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솜씨를 대물림하다
소대헌 집안의 음식 솜씨는 손끝으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책으로 기록되어 전해졌다. [주식시의(酒食是義)]와 [우음제방(禹飮諸方)]이 그것이다. 이 두 책은 어느 한 사람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여러 대에 걸쳐서 기록된 것이다.
송봉기 선비박물관장의 5대주인 지돈령부사 송영로(1803~1881)의 부인 연안 이씨(1804~1860)가 처음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여성들을 위한 책이었기에 한글로 되어 있다. 사어 이현응의 따님인 연안 이씨는 소대헌 종가에 시집와서 시댁의 음식을 하나하나 익혀가며 이 책들을 기록했다. 그 뒤로 며느리들이 손끝으로 전수받은 음식 솜씨를 이 책에 하나 둘 덧붙여, 지금은 100가지가 넘는 음식과 술 만드는 법이 실려 있다.
[주식시의]는 가로 14.5센티미터, 세로 25센티미터의 40장 분량 필사본이다. 구기자주를 만드는 법부터 송순주를 만드는 법까지, 음식과 술 만드는 법 99가지가 실려 있다.
이 책에는 음식과 술, 김치를 만드는 법 말고도 ‘아기 배고 탈 있으면 약 쓰는 법’ ‘산모 젖 내는 법’ 등의 임산부 건강 비결도 실려 있어 비단 음식 솜씨만이 아니라 생활의 지혜를 전수하는 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반 가정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었던 음식 재료들이 망라되어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가 음식의 진수를 엿볼 수 있다.
가로 18.5센티미터에 세로 32.3센티미터로 [주식시의]보다 큰 [우음제방]은 열다섯 장 분량의 필사본이다. 솔국주를 빚는 법부터 백일주를 빚는 법까지, 총 24가지의 술 만드는법이 실려 있다. 본문 첫 장에 ‘각색술방문’이라는 제목이 따로 있어, 책 전체가 술 만드는 법으로 이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소대헌 집안은 음식 솜씨만 뒤어난 것이 아니라 음식 인심도 후했다. 이 집안에서 어려운 친지들에게 양식과 장을 자주 나눠준 이야기가 [덕은가승]에 실려 있다.
친척과 친구를 구제하는 것은 우리 집안의 오래된 규율인데, 동돈공과 지추공이 이를 독실히 지켰다. 친척 가운데 양식이 없거나 장이 없는 이들이 마치 자기 것 같이 가져다 썼다. 간성공 부인 신씨가 언제나 장을 열댓 항아리 담아 넉넉히 쓸 밑천을 삼았다.
이 집안의 현 종부 윤자덕 여사는 소대헌가의 며느리들이 사용한 돌절구와 나무절구, 맷돌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예전의 음식 맛을 내고 있다.
술은 기본적으로 제사와 손님 접대를 위해 담그는 것이었지만, 호연재는 이따금 자신이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술을 마시는 시간은 엄격한 부녀자의 규범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지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술 마시고 나서 지은 시를 보면 호연재의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술을 마시면 자신의 호같이 호연해졌다.
'취작(醉作)’
취하고 나니 천지가 넓고
마음을 여니 만사가 그만일세.
고요히 자리에 누웠노라니
즐겁기만 해 잠시 정을 잊었네
호연재 후손들이 빚어 마시던 술 가운데 소나무 순으로 만든 송순주가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으며, 송순주의 양조 비법을 전수받은 종부 윤자덕 여사가 기능보유자로 선정되었다. 이 집안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늦봄에 송순주를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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