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지도의 변천과정

오상학, [옛 삶터의 모습, 고지도], 국립중앙박물관 편. 2005.

한국 고지도의 변천과정

우리나라의 지도제작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요동성 지도, [삼국사기]의 기록들은 일찍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지도제작이 행해졌음을 보여준다. 전통시대 지도는 국가 통치의 기본적인 자료가 되기 때문에 국가기관에서는 지도제작을 통해 국토의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특히 전쟁과 같은 유사시에 지도는 군사작전의 필수적인 수단이기도 했다. 이러한 지도 제작의 전통은 고려왕조를 거쳐 조선왕조로 이어졌는데, 조선초기부터 지도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조선의 건국초기인 1402년에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라는 세계지도가 국가적 사업으로 제작되었다. 이 지도는 당시 제작도니 세계지도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뛰어난 지도 중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이슬람 세계의 지리지식이 반영되어 있어서 동서 문화교섭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도이다. 이 지도는 이후 계속 필사되면서 여러 사본들이 제작되었다. 

15세기에는 세계지도의 제작과 함께 국토의 측량을 기초로 한 전도의 제작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세종 때에는 각 군현간의 거리측정이 이루어지고 백두산과 한라산의 위도측정 등을 통해 보다 과학적인 지도제작의 기틀이 확보되었다. 정척(1390~1475)은 1451년에 함경도와 평안도에 해당하는 양계 지방의 지도를 완성하였고, 1463년(세조9)에는 양성지(141~1482)와 함께 [동국지도]를 완성하였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방역지도]는 바로 [동국지도] 계열에 해당하는 지도이다. 

아울러 이 시기에는 국가적 사업으로 지리지가 편찬되었는데 중국의 [대명일통지]의 체제를 모방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이 대표적이다. 이 책에는 [동람도]라고 하는 부도가 수록되어 있는데 내용은 비교적 소략하지만 이후 필사되면서 민간에 지도가 널리 유포되는 계기가 되었다. 

양대 전란을 겪은 후 조선에서는 군사적 목적의 지도가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특히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한 국방대책이 강구되었는데, 이이명(1658~1722)의 주도하에 제작된 [요계관방지도]는 요동, 만주 일대의 최신 정보를 수록한 군사지도였다. 또한 압록강, 두만강 유역의 접경지역을 상세하게 그린 [서북피아양계만리지도]류의 지도들도 계속 제작되었다. 아울러 해안의 방어에 필요한 연안 해로도와 해안방어기지인 진보를 상세하게 그린 지도들도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17세기 이후로는 중국을 거쳐 서구식 세계지도가 도입되어 실학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마테오 리치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는 최석정(1646~1715)의 주도하에 조선에서 다시 제작되었다. 페르비스트의 [곤여전도]도 일찍 도입되어 여러 학자들에게 열람되었는데, 1860년에는 다시 목판본으로 간행되기도 했다. 

18세기 중엽에는 조선후기 지도사에서 분수령이 되는 정상기(1678~1752)의 [동국지도]가 제작되었다. 정상기는 당대까지 이어진 지도제작의 성과를 기초로 국토의 모습을 정교하게 그려냈다. 이전 시기 지도에 왜곡되게 그려졌던 북부지방을 사용하여 거리와 방향이 정확한 지도를 만들었다. 이후 동국지도는 정상기의 후손과 정후조(1758~1793)와 같은 뛰어난 지도학자에 의해 수정, 보완되면서 대축척 전도의 효시를 이루었다. 

영조와 정조 대를 거치면서 지방의 파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고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군현지도가 제작되었다. 고을의 모습을 회화적 형식을 가미하여 그린 지도뿐만 아니라 방격을 사용하여 인근 고을과 동일한 축척으로 그린 군현지도도 있었다. 또한 왕권을 상징하는 도성을 정교하게 그린 [도성도]도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도성도는 진경산수화풍으로 지형을 묘사하면서 왕궁과 같은 권위적 건조물을 부각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지도제작의 흐름은 소산자 김정호(1804?~1866)에 이르러 완결된다. 김정호는 1834년 전국 지도책인 필사본 [청구도]를 제작하고 이어 1861년에는 조선지도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는 [대동여지도]를 목판에 새겨 간행하였다. [대동여지도]는 이전 시기 지도학의 성과를 기초로 다양한 지도학적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한 실용적 지도이면서도 판화적인 예술미까지 지니고 있다. 

1876년 개항 이후에는 일본을 거쳐 근대적 지도제작술이 유입되어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도제작이 행해졌다. 서울을 중심으로 실제 삼각측량이 행해졌고 이를 기초로 실측지도가 제작되었다. 그러나 1910년 일본에 병합되면서 조선의 독자적인 근대지도제작의 흐름은 단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