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풀 라이프], 어느 순간을 선택할 것인가

이춘아 2021. 6. 29. 18:00

2021.6.29 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중 다시 보기에 꺼려지는 영화가 [원더풀 라이프]였다. 죽음을 다룬 영화, 죽은 사람들이 나오는 어두운 영화라고 여겨서였는지 이 영화는 항상 마지막으로 보게 될 영화로 생각해왔다. 몇 년 전 이 영화를 보았을 때도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극찬했기에 억지로 본 영화였다. 큰 영상으로 고사리 회원들과 다시 본다.

히로카즈 감독이 두번째로 찍었다는 이 영화의 제작연도는 1998년. 첫번째 영화인 [환상의 빛]은 어두운 영화였지만 영상미와 뭔가 끈적하게 끌리는 맛이 있어 여러번 보았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쩌자고 [원더풀 라이프] 같은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을까. 1962년생인 감독은 36세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 현생에서 이생으로 건너가기 일주일 동안 좋은 추억을 안고 가길 소망하는 영화. 불교적인 색채가 짙다고해야할까, 동양적인 죽음의 의미찾고자 한 것일까.

살아있을 때 가장 좋았던 장면을 생각하게 해서 그 장면을 만들어 보여주고 그걸 보고 안심하고 이생으로 건너가라고. 그건 굿을 해서 소원풀이를 해주는 것과는 또다른 방식이다. 영화감독의 방식으로 소원풀이를 해주고 싶은 마음일 것 같다. 자연요리연구가인 임지호 셰프는 돌아가신 분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음식을 만들어 제삿상을 만들어 절을 했다. 그와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싶다.

각자가 행복했던 시간을 생각하게 하고 그 장면을 연출해서 다시 보여주는 것. 사람들은 자신이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원해서가 아니지만 살아 있을 동안 행복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이생으로 넘어갈 기회를 준다는 아이디어는 정말 멋지다. 그것을 원더풀 라이프라고 제목을 지었을수도 있겠다.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살아있을 때 행복한 시간이나 순간은 어떠한 것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할 것 같다. 나라면 어떤 장면을 고를까, 좀 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앞으로 소원이 하나 더 있다면 죽기 직전에 내가 선택한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며 죽을 수 있도록 온전한 정신을 좀 남겨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얼마전 버스 안에 있다가 갑자기 쏟아져내린 건물더미에 깔려 죽은 사람들, 그들은 졸지에 죽음을 맞이했다. 정말이지 그런 황망한 죽음은 이생으로 건너기 전 시간이 필요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한다. 죽은 자가 할 수 있는 정리의 시간, 기쁨을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영화에서 행복했던 시간을 선택하게 하는 배려 외에 그들을 위해 연출하는 자들의 노력들도 보여주고 있어서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를 보여주고도 있다. 관객들의 입장과 제작자들의 입장도 교차하면서 보여주었다. 창작자들은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또하나 더 보여준 것은 현생에서 이생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있는 몫도 보여주었다. 굿은 구천을 떠도는 혼들을 위로하고 빨리 저생으로 넘어가라고 하는 진혼곡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혼. 그 혼들을 생각하며 잘 죽을 수 있는 죽음을 생각해본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45년 후  (0) 2021.07.20
일상이 무너져내리다  (0) 2021.07.06
마나나의 가출  (0) 2021.06.22
오다기리 조에 대해  (0) 2020.04.02
영화의 리.얼.리.티.  (0) 2020.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