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곡정필담(鵠汀筆譚)

이춘아 2023. 3. 25. 09:30

박지원, [열하일기 2](김혈조 옮김), 돌베개, 2014(2009 초판)

(378~379쪽)
‘곡정필담’ 머리말

어제는 윤공의 처소에서 이야기하느라 날이 저무는지도 몰랐다. 윤공은 때때로 졸면서 머리를 병풍에 박았다. 내가 "윤 대인께서 고단하신 모양이니,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라고 했더니 곡정은, “조는 사람은 졸면 되고 말하는 사람은 말하면 되니 상관없습니다.”라고 한다. 

윤공이 잠결에 그 말을 얼핏 들었는지, 곡정을 향해 무어라고 몇 마디 한다. 곡정은 머리를 끄덕이며 즉시 필담하던 초고를 거두고는 내게 읍을 하며 같이 나가자고 한다. 윤공은 노인인데다 나 때문에 일찍 일어나 정오가 지나도록 필담을 주고받았으니, 그가 고단하여 졸음이 오는 건 조금도 괴이할 것이 없다. 곡정은 내일 아침에 조찬을 준비할 터이니 함께 식사를 하자고 청한다. 
내가 “매번 이야기하는 자리가 항상 시간이 짧아서 유감이니, 내일은 응당 일찌감치 가겠소이다.” 라고 하니, 곡정이 즉시 좋다고 한다. 

다음 날 사신은 5경(새벽 3~5시)에 일어나 조정 반열에 참여하러 갔고, 그 시각에 나도 함께 일어났다. 바로 곡정에게 가 촛불을 밝히고 이야기를 했다. 도사 학성도 같이 만났는데, 윤공은 새벽에 이미 조정에 들어갔다고 한다. 밥을 먹으며 필담하느라 종이 서른 장을 갈아 치웠으니, 인시(새벽 3~5시)에서 유시(오후 5~7시)까지 무릇 열여섯 시간이었다. 학성은 늦게 참여했다가 먼저 갔기 때문에, 필담의 초고를 정리하고 차례를 정하여, 이를 ‘곡정필담’이라 하였다. 

(471~473쪽)
덧붙이는 말

나는 곡정과 필담을 가장 많이 하였는데, 엿새 동안 창문을 마주하고 밤을 새워 가면서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었다. 곡정은 정말 굉장한 선비로 우뚝하게 뛰어났으며, 이야기가 종횡무진 엎치락뒤치락 자유자재였다. 

내가 한양을 떠나서 여드레 만에 황주에 도착하였을 때 말 위에서 스스로 생각해 보니, 학식이라곤 전혀 없는 내가 적수공권으로 중국에 들어갔다가 위대한 학자라도 만나면 무엇을 가지고 의견을 교환하고 질의를 할 것인가 생각하니 걱정이 되고 초조하였다. 그래서 예전에 들어서 아는 내용 중 지전설과 달의 세계 등을 찾아내 매양 말고삐를 잡고 안장에 앉은 채 졸면서 이리저리 생각을 풀어 내었다. 

무려 수십만 마디의 말이, 문자로 쓰지 못한 글자를 가슴속에 쓰고, 소리가 없는 문장을 허공에 썼으니, 그것이 매일 여러 권이나 되었다. 비록 말이 황당무게하긴 하나, 이치가 함께 붙어 있었다. 말안장에 있을 때는 피로가 누적되어 붓을 댈 여가가 없었으므로, 기이한 생각들이 하룻밤을 자고 나면 비록 남김없이 스러지긴 했지만, 이튿날 다시 가까운 경치를 쳐다보면 뜻밖에 기이한 봉우리가 나타나듯 새로운 생각이 샘솟고, 돛을 따라 새로운 색계가 수시로 열리는 것처럼, 정말 긴 여정에 훌륭한 길동무가 되고 멀리 유람하는 길에 지극한 즐거움이 되었다. 

열하에 들어가서는 먼저 이 학설을 가지고 안찰사 기풍액에게 물었더니, 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수긍은 하되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다. 곡정과 지정 역시 의심하며 듣는 것이 많았는데, 곡정은 이 학설이 아주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대개 곡정은 응수하는 대답이 민첩하여, 종이를 잡고 수천 마디의 말을 거침없이 써 내려가, 천고의 역사를 제멋대로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경전과 역사, 제자백가와 개인의 문집에 이르기까지 손에 닥치는 대로 뽑아내 아름다운 구절과 묘한 문장을 입을 여는 대로 문득 만들어 냈는데, 모두 조리가 있어서 흐트러지거나 맥락이 닿지 않는 것이 조금도 없었다. 어떤 것은 성동격서 격으로 전혀 엉뚱한 것을 가리키기도 하고, 어떤 것은 궤변처럼 말을 해서 나의 행동을 관찰하기도 하고, 나의 말을 유도해 내기도 하였다. 정말 박식하고 달변의 선비라고 할 만하나, 벼슬도 하지 못한 채 황량한 변방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다가 장차 쓸쓸한 황야로 돌아가게 될 터이니, 정말 서글프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북경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필담을 해 보았는데, 말이 단단하고 예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은 글을 읽어 보면 모두 필담하는 글보다 못했다. 그제야 나는 우리나라와 중국이 글을 짓는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중국은 바로 문자가 말이 되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책들의 내용이 모두 입 속에서 말을 이루게 되는데, 이는 그 기억력이 특별히 남들보다 나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억지로 시문을 지으려하면 속생각을 잃게 되어 결국 말과 문장이 떨어져 두 개의 물건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글을 짓는 사람은 잘 맞지도 않고 틀리기 쉬운 글자를 가지고 다시 한 차례 이해하기 어려운 우리말로 번역을 해야 하니, 그 문자의 뜻이 아주 캄캄해져 알 수 없게 되고 표현이 애매모호하게 되는 까닭은 오로지 이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귀국해서 나라 안의 사람들에게 두루 이야기해 보았으나, 대부분 그렇지 않다고 말하였다. 정말 개탄할 노릇이지만 달리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다. 

연암 계곡의 엄화계  물가에서 비오는 날, 붓 가는대로 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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