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칼럼

문화적 기억, 이야기

이춘아 2019. 8. 9. 22:57

<나, 이춘아의 문화적 기억 8>

이야기

2007. 7.29


아이들에게 자연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공부하다보니 어느 날 자신이 야생화연구가가 되어있더라는 분을 만났다. 단순히 ‘풀’로 통칭되었던 것들에 하나하나 이름을 거명해주었고 효능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들을 때는 다 외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돌아서니 나에게는 다시 ‘풀’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그렇게 다 외울 수 있었느냐는 물음에 어릴 때 소 먹이느라 들로 산으로 다니기도 했지만, 약초를 캐러 다녔던 할아버지가 약초를 말리면서 손녀딸에게 약초 하나하나를 이야기하듯 들려주었던 것을 기억해냈다고 하였다.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는 선생이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데 꺽정이가 글을 읽으려하지 않아 이야기를 해주는 방법을 택하는 대목이 있다. 참으로 좋은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책 읽고 외우기 싫어하는 아이에게는 책의 내용을 이야기해주어 이해시키면 될 것이 아닌가. 만화를 좋아했던 나는 교과서가 왜 만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불만이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야 교과서보다 훌륭한 만화책이 많이 나왔다. [만화로 본 OOO] 등등의 책들이 그것이다.


박완서 선생도 자신의 글이 어머니가 바느질하며 들려주었던 이야기에 바탕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우리 집 아이가 과학 독후감 숙제로 끙끙대고 있을 때,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읽은 내용을 써보라 했다. 어려운 문장을 인용하려하지 말고 읽은 내용을 생각나는 대로 써보라 하였다. 그 비유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이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독후감을 썼다. 아이는 처음으로 상을 받았다.


요즘은 모든 것들을 이야기로 꾸며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최고 대접을 받는다. 스토리텔링의 시대이고, 이것이 문화콘텐츠가 되고 밥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미술관의 문화봉사자인 도슨트는 관객들에게 작품을 이야기해준다. 문화유산해설사는 문화재와 역사를, 숲해설사는 나무를, 하천해설사는 하천을 이야기해준다. 단순히 설명이 되면 아무도 듣지 않는다. 이야기하듯 해주어야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유명 목사의 설교를 들어보면 이야기하듯 하며 억양에는 반드시 한국적 운율이 담겨있음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판소리 한 대목을 읊는 것이 아닌가 할 때도 있다.


온양민속박물관 야외에는 강원도 삼척에서 옮겨왔다는 너와집이 있다. 그 너와집을 보고 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삼척 신리에 있는 너와집을 보러갔다. 그곳에서 너와집을 보는 순간, 왜 너와집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박물관의 너와집은 ‘이것은 너와집입니다’라고 한다면 삼척의 너와집은 ‘왜 너와집인지’ 이야기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책상입니다, 를 외우게 했던 단순학습에서 왜 책상인지 이야기해주듯 했더라면 나는 책상에 의미를 붙이고 아주 오랫동안 앉아 공부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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