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칼럼

여름독서

이춘아 2019. 8. 9. 23:04

여름 독서

2007.8.23

이춘아 유성문화원 사무국장


그렇다. 이것이었다. 내가 찾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한여름 찐득한 더위와 함께 방바닥을 뒹굴며 책 읽던 그 때 그 유유자적함을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왜 여름독서라 하는지도 문득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반신욕을 하기 위해 더운 물에 반쯤 몸을 담군 후 한참 있어도 도저히 땀이 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땀이 배어나고 곧이어 땀이 뚝뚝 떨어질 때의 시원한 희열 같은 것이라고 해석해본다.


‘책읽기릴레이’에서 받았던 책을 움켜쥐고 덜렁 누웠다. 아무리 좋다고 하는 책이라 하더라도 다시 한번 더 읽기 싫어하는 편이었기에, ‘릴레이’에서 받은 책을 의무감에서 펼쳐들었다. 당연히 읽었었고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던 법정스님의 [무소유]였다. ‘한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읽어가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나는 법정 스님의 글발에 끌려들어가고 있었고, 글 한편이 끝나는 부분에 적혀있는 아라비아숫자의 연도에 문득 눈이 고정되어버렸다. 법정 스님이 곳곳에 에세이로 썼던 것들을 묶어 책을 발간한 첫해가 1976년이었고, 에세이 한편 한편은 그 이전의 해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법정스님의 글은 시대를 반영하고 있었고, 그 시대를 기억하고 있는 나는 그 때의 나이로 돌아가 있었다. 글이 영혼을 살찌운다는 과장된 표현은 막연히 믿고 있었지만, 그 글들이 나를 위로해주는 날이 올지는 몰랐다. 그 당시로 돌아가고 싶은 적은 한번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 누구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던 시대의 암울함을 기조로 깔고 책과 음악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했던 그 에너지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참 열심히 책 읽고 음악을 들었다. 그 말은 곧 학교공부보다는 책 읽고 음악 듣는 데에 길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뒹굴 거리면서, 겨울에는 이불속에 엎디어서. 이제 그 글과 음악이 살아서 나를 위로해주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나이가 되었다.


여름휴가를 가면서 소설 한권 사고 흘러간 대중가요대백과 라는 책을 샀다. 심심할 때 노래 불러 보려고. 그랬는데 정작 펼쳐들고 보니 아는 노래가 별로 없다. 남편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음악테이프가 하나 있었다. 테이프 라벨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의 청춘을 갉아먹은 노래들’. 친구들이 편집하여 보내준 테이프라고 하였다. 그 친구들이 나중에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고 영화평론가가 되었다.


[무소유]를 읽으며 확인하게 된 사실 하나. 내 명함지갑에는 대여섯 살 무렵 경주 불국사 연화교칠보교 계단에서 가족들과 찍은  명함크기의 흑백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에는 난간에 석봉도 없고 안양문의 기와도 남루한 느낌이지만 고졸한 멋은 있다. 법정스님은 1973년 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4년에 걸쳐 복원하긴 했는데 그 말짱함이 천년의 허구한 세월이 무색할 지경이라고. 그 글에 따르면 나는 어렸지만 분명 복원되기 전 천년의 잔영을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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