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4 목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권, 1997.
하회마을/ 병산서원/ 소산 삼구정/ 오천 군자리/ 탁청정/ 불천위제사
우리나라 보존 민속촌: 아산의 외암 민속마을, 순천의 낙안읍성 민속마을, 경주 양동 민속마을, 고성의왕곡 민속마을, 제주 성읍 민속마을, 안동의 하회마을
하회는 이중환의 [택리지]에 나오는 유명한 가거처로 일찍부터 명성을 얻고 있다. 풍산 류씨의 하회마을에는 서애 종택인 충효당과 겸암 종택인 양진당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북촌댁, 남촌댁, 빈연정사, 원지정사 등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목조건축이 많아 전통한옥의 특징과 아름다움을 살피는 데 여기만큼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도 없다.
마을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조림의 예: 하회의 풍산 류씨 마을, 내앞의 의상 김씨, 무실의 전주 류씨, 주실의 한양 조씨 마을
병산서원: 1572년 서애 류성룡이 풍산읍내에 있던 풍산 류씨 교육기관인 풍악서당을 이곳 병산으로 옮겨 지은 것. 1613년에는 정경세를 비롯한 서애의 제자들이 류성룡을 모신 존덕사를 지었고, 1629년에는 서애의 셋째아들인 수암 류진을 배향했으며 1863년엔 병산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그리고 1868년 대우너군의 서원철폐 때도 건재한 조선시대 5대 서원의 하나이다.
서원건축의 기본: 1543년 주세붕이 세운 소수서원을 기폭제로 전국으로 퍼져나간 서원은 그 구조가 거의 공식화되었을 정도로 아주 저형적이다. 선현을 제사지내는 사당과 교육을 실시하는 강당 그리고 원생들이 숙식하는 기숙사로 이루어진다. 이외에 부속건물로 문집의 원판을 수장하는 장판고,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 그리고 휴식과 강학의 복합공간으로서 누각과 어느 건물에나 당연히 있을 뒷간이 있으며, 서원을 관리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관리소인 고사는 별채로 구성된다. 건물의 배치방법은 성균관 문묘나 각 고을의 향교와 비슷하여 남북 일직선의 축선상의 외삼문, 누각, 강당, 내삼문, 사당을 일직선으로 세우고 강당 앞마당 좌우로 동재와 서재, 강당 뒤뜰에 전사청과 장판고를 두며 기와돌담을 낮고 반듯하게 두른다. 사당과 강당은 구별하여 내삼문 좌우로 담장을 쳐서 일잔의 출입을 막는다. 강학공간은 선비정신에 입각하여 검소하고 단아하게 처리하여 단청도 금하고 공포에 장식을 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사당은 권위를 위해 단청도 하고 태극문양을 그려넣기도 한다.
병산서원의 공간: 병산서원은 빼어난 강산의 경관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배치했다는 점에서 건축적 우너림적 사고의 탁월성을 보여준다. 만대루(강당), 일신재(동재), 직방재(서재). 일신이란 대학의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에서 나온 것으로 “진실로 날로 새롭겠거든 날로 날로 새롭게 하고 또 날날 새롭게 하라”라는 뜻. 직방이란 주역 곤괘의 “경이직내 의이방외”에서 나온 말로 “공경하는 마음으로 내면을 곧게 하고, 올바름으로 외면을 가지런히한다”에서 나온 것.
오천 군자리 문화재단지: 와룡면 오천동, 속칭 오천 군자리 문화재단지. 외내에 있던 광산 김씨 예안파의 중요건물이 안동댐으로 수몰되게 되자 1974년 이곳으로 집단이주하여 하나의 건축문화재단지를 이룬 것. 광산 김씨 예안 입향조 부터 자손이 번창하여 명문으로 우뚝 서게 되면서 진보 이씨, 봉화 금씨, 안동 권씨 등과 통혼함으로써 영남 사림의 한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 건물 이전 과정에서 대들보와 지붕 사이 빈 공간에서 입향조의 증조부부터 대대손손에 이르기까지 500년에 걸친 고문서가 고스란히 나온 것. 여기에는 교지, 호구단자, 토지문서, 분재기, 혼서 등 고문서 2천 점과 고서 2,500여 권이 들어 있었다. 나라에서는 이 고문서를 보물 제1,018호로 지정하고 그 유물은 지금 단지 내 숭원각에 보존되어 있다.
사랑채 고가: 후조당, 대종택 사랑채, 읍청정, 설월당, 탁청정, 낙운정, 침락정 등 일곱 채의 사랑채와 정자가 잇다.
불천위제사의 뜻: 본래 제사는 고조할아버지까지 4대 봉사를 하고 4대가 지나면 조묘제를 지내고 더 이상 제사지내지 않게 되어 있으나 나라에 큰 공이 있거나 학덕이 높은 분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영원토록 위패를 ‘옮기지 않고(불천)’ 모시는 것을 허락했는데 그것을 이름이다. 불천위는 가문의 영광이며 권위인 것. 퇴계 종택에서는 퇴계 이황, 노송정에서는 퇴계의 조부인 이계양, 양진당에서는 겸암 류운룡, 충효당에서는 서애 류성룡, 임하 내앞의 의성 김씨 종택에서는 청계 김진, 서후 검제의 의성 김씨 종택에서는 학봉 김성일, 봉화 닭실 안동 권씨 종택에서는 충재 권벌 등이 불천위제로 모셔지고 있다.
나중에는 도에서 인정하는 도천, 서원에서 인정하는 원천, 문중의 문천 등 늘어났다.
제사의 의미: 종갓집에서는 1년에 최소한 열두번의 제사를 지내게 된다. 추석과 설의 차례가 두번, 불천위 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다섯분의 내외분 기제가 합해서 열번이다. 거기다 재취를 얻은 조상이 있으면 할머니 제사가 한번 더 있게 되고, 복잡하게 양자로 들어온 과정이 있으면 또 군제사가 붙게 된다. 안동에서 각 집안 불천위제 때는 보통 200명이 참가했는데 요즘은 줄어서 50명, 적어도 30명 이상이 온다.
제사를 지내는 것은 조상을 공경하고 받드는 행위지만 이 제사라는 형식은 공동체의식, 혈연친족적 유대의식을 강화하는 최상의 제도이다. 제사 때 종손은 항렬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모든 권위를 부여받는다. 종손은 선출이 아니라 혈통으로 이어간다는 정신은 나라의 왕 세습과 같은 성격이다. 제사에서 종손보다 더 권위있는 것은 죽은 조상이다.
이것이 남자들 사이뿐만 아니라 여인들 사이에도 그대로 일어난다. 제사음식 준비하는 데 한여름에 뜨거운 화덕에서 부침개를 부치는 것이 누구인가는 나이, 재산, 남편의 항렬과 사회적 지위, 종가와의 촌수, 그 집 아들이 어느 대학 다니는가까지가 종합적으로 계산되어 결정된다. 제사가 끝나면 제상을 물리고 나서 제사음식을 인척들에게 나누는데 이 일은 종갓집 며느리가 집행한다.
제사는 가문의 결속과 질서를 세우는 중요한 형식으로 작용한다. 제사는 죽은 조상을 통한 산 자손들의 만남이라는 속뜻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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