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신26 - 스미소니언
April 7, 2000
이춘아
워싱톤에 도착한 다음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스미소니언으로 향했습니다. 스미소니언에 가기 전까지 ‘스미소니언’은 문화적 상징으로서 강력한 이미지가 담긴 단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게 스미소니언은 축축함과 배고픔의 기억으로 남습니다. 그 많은 예술품들을 구경하느라 무리하였던 탓입니다. 예술품 향유에 배고픔을 뛰어넘는 자는 예술가 또는 애호가였겠지만 나는 역시 더 많은 것을 보려는 탐욕의 관광객일 뿐이었습니다.
스미소니언에 대해 쓰려고 워싱톤에서 가져온 팜플렛들을 들쳐보았습니다. 그러다 나는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배고픔의 기억에서인지 점심시간이 가까워서인지 모를 정도로 배가 고파 라면을 하나 끊여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제 아무리 스미소니언이라도 식후경이다.
스미소니언은 정말 대단한 곳입니다. The Smithsonian Institution 이라는 이름의 산하에 16개의 뮤지엄과 갤러리, 동물원까지 두고 있는 곳으로 1억4천만점의 작품을 소유하고 있는 명실공히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 단지입니다. 14개는 워싱톤에 2개는 뉴욕에 두고 있습니다. 왜 스미소니언이냐하면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스미손(J. Smithson)이 1846년 “지식의 향상과 보급을 위하여” 미합중국에 기금을 지원하였다고 합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이를 실천하고 있는 곳은 미국인 것 같습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이름에 기증 또는 기여가 큰 사람의 이름을 붙이기를 좋아합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은 점잖게 아호를 붙이고 있습니다. 호암미술관처럼요.
스미소니언의 웹사이트에는 대학처럼 edu(www.si.edu)가 붙어 특이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스미손의 유언인 “지식의 향상과 보급을 위하여”가 실천되고 있으며 현재 스미소니언 정보센터로 사용되고 있는 원래의 건물에는 스미소니언의 직원들뿐 아니라 많은 박물관 연구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스미소니언 정보센터에서 안내 비디오를 본 후 처음 들어간 곳이 Freer Gallery와 Sackler Gallery입니다. 이곳 역시 프리어와 색클러라는 미술품 애호가들이 작품을 기증하였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인데 이 두곳을 합하여 The National Museum of Asian Art 라고 합니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과 중동 지역의 예술품들(도자기, 그림, 서예)이 전시되어 있고 아시아 작가들의 특별전시와 연주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3월과 4월의 일정표를 보면 한국의 영화상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와 만다라,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과 A Single Spark(...번역을 못하겠네요), 이명세 감독의 첫사랑,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그리고 한국정신대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습니다.
이번 구경에서 특색있게 느낀 것은 이슬람 지역의 코란을 서예화 한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의 서예에는 익숙해져있어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슬람권의 알파벳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서예화한 코란은 글자로서가 아닌 선과 무늬의 아름다움으로 비춰졌습니다. 아마 우리의 서예가 외국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요. 창틀의 격자무늬에서 한글을 찾아볼 수 있듯이 이슬람의 각종 문양에 이미 그들의 글자가 포함되어 있었겠다 생각했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것과 달리 드는 생각은 언제 이 많은 작품들을 모아서 이렇게 Nation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전시할 수 있는 것인가 였습니다. 가난한 나라에 들어가 주워모으다시피 했을 그들의 행태가 이제는 많은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국가적 권력으로 빛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다 며칠 지나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오늘의 미국은 어쨌거나 이미 각국의 인종이 모여사는 나라로서 소속 인종의 문화를 전시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 졌다는 것입니다. 이백년 앞을 내다본 작업이었습니다. 한국의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는 방을 지나면서 우쭐해졌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미국으로 보면 Korean-American의 문화관인 것입니다. 소름끼치지 않습니까.
다음은 아프리카 미술관인 The National Museum of African Art입니다. 이 곳 역시 African-American의 문화관이었습니다. 스미소니언 정보센터와 이를 각 미술관들이 지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옆에 예술산업관(Arts and Industries Building)이 있었는데 이 곳 역시 흑인문화와 관련한 전시가 있었고 한 쪽에는 각종의 난들이 전시되어 향내가 지금도 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양하고 멋있는 난이 있는 줄 예전에 미처 몰랐네요.
배고픔을 참으며 칭얼거리는 아이를 다둑거리며 비를 맞고 건너간 곳이 지난 번에 소개한 세상에서 가장 편한 소파가 있는 Hirshhorn Museum입니다. 박애주의자라고 지칭되는 J.H. Hirshhorn이 스미소니언에 기증했다고 하는 이곳은 1974에 개관하여 19세기부터 현대미술품만 전시하는 곳으로 피카소, 달리, 무어, 마티스 같은 유명한 작가들의 회화, 조각품들 6천여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 유명작가들의 조각품은 상설전시로서 복도같은 곳에 나열되다시피 간격도 좁혀 전시되어 있는데 반해 제가 갔을 때 전시되고 있는 임시전시는(2월24일부터 4월23일까지) 드넓은 전시장에 특별우대로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Robert Gober라는 작가입니다. 46세의 중견작가라고 하는 고버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변환(transition)이며 그가 드로잉한 것과 조각품들로 전시제목이 Robert Gober: Sculpture + Drawing입니다. 싱크대, 침대, 문, 창문, 개수대 등이 변환이라는 컨셉하에 스케치되고 드로잉되고 작품화 된 것들의 총합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집 아이 표현에 의하면 나도 저렇게는 그리겠다, 저게 무슨 작품이냐는 둥 (나도 동감하는 부분이 있음).
워싱톤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친구의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예술사를 전공한 친구입니다. 그의 편지 가운데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내일 수업은 클로드 모네의 수련 시리즈에서 물을 소재로 끌어내어 물의 역사 그리고 작품들과 연결시키고 가스통 바슐라르의 ‘물과 꿈’으로 종결시키려 한다. 이렇게 하다보니 인체의 70%를 차지하는 소중한 물이 이제는 그 상징성과 존엄성을 잃고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담긴 생수로 상품화되어 버린 인간 삶의 척박함을 느낀다.”
작가들이 치열하게 다루고자 했던 그 작품들을 좀더 의미있게 보고 올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