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숲밭

새로운 마음으로 산다

이춘아 2021. 9. 14. 18:27

2021.9.14 화

20년 살았던 아파트를 수리했다. ‘리모델링’라는 표현을 하지만 실제 리모델링한 건 없다. 낡은 것을 바꾸고 개보수했을 뿐이다. 애초 아파트 모델을 바꾼 건 없다. 리모델링해주는 분은 좀 더 손대길 원했으나 그들의 기준에 못미치게 생략된 부분이 많았다. 20일간의 수리를 끝내고 입주는 했지만 페인트 냄새 등 아직은 낯선 풍경들로 인해 며칠 더 밖에서 잠자고 오늘은 들어왔다. 새로 산 식탁에서 밥을 해서 먹었다. 티비 앞에 둥근 상을 놓고 앉아 있으면 먹을 때는 편하고 좋지만 자주 일어나고 해서 내가 불편했다. 이번 기회에 부엌 조리대 가깝게 놓을 수 있는 식탁도 샀다. 동선이 줄어들고 일어섰다 앉았다하지 않으니 편리하다.

방마다 침대를 치우고 나니 바닥도 보이고 티비를 안방으로 옮기고 하니 거실에 빈 벽도 생겨서 여러가지로 간결해졌다. 간결해진 것이 좋기도 하지만 허전한 느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새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니 조용히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오래된 김치냉장고를 바꾸니 요란한 폭발음도 사라져 집안의 각종 소음도 줄었다. 30년 넘은 가스렌지도 바꾸니 한번에 불이 화악 붙는다. 이삿짐 정리해주던 아주머니가 냉장고는 결국 바꾸지 않으셨네요, 하면서 냉장고 안을 잘 닦고 내용물을 넣어주셨다. 김치냉장고도 사는 김에 큰 걸로 사지 그랬냐고 그런다. 들어갈 위치가 좁아서 그렇다고 하긴 했으나 더이상 뭘 그리 많이 넣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가전제품들이 모두 커져있었다. 세탁기도 김치냉장고도.. 가능한 많이 쑤셔넣지말자고 다짐해보긴 하는데 아마도 더 큰 걸 살걸 하면서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식탁에 앉으니 뒷베란다 쪽에서 찬바람이 들어온다. 20여일 넘게 집을 비운 사이 계절이 바뀐 것이다. 2021년 가을, 환경에 변화가 왔으니 조금은 새롭게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새롭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동안 내가 일을 저저른 것들을 보면 뭔가 변화를 주고 싶어 몸부림 칠 때 라는 걸 눈치챘다. 이십년 살았던 것에 변화를 주었으니 앞으로 이십년은 이대로 살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이십년’.

앞으로의 이십년은 크고 작은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상하게 된다. 이십년 후는 내 나이 85세이다. 바로 아래 층 할머니를 보니 실감이 난다. 이십년을 함께 아래 위층으로 살아왔다. 길에서 만난 할머니가 수리하는데 얼마 들었냐고 물으시는데 오래 붙들려 있을 것 같아 다음에 말해드릴께요, 라고 했다. 얼마전 아래층 할머니집에 내려갔을 때 집을 깨끗하게 사용하시긴 했지만 할머니도 좀 고쳐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을거라는걸 뒤늦게 떠올렸다.

길에서 할머니를 만났을 때도 위층이 수리하니까 아래 층인 자기 집이 무너지는 것같다고 하시고는 난데없이 문재인 대통령을 욕을 하셔서 곤란했었다고 했다. 다시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지만 또 그러실까봐 두렵다. 동네 일에 열심인 분일 수록 목소리가 크다.. 저렇게 늙지는 말아야지 하면서도 스스로 보장하지는 못한다.

20년 살다가 잠깐 나갔다 왔으나 묵은 짐 정리되고 알레르기가 도질 것같은 냄새가 진동을 하니 새 집으로 이사 온 느낌. 하지만 아래 위층 옆집 동네 수퍼 등은 모두 이전과 같으니 그것도 참 어색하다. 여러번 이사다니면서 모든 것이 낯설지만 그게 더 흥미롭고 동네 나다니는게 재미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게 없다. 그래서 개보수한 집안이 더 어색하다. 짐들이 정리되어 빈벽도 보이고 깨끗한 느낌이어서 엄청 기분전환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신선함보다는 낯설다. 이제 손님이 오면 언제든지 들어오시라 할 수 있게 된 것, 그 이상은 아니다. 성형수술을 떠올린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외계인 같아진 그런 것 아닐까.

코로나 시대에 뭔가 한 건은 했다. 나에게 새로움은 빈 벽이 낯설지라도 낯설어지는 빈 공간을 더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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