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부처’, 동서양이 하나 되다
가마쿠라가 백남준(1932~2006)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기 위해서는 이곳의 역사와 분위기 그리고 이로 인한 문화적 특별함을 이해해야 한다. 굳이 한국의 도시에 비유하면 교토는 경주쯤 되고, 가마쿠라는 부여 같은 곳이다. 가마쿠라는 권력투쟁의 산물인 막부 정치가 처음 시작한 곳으로, 이 시기를 ‘가마쿠라막부’라고 부른다. 그 전까지의 수도였던 교토에서 1159년 양대 파벌간 싸움이 일어났고, 미나모토계가 실권을 잡으면서 성립했다. 하지만 내부 권력 다툼으로 1333년에 막을 내렸다. 가마쿠라는 수도로서 기능이 끝난 까닭에 더이상 대규모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다. 가마쿠라가 일본 특유의 전통미를 간직한 대표적인 도시로 손꼽히는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역사가 깃든 이곳에서 젊디젊은 백남준은 무엇을 느꼈을까. ‘가뜩이나 책을 좋아하던 그가 이처럼 차분하기 그지없는 곳에서 더더욱 사색적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겠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가마쿠라에는 ‘절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 만큼 많은 선종 사찰이 위치해 있다. 선종은 인간 내면에 불성이 존재하며, 이를 스스로 발견하면 열반에 이른다고 믿는 불교의 일파로, 좌선과 참선을 가장 좋은 수행 방법이라고 여긴다. 명상 역시 선종이 강력하게 권하는 수련 방법이다. 선종이 일본에서 부흥하게 된 것은 막부의 5대 싯켄(가마쿠라막부의 최고 실력자)이었던 호조 도키요리 덕분이었다. 당시 선종에 심취했던 그는 일본 최초의 선종 사찰인 겐초지를 창건하는 데 앞장섰으며, 고승을 초청해 불법을 전파해나갔다. 가마쿠라에 있는 선종 사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다섯 곳을 묶어 ‘가마쿠라 고잔’이라고 부른다.
도쿄에서 한 시간 남짓인 데다 아름다운 해변까지 갖춘 지리적 조건도 가마쿠라를 더욱더 특별한 명소로 만들어주었다. 이곳은 해수욕장으로 개발하기 안성맞춤이어서 19세기부터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불러들였던 외국인들의 휴양지로 각광받았다. 게다가 가마쿠라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에노시마는 데이트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가마쿠라와 에노시마 사이의 해변을 달리는 전차가 무척 유명한데, 이곳 사람들은 에노덴이라고 부른다. 도쿄 근교의 유명 관광지인 에노시마와 쇼난 간 10여 킬로미터를 오가는 이 전차는 아름다운 해변과 주택가 사이의 좁은 철길을 아슬아슬하게 달려 일본 내에서도 인기 만점이다. 특히 한국에도 잘 알려진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들이 이 전차를 타고 다닌 것으로 나온다. 가마쿠라에 살던 백남준도 이 에노덴을 타고 이곳 저곳을 다니지 않았을까.
기대감을 안고 가마쿠라에 도착하니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나의 심상까지 잦아들게 했다. 도시 중앙 북쪽에 자리 잡은 신사 쓰루가오카하치만구 입구에서 남쪽으로 난 큰길을 ‘고마치 거리’라고 하는데, 600여 미터에 달하는 이 길은 특이하게도 중앙에 인도를 만들어놓아 인도 양옆에서 자동차들이 다닌다. 길 한 가운데의 인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도로 양쪽으로는 일본 전통 다기, 기모노, 화과자 등을 파는 자그마하면서도 아름다운 민예품점이 줄지어 있었다.
백남준 가족이 살았던 가마쿠라의 집은 이 중심가에서 도보로 5분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백남준 지인들의 기억에 따르면, 그가 살던 양옥집은 넓고 근사했다고 한다. 이사할 당시에는 일본 내에서도 양옥은 흔하지 않았다. 막상 그의 보금자리를 직접 보니 이곳에서의 생활이 백남준에게 영향을 끼친 부분은 따로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백남준의 집은 여느 집들과 달랐다. 주후쿠지, 에이쇼지, 야사카 오카미 등 많은 사찰과 신사가 그의 집을 에워싸고 있었다. 도보로 2~3분이면 닿는 곳들이니 백남준 역시 이곳을 자유롭게 오갔으리라.
