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가라앉은 빛에 비낀 산색에는 생동감이 있다. 그 굴곡과 능선이며 겹겹이 싸인 산자락까지 낱낱이 드러나 꿈틀거리며 살아 있는 산은 바라볼 만하다. 마음을 열고 무심히 석양의 산색에 눈길을 보내고 있으며, 우리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정신없이 바쁘게 쫓기면서 살아야 하는 일상 속에서, 때로는 큰 마음먹고 여가를 내어 자연의 빛과 소리에 접할 수 있다면, 그 빛과 소리 안에서 많은 위로와 깨우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명상은 열린 마음으로 귀 기울이고 바라봄이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뒤끓는 번뇌를 내려놓고, 빛과 소리에 무심히 마음을 열고 있으면 잔잔한 평안과 기쁨이 그 안에 깃들게 된다. 제대로 명상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무엇보다도 긴장감을 풀어야 한다. 전통적인 선원에서는 흔히 그 긴장감 때문에 선정삼매에 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욱이 ‘깨달음’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인해 깨달음과는 점점 멀어진다. 마치 물 속에 있으면서 목말라하는 격이다. 깨달음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꽃 피어남이다. 지적 호기심의 차원에서 벗어나 영적 탐구의 차원으로 심화됨이 없다면 깨달음은 결코 꽃 피어나지 않는다.
몸소 종교적인 삶을 살지는 않으면서 그것에 대해서 말로만 늘어놓으면 자신이나 타인에게 득이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실 말이란(글도 마찬가지) 시끄러운 것이고 공허한 것이다. 우리들이 주고받는 말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여기저기서 얻어듣거나 주워모은 관념의 찌꺼기들이다. 그러나 진정한 앎은 말 이전의 침묵에서 그 움이 튼다.
종교적인 삶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말을 절제해야 한다. 말하고자 하는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 말이 많은 사람들은 안으로 생각하는 기능이 약하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말이 많은 사람에게 신뢰감이 가지 않는 것은 그의 내면이 허수랗기 때문이고 또한 행동보다 말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하기 전에 주의깊게 생각하는 습관부터 길러야 한다. 말하는 것보다는 귀 기울여 듣는 데 익숙해야 한다. 말의 충동에 놀아나지 않고 안으로 곰곰이 돌이켜 생각하면, 그 안에 지혜와 평안이 있음을 그때마다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말을 아끼려면 될 수 있는 한 타인의 일에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을 두고 아무 생각 없이 무책임하게 제삼자에 대해서 험담을 늘어놓은 것은 나쁜 버릇이고 악덕이다.
거듭 말하는 바이지만, 당신과 나 인간 개개인이 변화하지 않고는 세상은 결코 변화될 수 없다. 현재의 이 사회와 세상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사회가 우리를 만들고 있다. 그것은 우리를 어떤 틀 속에 밀어넣고, 또 그 틀은 사회라는 구조 속으로 우리를 밀어붙인다.
말짱하던 우리 생활 환경을 오늘처럼 허물고 더럽히고 어질러놓은 것은 우리들 자신이다. 그래서 그 재앙을 오늘 우리가 받고 있다.
우리가 이런 세상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한 책임도 우리가 져야 한다. 바로 그 책임이 우리 인간에게 변화를 일으킬 것을 지금 요구하고 있다.
사회가 변화되려면 말이나 이론으로는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인간 개개인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고 잘못된 생활습관이 고쳐져야 한다. 환경 문제도 그렇고 과소비 문제며 이른바 벼랑 끝에 선 경제적인 위기의 극복도 개개인의 의지와 생활습관에 달려 있다.
현재의 자신을 안으로 살피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절실한 과제다. 그리고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해답은 바로 그 자기 성찰과 물음 속에 들어 있다.
이 ‘물음’이 각자 안으로 살피는 명상의 과제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오늘과 같은 혼돈의 수렁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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