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22 화
어제 6월21일(월) 드디어 대전고사리가 준비해왔던 중고령여성들의 영화 이야기, 유튜브 제작 강좌가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시작되었다. 준비기간이 길었다. 개인이 편리하게 클릭하나로(물론 돈이 들어가긴 하지만)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라 여럿이 볼 때도 내가 노력을 더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랬는데 저작권이 개입되면서 넷플릭스는 개인접속이 우선이라 공동상영은 지침이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고 마음대로 보게 되면 저작권에 위배되는 상황. 결국 디비디 구입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그 역시 허점이 있긴하다. 공적 자금에 의한 공동체 상영은 뭔가 구입항목이 있어야만 했던 것. 디비디를 개인적 소장품 정도로만 인식하게 된 시점에서 디비디 구입도 쉽지는 않았다. 이미 한국 영화 대부분이 디비디를 제작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디비디가 제작된 시기의 영화가 중고 시장을 통해 흘러다니고 있다. 그외는 모두 저작권을 플랫폼 회사에 팔아넘기게 되었고. 플랫폼 회사는 싸게 사서 개미군단들의 푼돈을 긁어 모으고 있는 셈이다. 부의 편중은 여기서도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같은 개미군단들은 푼돈 모아 푼돈을 쓰면서 많은 콘텐츠를 접속하고 있어 . 문화적 혜택은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누릴수 있긴하다. 수월성에 밀려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린 비디오, 디비디 시장은 공적 자금의 유통구조에서만 운용되고 있었다.
어제 첫번째 영화로 [마나나의 가출]을 보았다.
조지아 영화, 조지아의 문화가 보이는 영화. 마나나 라는 중고령에 접어든 여성이 자신의 소박한 희망을 찾아 집을 가출하면서 비롯되는 에피소드들. 나나 에크브티미슈빌리 라는 여성감독과 시몬 그로스 라는 남성감독 공동제작. 마나나 역은 이아 슈글리아시빌리. 2017년 제작
에피소드 1: 고등학교 교사인 마나나는 친정부모와 함께 남편, 자녀 둘과 산다.
상황: 딸은 갓 결혼한 남편도 있다. 크지도 않은 집에서 3세대가 산다.
에피소드 1-1: 마나나가 혼자 살 수 있는 작은 아파트를 구하러 다닌다.
상황: 마나나가 집을 나가겠다고 하니 가족들은 난리가 났다. 가족들은 서로 누가 마나나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묻는다.
상황: 급기야는 친척들까지 와서 마나나를 설득하려한다. 이 과정에서 마나나의 자녀들은 엄마를 두둔한다. 하지만 자녀들 역시 섭섭하긴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제일 곤란한 상황의 사람은 마나나의 남편 소소이다. 소소는 안절부절이다. 착한 사람 소소는 가부장적이지는 않지만 ‘남들이 뭐라하겠느냐’라는 대세문화의 상징이다.
상황: 조지아의 가족, 이웃들의 문화는 ‘남이 뭐라 하겠느냐’ ‘집안 망신이다’ 라는 한국의 문화와 유사하다. 우리와 공감할 수 있는 정서
에피소드 1-2: 마나나의 생일이라고 가족들은 연례행사처럼 가족들과 이웃들을 불러 파티를 하겠다고 하고 마나나는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한다.
상황: 아니라고 했지만 분가해서 살고 있는 남동생 가족들과 소소의 친구들이 와서 먹고 마시며 노래부른다.
에피소드 1-3: 학교 선생으로서 오랫동안 결석한 여학생을 상담한다. 17세 여학생이 작년에 결혼해서 일년 살아보니 남편과 맞지 않아 이혼했다고 한다.
상황: 어린 여학생이 결혼해서 이혼하는 과정을 접하면서 마나나는 집을 나가기로 마음을 굳히고 실행에 옮긴다. 당황하는 가족들
에피소드 1-4: 혼자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청소하는 마나나, 떨어진 기타 줄도 구입하고, 창가에 앉을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도 먼저 배치한다. 차 한잔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분위를 찾고 있었을 뿐이다. 조용하게 혼자서 생각하고 있을 시간이 절실했었다.
상황: 시장에서 치즈장사를 하고 있는 학교 친구를 만난다.
에피소드 2: 잘 사는 저택에 살고 있는 친구 집에서 동창회가 열린다. 오랫만에 만나는 학교동창들. 친한 친구 몇몇에게 자신이 분가해서 혼자 살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상황: 친구들이 오래전 마나나의 남편이 속을 썩였을거라 하면서 누구의 사촌인 여자와의 사이에 아이도 있었고, 마나나의 남편인 소소가 그 여자를 좋아했다고 중학교 다니는 아들도 있다고 한다. 친구들은 마나나가 그 상황을 당연히 알고 있다 생각하고 오래된 비밀을 이야기한다. 마나나의 속이 무너진다. 화장실에 가서 운다.