그런데 하쿠다의 증언에 따르면, 백남준은 집 근처에 자리한 사찰이 아닌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고토쿠인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가마쿠라 시내에서 그곳에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 제일 낭만적인 건 에노덴을 타고 가는 것이다. 곡예 같은 운행을 20분쯤 즐기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려 10분쯤 즐기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려 10분쯤 걸어가자 고토쿠인이 보였다. 입구에서부터 화려한 다른 절이나 신사와는 사뭇 다르게 소박한 느낌을 준다. 표를 사서 들어가니 곧바로 넓은 하늘을 배경으로 고요하게 앉아 있는 대불의 장엄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대불 뒤로는 나지막한 푸른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었다. 무려 800년 동안이나 이곳에 앉아 있다는 대불은 그윽한 표정으로 사바세계를 내려다보는 인상이었다. 마치 불상은 나에게 “왜 부질없는 속세의 고민에 허우적거리는가?’라며 말을 건네는 듯했다.
대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대불은 여러겹의 기다란 청동 판을 이어 만든 탓에 중간중간에 이음새가 보였다. 당시 기술로 이음새 없이 만들기에는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조악한 부분이 군데군데 보였지만 800년 전에 이런 커다란 불상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웠다. 특이하게도 이 대불은 소액의 입장료를 내면 뒤편 출입구를 통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안은 텅 비어 있지만 바깥에서 볼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121톤에 달하는 불상의 무게감이 더 와닿았다. 일부에서는 지나치게 커다란 머리 등으로 신체 비례가 맞지 않는다는 등 혹평을 하지만, 이곳에 서 있으니 구구절절한 잡념 같은 것은 펼쳐버리고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논하고 싶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그저 인자하기 그지없는 불상의 표정을 보며 나를 되돌아보고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백남준 역시 이 대불이 풍기는 고요함의 세계에 깊은 인상을 받지 않았을까.
그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TV 부처’를 제작했다. ‘TV 부처’는 모니터 앞에 놓인 불상을 폐쇄회로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촬영해 모니터로 전송하여 보여준다. 부처는 텔레비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한다. 속세를 떠나 구도자의 길을 걸으며 열반에 이른 부처가 현대 문명의 상징과도 같은 텔레비전을 바라보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본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여하튼 이것이야말로 백남준이 가마쿠라에서 느꼈던 선의 세계가 가장 극적으로 반영된 것이리라.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TV 부처’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표작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으리라. 실제로 비평가들도 이 작품을 주저 없이 백남준 예술의 백미로 꼽는다. 동양과 서양, 선과 테크놀로지, 관조와 나르시시즘 등 대척점에 선 듯한 이질적인 요소들이 서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지극히 철학적이고 관념적인걸작이 바로 이 ‘TV 부처’인 것이다.
이 작품은 우연에 의해 탄생했다고 한다. 백남준은 1974년에 뉴욕의 보니노갤러리에서 열린 네 번째 기인전에서 ‘TV 부처’를 선보여 극찬을 받았지만 치밀한 사전 계획하에 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른 작품들로 전시장을 채우려 했지만 한쪽 구석에 상당한 공간이 남았다고 한다. 이를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던 그는 결국 그전에 사다놓은 불상과 텔레비전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임기응변으로 만든 것이었기에 백남준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람객들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열렬한 호응을 받자 그는 ‘TV 부처’를 변주하며 시리즈로 제작했다. 1974년에는 쾰른미술관에서 직접 법의를 걸치고 텔레비전 앞에 앉은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TV 부처’는 보는 이들에게 성찰의 여지를 제공하면서도 심오한 진리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작품이지만 그 얼개는 지극히 단순하다. 웬만한 골동품 가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그마한 불상과 비디오카메라 그리고 텔레비전이 전부다. 백남준은 텔레비전 앞에 불상을 놓아 마주 보게 했다. 그러고 나서 그 텔레비전 뒤에 비디오카메라를 세워두고 불상이 찍히도록 설정했다. 즉 부처가 비디오카메라로 찍은 자신의 모습을 모니터로 응시하도록 연출한 것이다. 무척이나 간단한 설치작품임에도 보고 있으면 '부처가 화면에 잡힌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혹은 ‘테크놀로지는 차가운 기계 문명을 넘어 형이상학적 세계까지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 같은 숱한 상념에 빠져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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