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452

낭독 가을 - 13

2020. 5.20(수) [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크 드 뷔르/이세진 옮김, 2019, 청미) 가을 11월 7일 토요일 1시 반 즈음에 서재 방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안락의자에 앉아 따뜻하게 비치는 햇살을 음미하고 있었다. 어디서 자동차 소리가 나더니 그 소리가 점점 커지다가 우리 집 앞에서 멈춘 것 같았다. 우체부가 왔나? 아니, 오늘은 벌써 왔다 갔는데, 자동차 문 열리는 소리. 또 다른 문이 열리는 소리. 또 그 소리. 여러 사람의 목소리와 ... 개 짖는 소리. 맙소사, 딸과 사위와 손자들과 그 집 개가 왔구나....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는 현관 앞에 나가서 주말에 온다는 얘기를 듣고도 완전히 잊고 있었다고 솔직하지만 애처롭게 고백했다. 딸은 정말 못 말리겠다는 듯이 양손을 떨구었..

낭독 "다랑논"

2020. 5. 17(일) 목성균, [누비처네], 2010, 연암서가 “다랑논” 올망졸망 붙어 있는 다랑논배미들을 보면 흥부네 애들처럼 가난하고 우애 있어 보인다. 나는 어려서 팔월 열나흘 저녁 때면 쇄재골 다랑논 머리에 서서 추석 차례를 지내러 오시는 작은 증조부를 기다렸다. 그 어른은 칠십 노구를 지팡이에 의지하고 훠이훠이 쇄재를 넘어 오셨다. 나는 저문 산골짜기에 혼자 서 있었다. 그래도 무서운 줄을 몰랐다. 막 저녁 세수를 한 산골 처녀의 맨 얼굴 같은 들국화꽃, 조용히 귀 기울이면 들리는 열매가 풀숲을 스치며 떨어지는 소리, 미처 어둡기도 전부터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 -. 나는 그 가을 정취에 취해서 무섭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러나 좀더 철이 들고 나서 알았지만, 내가 무섬증을 느끼지 않고 조신..

낭독 "찔레꽃 필 무렵"

2020. 5. 16(토) 목성균, [누비처네], 2010, 연암서가 “찔레꽃 필 무렵” 찔레꽃이 피면 나는 한하운처럼 울음을 삭이며 혼자 녹동항에 가고 싶어진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누런 보리밭 사이로 난 전라도 천릿길을 뻐꾸기 울음소리에 발맞추어 폴싹폴싹 붉은 황토 흙먼지 날리며 타박타박 걸어가고 싶다. 거기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멀고 서러운 길인지 알고 싶다. 찔레꽃 하얗게 핀 산모퉁이 돌아서 “응야 차 -, 응야 차 -“ 건강한 젊은 육신들이 꺼끄러기와 먼지를 뒤집어쓰고 보리타작하는 소리 질펀한 동네 앞, 둥구나무 아래 앉아서 발싸개를 풀어 볼 것이다. 발가락은 다 있는지 - . 구태여 그게 무슨 대수일까마는 그래도 궁금한 사람의 마음을 어찌 당하랴. 발가락은 다 있다. 일그러진 문둥이의 얼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