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1
홍콩 스케치
이춘아
7시되기 전, 2010년 해맞이하러 도풍산(道風山) 십자가로 갔다. 날이 흐려 해는 보이지 않으나 늘 운동하러 오는 할머니들은 이미 와있다. 앞에 보이는 겹겹의 산들이 이 위치를 편안하게 한다. 명당인것 같다
여기 홍콩 사틴지역의 도풍산기독총림(道風山基督叢林)에 온지 열흘, 이제 갈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일년의 세월도 수첩을 보지 않으면 뭐하고 살았는지 모르듯이 열흘간의 홍콩 생활에서 뭔가를 얻어 보려고 안간 힘을 쓰지만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모르겠다. lonely-planet 홍콩 편의 저자 Steve Fallon의 표현중 나도 동감하는 단어들이 이런 것들이다. 혼돈chaos, 융합fusion, 칵텔cocktail, 밀도높은densely, 맥동적인pulsely.. 단어만으로 보면 우리도 이런 것들을 추구하고 있다.
한정된 땅덩어리에 넘치게 유입되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이 지역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들였다. 거의 산악지대라 할 수 있는 곳에 평지를 만들 수 있는 것은 해안을 매립하고, 그 위에 고층빌딩을 촘촘히 앉히고, 버스도 2층버스, 전차도 2층, 그리고 지하를 이용한다. 고층빌딩은 거의 복합형태, 아래층은 상가, 위층은 사무실과 살림집, 도심과 변두리 모든 고층 건물이 그러하며, 지하철 역마다 시간대와 크게 상관없이 사람들이 넘쳐난다.
전반적인 느낌은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어둡다. 지쳐있다. 다음 세대들은 좀 나을까, 이제까지 내가 본 도시 중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 지금은 안정기에 들어간 것 같지만, 지난 20-30년간 아마 이 지역은 매일 공사중이었을 것이다. 이 많은 고층 아파트들이 20여년간 지어졌을 것이라 생각되면, 홍콩사람들은 시멘트 먼지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어딜가나 짜증나는 공사 중 이었을 것을 짐작해보면 이들의 밝지 않은 표정은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당, 절에서 한웅큼 넘쳐나도록 향불을 피우며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들 그들의 恨 역시 중국 본토 등에서 유입된 사람들, 유목민, 떠도는 자들의 애환일 것이다. 살기위해 이동이 불가피했던 그들의 삶은 임시적이고 유동적이고 불안하며, 가난하다. 그러나 그들은 살기 위해 이주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갖고 있었기에 역동적일 수밖에 없었기에 이 도시를 건설하였을 것이다.
SAR(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특별행정자치구역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도시의 특성. 중국 본토로 넘어가는 深川 경계에서 출입국이민수속을 받아야한다. 그곳까지 전철(KCR)을 타고 갔었다. 마카오로 가는 수속밟는 사람들만큼이나 많았다. 홍콩과 배로 1시간 걸리는 마카오 역시 특별행정자치구역, 마카오가는 배편이 15분 간격으로 있듯이 이곳 전철은 3분간격으로 사람들을 수송하고 있으니 하루동안 오가는 사람은 엄청날 것이다. 홍콩 거주민 7백만이라는데 유동인구를 포함하면 천만이 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어딜가나 사람들이다.
홍콩 스케치의 첫 장면은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빌딩과 넘쳐나는 사람들이다. 처음 며칠간은 사람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는지, 홍콩독감, 사스 등의 유행성 독감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겠구나, 짜증나는 도시라고만 여겼다가, 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 등을 생각하며 여기 저기 다니다보니 다시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렇게도 살 수 있는 것이 사람들이라는 것.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집에 가면 위화의 소설 [살아간다는 것]을 다시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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