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춘아의 문화적 기억 7>
신문지 소리
2007. 7.1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기 전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아이의 음감이 뛰어났다. 아이 모두 그렇게 키웠다. 그 말에 동감했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나도 아이를 낳으면 그렇게 키워보리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과연 그러한가 의문을 가졌다. 만들어진 소리가 아닌 자연의 소리, 일상의 소리에 잠을 깨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정말이지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짖는다, 가 연상되는 화창한 아침이 있다. 자전거가 찌리링 거리며 지나가는 소리, 재첩국 사려 하는 소리,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아버지가 신문지를 넘기는 소리. 나에게는 그러한 소리가 기분 좋은 소리였다. 우리 동네, 우리 집에서 어우러지는 소리가 나의 정서를 만들어주었을 것이고 그 소리를 기억하는 한 그것은 ‘나, 이춘아의 문화적 기억’이 될 것이다.
아버지가 신문지 넘기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다가 좀더 커서는 문 앞에 던져진 신문을 아버지에게 갖다 드렸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신문지의 신선한 석유냄새를 맡으며 내가 먼저 읽고 갖다 드렸다. 우리 집은 신문을 여러 종류 보았다. 대충 읽고는 문화면만 골라 읽었던 것 같다. 신문은 여러 가지이지만 대체로 비슷한 내용이었고, 문화면만 신문사마다 조금씩 달랐고 읽을거리가 있었다. 적어도 연재되는 소설만은 분명 달랐으니까.
내가 어쩌다 뒤늦게 문화 판에 끼어들게 되었나, 생각해보면 신문의 문화면을 열심히 읽다가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여기게 될 때도 있다. 아침에 신문을 훑어보고는 자세하게 읽을 부분은 잘라놓는다. 시간이 있으면 정독을 하고, 아니면 저녁에 와서 읽을 요량으로 치워놓는다. 희한하게도 신문은 그냥 읽으면 신문이고, 스크랩하여 읽으면 자료가 된다. [신문소프트]라는 책이 90년 초에 나와서 히트를 쳤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NIE 원조인 셈이다. 직장을 그만두면 신문 스크랩하는 자원봉사를 하리라 오래전부터 마음먹어 두었는데, 점점 컴퓨터에서 검색하여 프린트하는 것이 손쉬워졌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신문지가 좋고, 신문지 넘기는 소리, 신문지를 가위질하는 소리가 좋다. 스크랩한 것을 이면지를 이용하여 풀로 붙여 읽으면 그제서야 내 것이 된다. 우리 집 아이만 해도 신문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 아이의 정보원은 다른 매체를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문과 신문지에 얽혀있는 이야기는 20세기를 살아온 사람들의 문화적 흔적이 될 것이다. 화장실 휴지로 잘려진 신문지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지금도 선명하다. 세로줄의 ‘땐 땐 땐’ ‘포 포 포’ 땐스교습소와 포경수술광고였다.
'단상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독서 (0) | 2019.08.09 |
---|---|
문화적 기억, 이야기 (0) | 2019.08.09 |
문화적 기억, 문화감수성의 코드 (0) | 2019.08.09 |
문화적 기억, 디아스포라 (0) | 2019.08.09 |
문화적 기억, 웨딩드레스 (0) | 2019.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