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데미안’

이춘아 2022. 1. 14. 23:28

정여울, [헤세] (클래식 클라우드 022), 아르테, 2020.

‘데미안’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전장의 용사로 변신한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차가운 병상 위에서 다시 만난다. 데미안은 마지막 길을 떠나며 싱클레어에게 속삭인다. 이제 자신이 곁에 없더라도 필요할 땐 부르지 말고 네 안에서 찾으라고. 

항상 저 멀리서 반짝이는 별이었던 데미안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싱클레어는 완전히 자기 안에 데미안을 갖게, 아니 스스로 데미안으로 변신하게 된다. 이제 힘들 때마다 데미안을 부를 필요가 없다. 조용히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면 된다. 싱클레어는 외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대신 끝없이 자기 내면의 부름에 응답함으로써 피스토리우스에 저항하고, 아프락사스를 꿈꾸며, 순수하게 에바 부인을 사랑하며 마침내 데미안에 가 닿았다. 

그의 내면에 데미안이 자리 잡는 과정은, 이제 더 이상 데미안을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그와 함께할 수 있기까지의 과정은, 멈출 수 없는 내면의 투쟁이자 의식이 무의식을 향해 자신의 완성을 부르짖는 초월의 몸짓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데미안의 육신을 삼켜버렸지만, 우리의 영혼도 세파에 시달리며 부침을 계속하겠지만, 각자가 자기 안의 데미안, 내 안의 에바 부인을 찾는 몸짓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저마다의 무의식과 진정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피스토리우스의 해박함과 총명함을 넘어 데미안이 가진 불굴의 용기와 에바 부인의 거침없는 자유를 몸속에 지녀야 한다. 

데미안은 목숨 걸고 전쟁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었으며,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의 어린 나이와 미숙함에도 개의치 않고 그를 진정한 소울메이트로 인정해주었다. 데미안의 용기와 에바 부인의 자유, 그리고 싱클레어의 순수함이 환상의 트리오를 이룰 때 우리 안의 피스토리우스, 아집과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차 소시민적 안정을 버리지 못하는 연약한 에고가 마침내 자유를 향한 비상의 날갯짓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 첫 번재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두 번째는 자신의 무의식이라는 내면의 자궁 안에서, 두 번째 탄생은 오직 ‘의식’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서만 이루어낼 수있다. 마침내 어머니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또 다른 나를 새로이 잉태하는 그날까지. 의식의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무의식의 희망인 아프락사스가 아름다운 날개를 펼치며 비상하는 그날까지. 내가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어 결국 고통에 빠진 나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는 이야기, 내가 나의 멘토가 되고, 내가 나의 스승이 되어 그 누구도 나를 다치게 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데미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