랑하게 얘기하지. 환자의 기분이 좋아지도록. 의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아는 사실이지만, 사람이 우울한 상태에 있으면 병을 고치기 어렵고, 약도 도움이 안 돼. 그런데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면 병은 금세 사라져.“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 치료법을 더 발전시키지 못하지. 당신처럼 말이야?“
”많은 학자들이 열심히 연구 중이야. 민간요법 의사라 부르는 사람들도 이 방법을 이용해. 예수 그리스도, 성자들도 이 방법으로 병을 고친 거야. 성경에서는 사랑에 대해 많이 얘기하지. 이건 사람들에게 이로운 감정이야. 모든 감정 중에서 가장 세지.“
”민간의사나 의사들한테서는 약한데 당신한테서는 어떻게 그렇듯 쉽게 그리고 강하게 나오지?“
”그 사람들은 당신 세상에 살기 때문에 그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감정을 자신에게 들이거든.“
”치명적인 감정이 여기에서 왜 또 나와?“
”블라지미르, 치명적인 감정이란 다름아닌 화, 증오, 분노, 시기, 질투 등이야. 이런 감정들이 사람을 약하게 만들어.”
“그럼, 아나스타시아. 당신 화 잘 안 내?”
“난 결코 화 내지 않아.”
“좋아. 아나스타시아! 어쨌든, 무슨 원리로 그런 효과가 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결과가 중요해. 그리고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도 나랑 같이 가서 사람들 병을 치료할 거지?”
“블라지미르, 내가 살 곳은 여기야. 여기에 있어야만 난 나의 소명을 다할 수 있어. 부모가 지은 사랑의 공간보다 더 큰 힘을 주는 것은 세상에 없어 사람을 치료하는 것, 육의 병을 제거하는 것은 원격으로 빛 줄기를 활용해서 할 수 있어….”
“블라지미르, 당신이 큰 돈을 벌고 싶은 것 이해해. 큰 돈을 벌 거야. 내가 도와줄게. 다만 그런 식으로 돈을 벌면 안 돼. 당신 세상에선 치료의 대가로 돈을 받지. 그 외 다른 방도가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돈 받고 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또 난 누구나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치료하지는 못해. 어떤 경우에는 치료가 이익이 되고,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해가 되는지 나는 다 알지 못하거든. 하지만 깨닫도록 노력할께. 깨달음이 오면 바로….”
“블라지미르. 병 치료에 환자 자신이 직접 참여하지 않을 경우, 얼마나 큰 해가 되는지. 할아버지께서 내게 보여주신 적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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