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신

I made it

이춘아 2019. 8. 8. 11:20


미국통신24 - I made it

March 17, 2000

이춘아

 

 

하루는 우리 집 아이가 내가 해냈어가 영어로 뭔지 아세요? 하길래, ‘I can do it’ 했더니 그건 난 할수 있어잖아요. 아 그렇구나. 영어로 뭔데 하니까, 미국애들이 축구하다가 한 골 넣으니까 ‘I made it’ 하더랍니다. 오래전 한국인들의 자랑이었던 홍수환 권투선수의 엄마 나 챔피언 따 먹었어가 퍼뜩 지나가더군요.

 

어제 우리집 아이 학교에서 기금마련을 위한 도서판매가 있어서 책 몇권과 게임시디를 사왔는데 집에와서 책값을 계산해보니 6달러 이상을 더 준 것같아 마음이 찝찝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확인했었어야 하는데 하면서도 이런 상황에서 늘 에이 귀찮기도 하고 돈도 얼마안되는데 그만두지 뭐하고 넘어갔던 나의 태도를 떠 올렸습니다.

 

돈을 더 준 것같다고 확인하는 그런 과정을 영어로 말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자 더욱 난감해지면서 그냥 넘어가자라는 생각이 더 들더군요. 하지만 마음속에서 계속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국어로는 못해보았지만 영어로 한번 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우세해지면서 용기를 내어 학교 도서관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책값 하나하나를 체크했지요. ‘You are right'라는 답을 들었고 아이 편으로 돈을 보내겠다고 하더군요.

 

고국에 계신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내가 드디어 해냈습니다. ‘I made it'.

 

소소한 것 같지만 이런 작은 것에서부터 자신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종차별에 관한 대화모임에 참여하게 되기까지 여러번 나 스스로의 다짐을 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제일 관건이 내가 영어로 말을 할 수 있느냐가 걸려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제까지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살지 않았기에 선득 나서게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내 인종차별이 흑백에서 시작되었다가 이제는 소수민족들이 많아지면서 racism의 범위가 소수민족의 권리문제로 이어지고 있는한 아시아인의 하나인 나도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영어로 표현을 잘 못해서 그렇지 나도 아는게 많다. 주눅들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다 라고 여러차례 스스로 다짐과 용기를 내면서 참여하였습니다.

 

초보운전자가 제일 무서운 것은 초보운전자를 만나는 것이지요. 익숙한 운전자는 잘 비껴나갑니다. 마찬가지로 초보영어를 해도 미국사람들은 대충 알아듣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I made it 했습니다.

 

나와는 그다지 상관없을 것같았던 racism 대화모임에서 여러 가지 상념에 젖게 됐습니다. 최근 십여년 제3세계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와서 일하는 과정에서 싼 인력과 불법 취업이라는 줄다리기 속에서 한국의 고용주가 제3세계 사람들에게 못할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들이 농성하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교회단체에서는 그들을 위한 피난처를 마련해주고 그들의 인권박탈과 임금착취를 항의하기도 했지만 아직 인종차별을 먼 나라의 일로만 여기고 있던 우리에게 여론화하기에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지요.

 

이러한 모임에 와서야 비로소 한국의 실정이 피부로 와닿았던 것은 큰 깨우침입니다. 미국 역시 역사적으로 보면 유럽인들을 비롯하여 아프리카 흑인과 아시아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 곳으로 왔던 것입니다. 일본내 한국인들이 겪는 차별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차별이 맞물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해묵은 지역감정입니다. 미국역시 남북전쟁을 겪은지 오래됐지만 남부사람과 북부사람간의 묘한 감정과 흑백갈등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racism을 이야기하다보면 성차별을 비롯하여 각종의 차별이 나오게 되는데 차별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화모임에서 제가 discrimination filter 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생존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집단간의 갈등과 차별을 이용하고 이용당하면서 인류가 존속하고 있는 것같아 어떤 형태의 것이든 discrimination filter는 유지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화모임에서 편견이 여전히 중요한 과제라고 하면서 정형화된 표현들의 예 가운데 이런 것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the intelligent Asian student, the rough Latino gang member, the empty-headed white. 아시아인으로서 이런 편견은 그다지 기분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이러한 표현들이 언젠가는 아시아인들에 대한 저항으로 표출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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