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란 무엇인가?
우리의 고지도와 서양의 과학과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고지도를 본다면 캐어낼 수 있는 의미는 그다지 크지 않다.
고지도는 과학의 영역뿐만 아니라 역사의 기록이며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 된다. 단순히 지리적 실체를 표현하고 있는 것을 넘어 그 시대, 그 지역에서 사았던 인간들의 신념과 가치체계, 더 나아가 주변 세계에 대한 꿈과 희망도 아스라이 스며 있다. 이처럼 고지도는 과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 속에서 탄생되며 지역간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고지도는 당대의 과학과 예술, 그리고 사상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고지도를 읽는 데에는 세심한 주의가 팔요하다. 고지도는 다른 문자 언어에 비해 그래픽 언어적인 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정교한 판독 지식 없이도 접근이 가능하다. 특히 산수화처럼 그려진 그림지도는 누구든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고지도 또한 모양, 크기, 방위, 위치, 상호관계의 2차원적 조합으로 이루어지고, 한 사회의 가치와 이념에 기초하여 표현되기 때문에 제작의 목적, 제작방법, 이용의 측면에 대한 정교한 이해가 아울러 필요하다. 추상의 수준이 높은 세계지도, 각종의 기호로 표현된 목판본 전도 등은 이러한 예에 해당한다.
동아시아의 문화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지도 제작이 이루어졌지만 현존하는 지도들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들이다. 우리나라의 고지도 역시 다른 문화요소처럼 대외적인 교류를 통해 발전되어 왔지만 우리 나름의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전국으로 뻗어내린 많은 산줄기, 그 사이를 흐르는 하천이 서로 얽혀 이루어진 국토는 독특한 지도문화를 배태시킨 토양이었다. 그리하여 이웃의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우리만의 특색있는 지도들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지도들은 현대의 지도 못지 않게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지역간 문화교류와 당시인들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세계지도, 국토에 대한 인식체계가 반영된 전도, 지방행정구역인 부 목 군 현을 그린 일종의 고을지도에 해당하는 군현지도, 왕권을 상징하는 장소인 도성을 그린 도성도, 국방이라는 군사적 목적으로 제작되는 관방지도 등으로 크게 분류된다. 이 외에도 풍수지리의 관념에 입각한 산도, 여행할 때 이용했던 작은 휴대용 지도, 궁궐의 배치를 그린 궁궐도, 하늘의 별자리를 그린 천문도, 토지의 소유관계를 경계로 표시한 지적도 등 실로 다양한 유형의 지도가 제작되었다.
전통시대에는 지역에 대한 정보가 국가기관이나 관료들을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기관에 의한 지도제작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러한 경우 국가행정이나 군사적 목적으로 제작했던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부 뛰어난 민간의 지도제작가를 중심으로 정교한 지도들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민간의 지식인들은 여행이나 역사공부에 이용한 지도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특히 지도를 회화와 같은 예술작품처럼 감상의 대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유형의 고지도들은 현대 지도처럼 과학적 측량에 의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당시 삶터가 지녔던 개성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표현해 내고 있다. 딱딱한 기호와 도형으로 이루어진 현재 지도에서 맛볼 수 없는 색다른 묘미가 옛 지도에 스며 있는 것이다. 특히 한폭의 그림과 같이 묘사된 지도는 땅이라는 물리적 실체를 뛰어넘어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작은 우주로서 과거 삶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옛 지도는 골동품과 같은 유물이 아니라 과거 세계를 여행하는 일종의 타임 머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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