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리스본의 밤에 듣는 파두의 매력

이춘아 2023. 9. 22. 23:30

김연수, [언젠가, 아마도], 컬처그라퍼, 2018.

(202~205쪽)

리스본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나는 해산물을 맛보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처음 찾아간 도시니까 지리를 알기 어려워 일단 가장 유명하다는 광장을 찾아갔다. 거기가 바로 리스본의 중심가라고 할 수 있을 로시우 광장이었다. 그 광장에서 도로를 건너면 테주강가의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이어지는, 정말 근사하게 돌들을 깔아놓은 골목이 나온다. 그 골목의 좌우로 해산물을 파는 노천식당이 있었다. 그중 한 곳으로 들어가 생선 요리를 시켰다. 정어리였던 것 같다. 네다섯 마리 정도가 구이로 나왔고, 옆에 레몬 조각이 있었다. 뭐, 나쁘지 않군. 그렇게 생각하며 작은 백포도주 한 병을 함께 비웠다. 외국 관광지의 식당에서 혼자 앉아 밥을 먹는 기분은 쓸쓸했지만, 여행 중엔 늘 그런 것이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리스본은 유럽의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리스본이 내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 것은 그 도시에 머문지 사나흘 정도 지났을 때였다. 그때까지 나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회전초밥집,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구내식당 등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아침이나 점심은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저녁이었다. 리스본에 가기 전에는 스페인에 머물렀다. 그 나라는 식당들이 저녁 8시 이후에나 문을 열기 때문에 아예 저녁 식사를 포기할 정도였다. 안달루시아 같은 곳에서는 맥주를 주문하면 안주를 그냥 주기도 하니까 그렇게 저녁을 때우거나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했다. 리스본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당에 가봐야 혼자 주문하기도 그렇고 하니까 패스트푸드점이나 회전초밥집에서 저녁을 해결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한 번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숙소 뒤쪽의 언덕 위로 무작정 올라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겠어서. 그곳엔 정말 그런 식당이 있었다. 아주 작은 식당이었다. 한쪽 위에 텔레비전이 있고, 식탁이 대여섯 개 놓여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축구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손님 대부분이 남자였고, 혼자인 사람도 몇 명 보였다. 그들은 축구 경기를 보면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들이 먹는 음식은 김치찌개 아니면 순대국밥이었다, 라고 말해도 믿을 만한 그런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거기서 내가 먹은 음식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메뉴를 읽을 수 없었으니까. 리스본은 대구 요리가 유명하다니, 대구였을까? 아무튼 해산물에 또 와인 작은 병을 마셨다. 그리고 거기 있던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축구 경기를 시청했다. 고개를 돌리면 언덕 아래, 저녁이 찾아오는 풍경이 보였다. 리스본이 내게 잊히지 않는 도시가 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유심히 살펴보니 골목마다 그런 식당들이 있었다. 들어가 보면 정말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었다. 식당이니까 밥을 먹는 게 당연하지, 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유럽에서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리스본의 식당이라면 나는 밥집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그와 마찬가지로 리스본의 카페는 커피집이었다. 말 그대로 커피를 마시고 가는 집이었다. 휘발유가 떨어졌을 때 주유소에 들리듯이 리스본 사람들은 때가 되면 카페에서, 대개 자리에 앉지 않고 서서 비카라고 부르는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1유로를 낸 뒤에 거스름돈을 받았으니까 그만큼 서민적인 음료였다. 그렇게 밥집에서 밥을 먹고 커피집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나니 리스본의 골목들이 마치 내 고향의 골목처럼 친근해졌다. 골목은 한없이 이어졌고, 계속 걷다 보면, 관광지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현지의 삶이 나왔다.

그렇게 해가 저문 뒤의 골목을 걷다가 만나게 된 곳이 바로 파두 공연하는 식당들이었다. 앞에서 말한 로시우 광장 근처에 몇 개의 식당이 있는데, 막상 들어가 보면 역시나 매우 소박하다. 서울로 치자면, 서린동 쯤에 있는 한식집 같은 분위기랄까. 거기서 정식을 시켜서 먹고 있노라니 기타리스트와 파두 가수가 등장했다. 그들은 아무리 낮게 봐도 환갑은 넘긴 것 같았다. 저런 분들을 세워둔 채 우리만 먹으려니 이거 죄송해서 어떡하지, 라는 미안함이 들 즈음 기타리스트가 줄을 튕겼다. 그리고 드레스를 입은 할머니 파두 가수의 애절한 목소리. 마치 ‘목포의 눈물’이나 ‘돌아와요 부산항에’처럼 들리는 노래들. 혹자는 리스본이 관광지로서 별 매력이 없다고 말하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바로 그 이유로 리스본이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