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상해 항일운동 유적

이춘아 2025. 3. 7. 21:52

한국근현대사학회, [국외 항일운동 유적(지) 실태조사 보고서], 2002.


상해 지역

상해는 양자강과 황포강이 만나는 삼각주에 위치한 중국의 대표적인 항구도시이자 국제도시이다. 아편전쟁 직후 체결된 남경조약(1842)으로 영국(1845), 미국(1848), 프랑스(1849) 등 열강들의 조계지가 설정(미국과 영국의 조계지가 통합되어 1863년 공동조계가 됨)되면서, 상해는 동서양이 만나는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인 동시에 열강들의 활동무대가 되었다. 한국에서 상해로 가는 주도니 길은 신의주 진남포 인천을 통하는 것이었다. 특히 진남포와 인천은 중국의 정크선이 자주 드나들어 상해로 가는 주요 지점으로 지점으로 이용되었다. 

1910년을 전후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상해로 모여들었다. 대한제국 군인출신인 신규식은 상해로 와 중국혁명에 참가하면서 중국혁명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국내외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상해로 모여 종제사, 신한청년당 등을 결성하여 활동하는 등 상해는 해외 독립운동의 주요 근거지가 되었다. 이렇나 역사적 기반 위에서 1919년 4월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이후 대한교민단, 독립신문사, 한국노병회, 병인의용대, 인성학교, 철혈단 등의 많은 독립운동단체들이 조직되어 활동을 전개하다가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홀구공원 의거 이후 항주로 이동할 때까지 상해는 중국 관내 지역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상해시 노만구 마당로 306롱 4호
임시정부가 상해에서 사용한 마지막 청사.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상해의 프랑스 조계에서 수립되었다. 이후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를 계기로 상해를 떠나 항주로 이전하였다. 임시정부는 만 13년 동안 상해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프랑스 조계안에 청사를 두고 있었다. 임시정부가 수립된 장소나 청사의 위치는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김신부로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지만, 그 번지 수를 알지 못한다. 임시정부의 청사도 한 두 곳이 아니었다. 여러 곳으로 옮겼고, 현재 확인된 것만도 12차례 이상이라고 한다. 수립직후 임시정부 청사는 태극기를 게양하였다고 할 정도로 공개적이었지만, 1919년 10월 프랑스조계 당국으로부터 폐쇄조치를 당하였다. 이후 임시정부 청사는 개인의 집이나 기관의 사무소에 두었다.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다가 안정적인 청사를 마련한 것은 1926년 3월이었다. 백래니몽 마랑로 보경리 4호에 청사를 마련한 것이다. 임시정부경제후원회가 조직되어 이를 유지하였고, 1932년 5월 항주로 이전할 때까지 6년 동안 이곳에서 활동하였다. 1990년 상해시 노만구 문물보호단위 제174호로 지정되었고, 1993년 4월 현지에 원형대로 복원되었다. 이후 2001년 주변을 매입하여 전시관을 확장, 재개과낳였다. ‘임시정부 최초 청사’에 대해 문제가 일어났던 일이 있었다. 현재 서금2로 22호의 건물자재를 드여와 최초 청사라고 한 것이다. 이는 독립기념관과 국가보훈처의 현지조사, 그리고 중국 및 한국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상해의 길 이름이나 번지 수가 여러차례 바뀌었으므로, 옛 주소를 찾는 데는 철저한 확인을 필요로 한다. 

<만국공묘>
현주소: 송경령능원 (중국 정부에서 관리하며, 1981년 6월에 송경령능원으로 개칭.
1910~30년대 상해시 외국인 공동묘지로 조성됨에 따라, 한인독립운동자들이 많이 묻혔음. 
상해에서 활동하다가 타계한 한인들의 묘가 원래 정안사로에 있었는데, 이것이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1976)과 상해시의 도시재개발사업 등으로 인해 철거되자, 한인독립운동자 등 외국인 묘 가운데 일부를 이곳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만국공묘에는 한국인의 묘로 확인 또는 추정되는 14기의 묘가 있는데, 이 가운데 노백린, 박은식, 신규식, 안태국, 김인전 등 5기는 1993년 8월5일에 봉환되었고, 윤현진, 오영선 등 2기는 1995년 6월21일에 봉환되었다. 안태국 묘터 바로 옆에는 조상섭으로 추정되는 표석과 임계호 등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표석이 남아있다. 

<홍구공원 의거 비밀회의 장소(홍륭다원)>
현주소: 흥업로 169, 171호 (2002년1월 현재, 우성홍목조제상점으로 사용 중)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의거 직전에 김구와 윤의사가 밀의한 장소
윤봉길 의사가 김구와 함께 1932년 4월 29일 의 홍구공원의 거사를 밀의한 장소이다. 홍륭다원으로 사용되었으나, 2000년 11월까지는 상청식품상점으로, 최근에서 우성홍목조제상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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