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내 삶의 맛과 멋을 가르쳐준 어머니

이춘아 2022. 2. 20. 07:07

박정희, [나의 수채화 인생], 미다스북스, 2005.

내 삶의 맛과 멋을 가르쳐준 어머니 
(큰딸 유명애. 수채화가 진흥아트홀 관장)

전쟁 후, 나의 어린 시절의 한국은 너나없이 모두 다 가난했다. 옷을 보관할 장롱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어머니는 깨진 큰 독의 안팎을 낡은 광목 이불호청을 잘게 잘라서 발랐다. 그 작업에는 우리 어린이들이 신나게 함께 동참했다. 헝겊으로 발라진 독 겉에는 색헝겊을 오려 붙여 튤립 꽃밭으로 만들었다. 큰 독 위에 중간 독 그 위에 작은 독을 올려놓은 꽃무늬 독은 계절에 따라 바꿔 넣은 옷 보관함이었다. 아름답고 편리한 깨진 독 저장함은 어머니의 수놓은 광목저고리, 조각 천을 무늬 따라 맞추어 누벼놓은 이불 등과 함께 우리 집만의 특별한 물건이었다. 

대식구의 식사 준비로 둘러앉아 이백개씩 빚던 만두, 콩비지 저녁을 위해 찬송 부르며 돌리던 맷돌질, 한 자배기의 감자를 낡은 놋숟가락으로 벗기던 한여름, 어른들 생신에 만들던 단팥 찹쌀떡(한 오백 개는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맷돌질해서 부치던 녹두부침 - 이런 일들을 매일 계속 했을 텐데 주부인 어머니는 씩씩하고 명랑하고 대단히 창의적이었다. 요리책을 들여다보는 법이 없이, 그냥 자기 방법대로 대량의 음식을 만들어 냈는데, 얌전하지는 못했지만 푸짐하고 맛이 있었다. 지금도 맏사위인 나의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장모님의 밥상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시간 맞춰 대식구가 둘러앉아 먹던 매끼 새로 만든 반찬과 밥의 식사로 인해 우리는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부엌의 부뚜막 옆 선반에는 늘 어머니의 탁상일기책이 놓여있었다. 흰 곳이 남아있지 않도록 삽화를 곁들여 빼곡히 적어놓은 메모들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평생 어머니는 책을 읽고 글을 쓰셨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내가 끄적거려 온 그림들을 모두 모아서 [닭장]이라는 제호가 붙은 화첩을 만들었다. 1953년 전쟁 후 처음으로 개최된 유네스코 주최 세계어린이 미술대회에 일등을 해서, 동아일보를 비롯한 매스컴에 유명한 어린이로 알려지게 되었던 그 그림들이다. 그때부터 나의 화가로서의 일생이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내 키보다 훨씬 큰 한국지도를 그렸다. 방학 내내 참고할 책들을 뒤져가며, 지명과 도로, 철도, 특산물 등을 그려 넣었다. 낡은 이불 호청으로 뒤를 바르고 작대를 밑에 말아 붙여서 족자 모양으로 만들어 학교에 제출하고 큰 상을 받았다. 그 덕에 나는 지리부도를 좋아하게 되었다. 대가족을 섬기는 부유하지 못한 주부는, 거의 오십이 될 때까지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지도를 그리며 스스로의 꿈을 딸에게까지 키워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어머니만의 슬기였다. 

우리 다섯 남매는 우리들은 물론이려니와, 우리 아이들까지 어머니가 지어주신 ‘오리지날 핸드메이드’ 옷으로 키웠다. 어머니는 옷의 목 카라나 가슴 등에 직접 삽화를 스케치해서 오버로크 집에 가서 수를 놓아 가지고 옷을 짓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 모든 일을 즐겼다. 무엇을 따라하거나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샘솟듯 솟아나는 창의력에 의해 새롭게 하는 일이므로 늘 신나고 즐거워 보였다. 마르지 않는 창의 샘을 지닌 사람은 진정한 천재가 아니겠는가!

오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조그맣게 느껴지는 어머니를 보며, 돌아가시기 전에 둘이 함께 모녀전을 갖고 싶었다. 진흥아트홀에서 어머니와 나의 그림을 전시하며, 1969년부터 1973년까지 호주 국립대학 유학시절 받았던 어머니의 편지와 우리 다섯 남매의 육아일기 다섯 권을 함께 선보였다. 육아일기가 쓰여진 지 오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으므로 남 앞에 내보여도 실례가 안 될 것 같았고, 그림보다 더욱 아름다운 편지들과 손수 그리고 쓰셨던 육아일기를 친지들에게도 보여드리고도 싶었다. 그 일로 인해 어머니의 육아일기는 KBS 일요스페셜에 의해 방영되었고, 또 ‘박정희 할머니’라는 호칭으로 이곳저곳 불려 다니고 글도 쓰게 되었다. 

어머니의 첫 자식인 나를 나 스스로 관찰해볼 때, 나는 더없이 평안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이유는, 어머니는 나에게 절대로 강요하는 것이 없었고, 효도라는 미명하에 군림하거나 무례하게 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삶의 길에서, 어머니와 나는 선배와 후배이며, 동행자일 수 있었다. 서로 예의바른 이웃으로 필요한 만큼의 관심을 갖고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더 없이 깨끗하고 멋있다. 이것이 환갑이 된 내가 팔십삼 세의 어머니를 아직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제일 큰 이유이다. 나도 어머니처럼 삶의 그 맛과 멋을 지니고 마지막까지 살고 싶고, 살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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