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

이춘아 2020. 10. 10. 07:05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 소설가](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2016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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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반론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김히 일반론을 말하게 해주신다면, 일본에서는 그다지 보통이 아닌 것, 남들과 다른 것을 하면 수많은 네거티브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일단 틀림이 없겠지요? 일본이라는 나라가 좋든 나쁘든 조화를 중시하는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않는) 체질의 문화를 가졌다는 것도 있고, 문화의 일극 집중경향이 강하다는 것도 있습니다. 말을 바꾸면, 프레임이 공고해지기 쉽고 권위가 그 힘을 휘두르기 쉬운 것입니다. 

특히 문학에서는 전후 오랜 기간에 걸쳐 ‘전위냐 후위냐’ ‘우파냐 좌파냐’ ‘순문학이냐 대중문학이냐’라는 좌표축에 따라 작품이나 작가의 문학적 위치가 세세하게 도표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형 출판사(대부분 도쿄에 집중되어 있는데)가 발행하는 문예지가 ‘문학’의 기조를 설정하고 다양한 문학상을 작가에게 부여하는 것을 (말하자면 미끼를 던지는 것을) 통해 그 추인을 행해왔습니다. 그런 탄탄한 체제 속에서 작가가 개인적으로 ‘반발’에 나서는 것은 웬만해서는 쉽지 않습니다. 좌표축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곧 문학계에서의 고립(미끼를 받아먹을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작가로 등단한 게 1979년인데, 그 무렵에도 아직 그런 좌표축은 문학계에서 상당히 견고하게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즉 시스템의 ‘관례’는 여전히 힘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그런 건 전례가 없다’ ‘그게 관례다’라는 식의 말을 편집자에게서 자주 들었습니다. 나는 작가란 제약 따위 없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직업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왜 이러지?’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원래 분쟁이나 싸움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러한 ‘관례’ ‘문학계의 불문율’을 거스르겠다는 식의 의식은 딱히 없었습니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이라서 어렵사리 이렇게 (일단은) 소설가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니까,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나가자고 처음부터 마음을 정했습니다. 시스템은 시스템대로 해나가면 될 것이고 내 쪽은 내 쪽대로 해 나가면 된다. 나는 1960년대 말의 이른바 ‘반란의 시대’를 뚫고 나온 세대의 사람이라서 ‘체제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는 의식은 나름대로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라고 할까. 그보다는 우선, 그래도 명색이 표현자의 말단으로서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내게 맞는 스케줄에 따라 내가 원하는 대로 쓰고 싶다. 그것이 작가인 내가 가져야 할 최저한의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 그 개략은 처음부터 상당히 확실했습니다. ‘아직은 잘 쓰지 못하지만 나중에 실력이 붙기 시작하면 사실은 이러저러한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합당한 내 모습이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 이미지가 항상 하늘 한복판에 북극성처럼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됩니다. 그러면 나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위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잘 보였습니다. 만일 그런 정점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곳곳에서 상당히 헤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나 자신의 체험에 따라 생각한 것인데,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는 데는 우선 출발점으로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간다’는 것보다 오히려 ‘나에게서 무언가를 마이너스 해간다’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너무도 많은 것들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정보 과다라고 할까 짐이 너무 많다고 할까, 주어진 세세한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자기표현을 좀 해보려고 하면 그런 콘텐츠들이 자꾸 충돌을 일으키고 때로는 엔진의 작동 정지 같은 상태에 빠집니다. 그러니 어떻게도 뛰어볼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우선 필요 없는 콘텐츠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정보 계통을 깨끗하게 해두면 머릿속은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꼭 필요하고 무엇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지, 혹은 전혀 불필요한지를 어떻게 판별해나가면 되는가. 

이것도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말하자면, 매우 단순한 얘기지만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것이 한 가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일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즐거움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부품, 부자연스러운 요소를 깨끗이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상을 탔을 때, 당시 내가 경영하던 가게에 고등학교 동창이 찾아와 “그 정도의 소설로 괜찮다면 나도 쓰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물론 불끈했지만, 동시에 비교적 솔직하게 ‘그래, 저 녀석 말도 분명 맞는다. 그 정도의 소설이라면 아마 누구라고 쓸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머리에 떠오른 것을 간단한 언어로 단지 줄줄 써 내려간 것뿐입니다. 어려운 말이나 정교한 표현이나 유려한 문체, 그런 건 하나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숭숭 뚫린’ 것이나 마찬가지인 소설입니다. 하지만 그 동창생이 그 뒤에 자기 소설을 썼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는 ‘그 정도의 텅 빈 소설이 통하는 세상이라면 굳이 내가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서 아무것도 쓰지 않았을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건 하나의 식견이라고 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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