상황: 마나나가 학교 다닐 때 노래를 잘했었는지 남자 친구가 기타까지 주면서 마나나에게 노래를 시킨다.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모두들 마나나의 노래를 기다리고 있어 마나나는 기타를 치면 노래를 부른다.
에피소드 2-1: 마나나는 남편 소소가 좋아했던 여자의 집을 찾아간다. 가스검침원으로 가장하여 집으로 들어가 소소의 아들과 소소의 옛연인을 보고 나온다.
상황: 소소의 아들은 불만으로 비만, 그 엄마는 전화로 하루종일 수다하는 여자이다. 마나나는 확인하고는 돌아오지만 이제 오래전 일로 치부하는 듯 하다.
에피소드 3: 딸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만나는 것을 목격한다. 임신을 알아보려고 산부인과에 간 딸에게 마나나는 공부도 좀 더하고 남편과 독립된 삶을 이야기한다. 화를 내고 가버린 딸
에피소드 4ᆢ 남편 소소는 마나나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수리해줄 것이 있는지 도와주는 것 처럼 마나나의 집에 온다. 마나나는 식사까지 준비해서 함께 먹으며 집안 일들을 묻는다. 결국 딸의 남편이 떠났다는 말을 듣는다.
상황: 남편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밖에서 문을 두드린다. 차를 빼달라는 건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마나나의 남동생 친구들인 동네 남자들이 몰려와서, 마나나는 유부녀이니 그녀를 건드리지 말라고 남편에게 경고한다. 마나나는 기가 막힌다. 누군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고 감시당하고 있었다는 것에 화를 낸다. 베란다 바깥은 바람이 분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다시 겪고 있는 마나나의 분노에 찬 표정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난다.
……
나 역시 이런 저런 핑게를 대면서 금산으로 나의 공간을 만들어 살게 된지 십여년이 되었다. 두 집을 오가면서 힘들긴 하지만 나름 만족한 상황이어서 한걸음 뒷전에 있으면서 ‘마나나의 가출’을 볼 수 있었다. 금산에 집을 구하기 전이었다면 엄청나게 공감하면서 나도 분가해야지 하는 마음이 강렬했을 것 같다.
어제로 이 영화를 세 번 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는 생소한 분위기에 끌려 보게 되었다. 조지아의 문화, 사람들간의 물리적 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나게 좁다. 생일 등 집안 행사가 있으면 가족과 이웃들을 초대해 먹고 마시고 심지어 자고 간다. 그런 파티에서 남자들은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잘 부른다. 종교는 어떤 것인지 이 영화에서는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시장도 혼잡해 보이는 듯 사회적 거리는 0이다. 모이며 먹고 마시고 노래부르는 문화가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 보았을 때 마나나가 혼자서 작은 테이블에 앉아 차 한잔 마시며 베란다 밖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잎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세 번째 보니 종합적으로 보였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장면들을 보면서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도들이 보였다.
마나나처럼 가출을 원하는 많은 여성이 소망하는 상황은 혼자 있는 시간이다. 마나나는 그나마 학교 교사로서 가정과 분리된 삶을 살면서 숨통을 트이게 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늘 누군가와 함께 분위기를 맞춰줘야 하고 학교 교사로서의 역할, 집 안의 중심으로서 역할. 그 역할 이행자로서 자신의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왔던 여성. 그 여성이 일상에서 탈출하면서 일어나는 상황, 그 와중에 십 몇 년 전 남편이 바람을 피워 아이까지 있었던 사실도 전혀 모르고 살아왔던 삶도 되돌아보게 된다.
이 영화는 50대 전후의 여성들에게는 폭발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다. 조용하면서도 무서운 내적 엔진이 가동되고 가족들이 흔들린다. 마나나의 결정이 가족들을 흔들리게 했다. 이러한 흔들림이 사회를 바꾸어놓는다. 한국의 상황도 이제는 가족해체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
최근들어 공동체를 강조하지만 이전의 공동체로 돌아갈 수는 없다. 시대에 적합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나의 첫번 째 가출은 대학을 핑게로 집을 떠나는 것이었다. 집에 오고 싶을 때는 여럿이 함께 밥과 과일이 먹고 싶을 때였다. 식구들이 보고 싶다는 것보다는 가족들이 함께 있는 상황을 더 그리워했던 것같다. 먹을 것 먹고나면 다시 서울로,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 가고 싶었다. 한강 철교를 지나갈 때 내는 기차의 소리가 살 맛 같은 긴장감을 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두번 째 가출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 지루해졌던 차에 누군가와 함께 살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결혼을 한 것이다.
세번 째 가출이 금산에 텃밭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분리의 공간이 마침 필요한 시기였다. 나의 최고의 사치라고 여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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