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2일(목)
니시카와 미와, [고독한 직업], 이지수 옮김, 2019, 마음산책
오다기리 씨는 핸섬하기는 하나 어두운 면 역시 십자가처럼 짊어진 채, 인간의 생 자체의 아름다움도 서서히 체현해나가는 저력을 지닌 귀중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자랐다는 그 소년은 영화를 아버지처럼 존경하고, 암흑에서 뛰쳐나가고 싶다는 한없는 좌절감을 내내 불태우면서, 서른 살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주목받는 신체의 반대편 절반에 그 어둠의 차가움과 상냥함을 부착하고 있는 것 같다.(아버지가 없었던 오다기리 조는 어린 시절 영화관에 맡겨져 자랐다.)
그 어두운 부분의 그러데이션이 내게는 친밀하게도 느껴져서, 만난 그날부터 ‘이 사람과는 분명 기분 좋게 작업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함께 촬영을 체험해나갈 때마다 나날이 깊어져서 그와 함께 그물을 잡아끌고 있으면 이 영화는 바라던 곳에 다다르리라는 확신을 얻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굳세게 어깨동무를 하는 데 쉽게 겁을 내는 세대인지라 가가와 데루유키 씨가 형으로서 한 번 더 바깥에서 껴안아주었다. 진짜 해결사는 가가와 씨일지도 모른다. 무서운 사람.
........
가가와 씨가 떠나고 약 열두시간 뒤, 밤을 샌 현지 촬영 끝에 늦가을의 게으른 아침도 슬슬 눈을 뜨려 할 무렵, 나는 오다기리 씨에게 달려갔다.
“이게 오다기리 씨의 라스트 컷이예요. 믿을 수 없지만요.”
“알겠습니다. 이 영화 가운데 최고의 연기를 할게요.”
“고마워요. 그럼 갑니다.”
나는 황급히 카메라 옆으로 뛰어 돌아갔다. 카메라는 그와는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그 연기를 담았다.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져 혼자 남겨진 하야카와 다케로. 인적이 드물어진 식당에서 홀로 무료한 고독을 허공에 띄우고 있었다. 약속대로의 연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그 모습은 오다기리 조, 그 자체로도 보였다. 나는 이제 그의 가까이에는 없다. 하지만앞으로도 그 그늘 있는 아름다운 빛을 발하며 스크린을 밝혀줬으면 한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다시 당신이 아니고서야 맡길 수 없는 꿈을 꾸려 할 때, 또 한 번 카메라 앞에 서주지 않겠어요.
칸 영화제의 감독 주간에 출품하기는 했지만, ‘살갗을 찌르는 듯한 햇빛’으로 유명한 남프랑스 칸의 날씨도 어디에나 비를 몰고 다니는 내 탓인지 첫날은 태풍이 불듯한 날씨였다. 바다로부터 불어 닥치는 강풍에 오다기리 씨의 칠흑 같은 머리가 고고한 왕자의 갈기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 영화 <유레루> (2006) 제작 노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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