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종가집 특유의 정서와 체온이 담긴 보은의 선씨댁

이춘아 2022. 3. 5. 23:50


신영훈 글. 김대벽 사진, [한옥의 향기], 대원사, 2000.

종가집 특유의 정서와 체온이 담긴 보은의 선씨댁

충청북도 보은군 외속리면에는 큰 살림집이 있다. 이 종가집은 그 장대한 규모와 꾸밈으로 종가집 특유의 정서와 체온을 느끼게 한다. 아울러 요즘 집의 평면 구성이 이미 우리의 한옥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던, 옛것의 연장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보은에서 속리산으로 신작로를 차로 달린다. 오른편으로 삼년산성을 끼고 가다 보면 법주사로 가는 말티고개 어귀가 된다. 우리는 그 길로 가지 않고 오른편의 평탄한 길을 택한다. 한참을 가자 들이 열리는 첫머리에 속리산으로 들어가는 길의 푯말이 보인다. 오던 신작로를 따라 곧바로 가면 화령이 나온다. 경상북도 상주 땅인 화령은 영남으로 가는 큰 고개의하나다. 

길을 꺾어 가면 오른편으로 우거진 숲이 보인다. 잘 자란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고 그 숲속에 큼직한 기와집이 있다. 양화다리 건너 숲속 길을 따라 대문을 찾아가면 대문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정려각 비석이 하나 서 있다. 

비석에는 ‘관선정기적비’라 쓰고 잔글씨로 비문을 적었다. “속리산 남쪽 만세동에서 발원한 물이 장내리 앞에 이르러 두 갈래로 갈라져 500미터쯤 흐르다가 다시 합류하여 그 중간에 작은 섬을 이루었으니 이곳은 충청북도 보은군 외속리면 하개리다. 1893년 동학교도 수만 명이 집회 시위하여 관권에 항쟁한 사적지다. …중고양식의 거옥이 있으니 이는 곧 고 남헌 선생 선공 정훈이 1920년에 세운 주택이다. 공은 본시 전라남도 고흥 출신이다. 시조 어사 윤지 이후 전라남도 각지에 세거하며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공의 선친 영홍이 몸소 거만의 가업을 일으켰다.”

영홍공은 나라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여기에 터전을 정한 뒤 육영사업에 전념하였다. 집의 동편에 가숙인 관선정을 열고 보은향교를 교사로 삼아 학자를 초빙하여 유능한 인재들을 육영하였다. 입학이 허락되면 학비와 침식 일체를 부담해 주었다. 수년 동안 공부하는데 오래 학문한 사람은 10년 동안을 지속하기도 하였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사태가 악화되면서 이 사업은 중단된다. 

이 육영사업으로 성장한 인재가 적지 않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우리나라에서 한문에 가장 조예가 깊다고 명성이 도저했던 고 임창순 선생이다. 이분은 기회 있을 때마다 선공의 후덕한 인격에 대하여 자랑하곤 하셨고, 소나무 숲속의 한옥을 국가의 중요민속자료 제134호(1984년 1월에 지정)로 지정되게 힘써 노력하기도 하였다. 선공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일 것이라고 주변에선 말들을 하였다. 

이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벌써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집주인 선병국 선생이 며느리 맞는 잔치를 하고 있었다. 넓은 마당에 차일을 치고 벌써 사흘째나 잔치를 계속한다고 하였다. 그때의 며느리가 지금 시어머님을 모시고 그 큰 집을 건사하고 있다. 시어머님도 곱상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시집오셨다고 한다. 며느님도 서글서글하다.음식 솜씨가 놀랍다고 한다. 이번에 다시 찾아뵈었을 때도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역시 많은 살림을 겪은 큰댁의 솜씨는 다른 바가 있다고 음식을 맛본 사람들은 다 칭송하였다. 

어느 때인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과에 갔더니 당시 미술과장이시던 최순우(국립중앙박물관장 역임)선생께서 당시 이름 높던 건축가 김수근선생과 보은의 선씨댁을 보고 왔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 살림집에도 이만큼 장대한 것이 있다는 점이 놀랍더라고 하셨다. 김수근 선생도 감격하더라고 전하셨다. 비록 1920년대에 창건된 것이긴 하나 그 시대를 대표할 만하니 마땅히 보존하도록 힘써 주선해 보라고 하셨다. 그 이후로 뵐 때면 선씨댁의 안부를 묻고 보존이 잘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사랑채의 구조는 평범한 듯하면서도 요소마다 아름다운 부분이 있어서 그런 맛을 한번 보게 되면 집을 두루 요모조모 살피게 된다. 그만큼 정성스럽고 쓸모 있게 하느라 애를 썼다. 안채는 대문의 동편에 있는 마당 끝의 중문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이 중문을 솟을대문처럼 거창하게 만들었다. 다른 집에서는 보기 드문 구조다. 중문에는 곳간이 이어져 있다. 곳간은 안채를 바라다보면서 북쪽으로 한참이나 계속되다가 편문이 있는 끝 칸에서 꺾인다. 외양간과 김치광이 안채를 향해 이어져 있다. 행랑채에 김치광을 두는 일은 드물다.김치광은 토고로 구조하였다. 

안채도 평면 구성이 H자형이다. 이 평면은 길운을 가져다 준다고 해서 예부터 좋은 유형으로 일컬어 왔다. 안채는 사랑채와 달리 서향하였다. 이런 포치의 의도도 흥미 있는 부분이다. 대청은 사랑채만큼 넓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집에 비하면 퍽 넓은 편이다. 이 집을 지은 대목은 상당한 식견이 있고 안목을 구비한 재주 있는 사람이었던 듯싶다. 정교한 구조에서 대들보를 가구하였는데 대들보는 놀랍게도 구불거린 용목을 채택하였다. 천연스러움의 도입인데 이는 웬만한 대목은 겁을 내고 쉽게 다루지 못하는 부분이다. 

안방 아랫방 아랫목 뒷벽엔 벽장이 있다. 벽장문에 옛날 글씨를 붙였다. 선비댁의 규방답게 꾸며졌다고 할 수 있는 분위기다. 아랫목에 앉으면 대청으로 통하는 분합문이 보인다. 가깝게 문이 있다. 그만큼 방의 넓이는 안존하다. 그러나 윗방 쪽으로 바라다보다가 샛장지를 열면 윗방까지가 훨씬 넓게 바라다보인다. 그 방의 뒷창을 반만 열면 바로 뒤꼍의 장독대까지 내려다보인다. 샛장지는 네 짝의 맹장지이다. 창호지로 안팎을 싸발랐다. 그리고 아랫방 쪽면에 시구를 쓴 대련을 붙였다. 인격 함양을 위한 방이었다. 샛장지 저쪽의 윗방에도 벽장과 다락문이 달려 있다. 아주 쓸모 있는 구조다. 

요즘 집의 평면 구성은 이미 우리의 한옥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던 것에 불과하고 그 바탕에서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오늘의 현대 건축이 옛것의 연장이며 그것이 세계적인 성향과도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러운 자긍심을 지니게 된다. 보은의 선씨댁은 바로 그 점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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