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숲밭

몸을 더 많이 움직이자

이춘아 2021. 8. 27. 11:51

2021.8.27 금

“장롱 위 먼지 두께를 보니 20년 쌓였네요.” 이삿짐을 나르던 분이 말했다. 이삿짐을 나르다보니 장롱 위 먼지를 보면 몇년만에 이사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책장 위도 손이 닿지 않으니 잘 닦여지지 않지만, 장롱 위는 그야말로 오롯이 손타지 않고 먼지만이 차곡차곡 세월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짐들을 빼고 보니 쌓여있는 먼지가 많았다. 계절로 인한 비염 탓만 할게 아니었다. 이렇게 먼지 구뎅이 속에서 있었으니..

식용유 먹다 조금 남은 것이나 뜯지도 않고 유효기간이 지나가버린 식용유통 모아놓은 것도 한 상자였다. 언젠가 폐식용유로 비누를 만들어보리라는 의지 덩어리였다. 세들어살 때 주인 아주머니가 폐식용유로 만든 비누를 주셨다. 그 비누를 사용할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그 기억이 30여년 지났지만 ‘나도 언젠가 비누를 만들어보리라’는 것이었는데 결국 이사하면서 몽땅 버리고 말았다. 미리미리 부지런떨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환경보호를 생각만하지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역시 게으름이다. 생각보다 몸을 더 부지런히 움직이여야 한다. 이사 준비하면서 내가 안고 있는 쓰레기 짐들이 대부분 그런 것들이었다. 복사물들, 각종 보고서 등 언젠가 읽어야지 했던 것들. 그리고 비디오 디비디 시디 등도 많이 버렸다.

내의들도 많이 버렸다. 왜 그리 쌓아놓았을까. 낡은 내의를 보면 새 것을 사고 싶어 사지만 이제 몸에 익어 야들야들하니 편해진 내의를 자꾸 입게 되기 때문이었다. 오래 전 어렸을 때 ‘란닝구’ 입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어떤 할매는 할배의 구멍난 란닝구를 입고 있기도 했다. 구멍난 것을 왜 그렇게 입고 있냐고 했더니 아깝기도 했지만 낡아서 편하다고 했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나를 탓하면서도 나름 하나하나 내게는 이유있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이사라는 위기 상황이 오니 과감용맹하게 버리면서 또다른 죄책감을 갖게 된다. 못다한 미련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릇을 싸주는 아주머니가 이 접시는 이가 나갔네요, 라고 하는데 나는 웃고 만다. 속으로 중국가니까 이가 나간 것도 잘만 사용하더만 이라고 중얼거린다. 아주머니는 새 냉장고로 바꾸라고 한다. 나도 그러마고는 했지만 아직은 멀쩡한 것을 왜 바꾸냐는데 더 마음이 간다. 김치냉장고와 세탁기와 가스렌지는 이번에 바꾸어야 겠다고는 생각했다. 가전제품 중고 시장은 나름 잘 되고 있다. 중고라고는 하지만 얼마나 깨끗하게 닦아냈는지 새 제품처럼 보일 정도이다. 내게는 구닥다리라고 버리는 것이지만 누구에게는 저렴하게 신제품처럼 구입되고 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다시 잘 청소해서 사용해보리라 다짐하게 된다.

이사하면서 결론은 머리 굴리지 말고 몸을 좀 더 부지런히 움직이자, 는 것에 도달한다. 정리정돈은 나의 창의력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우기며 살아왔다면 이제는 단순하게 간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몸이 재빨라야 한다, 그러나 정리정돈에 집착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사를 계기로 나의 짐을 벗어버리는데 기여한 글이 있다.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에 있는 한 부분이다.

“이 오두막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맑은 가난 속에서 길러진 따듯한 그 마음씨다. 자기 한 몸만을 위하지 않고 뒤에 와서 살 사람을 배려한 그 마음씨는, 우리에게 보여준 말없는 그의 가르침이다. 오두막을 내려오면서 말없는 그의 가르침이 이 오두막에서만이라도 두고두고 이어지기를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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