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무령왕릉 관재 금송

이춘아 2022. 4. 17. 00:37

박상진, [부여의 나무 이야기], 부여문화원, 2017.

무령왕릉 관재 금송

1971년 7월5일, 해방 이후 최대의 고고학적 발굴이라는 백제 제25대 무령왕릉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충청남도 공주의 송산리 고분군에서 배수로 작업을 하던 한 인부의 삽 끝에서 ‘처녀분’ 상태로 1,5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갑자기 다가왔다. 다시 출토된 유물은 108종 3,000여 점에 이른다. 금관 장식, 금제 장신구, 나중에 재질이 주목으로 밝혀진 두침 등을 비롯하여 무덤의 주인을 알려주는 글이 새겨진 두 장의 지석도 함께 발굴되었다. 

동시에 왕과 왕비의 시신을 감싸고 있던 목관재도 다량 출토되었다. 그러나 시꺼먼 옻칠이 되어 있고, 으스스하기까지한 이 목관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은 오히려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발굴 보고서에는 그냥 ‘밤나무’라고 기록되었고, 공주박물관의 지하 창고에 들어가 다시 깊은 잠에 들 채비를 하고 있었다. 

20년이 지난 1991년,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관재 조각을 입수하여 현미경으로 세포검사를 할 기회를 얻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일본 특산인 ‘금송’임을 밝혀낼 수 있었다. 물론 금송은 화석으로 보면 마이오세(1,000만 년 ~2,000만 전) 전에 한반도 남부에도 자생한 적이 있지만, 이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따라서 백제시대의 한반도에는 전혀 자라지 않던 나무이다. 이름에 소나무를 뜻하는 송이 들어 있어서 소나무의 한 종류로 이해하는 분들도 있지만 식물학적으로 소나무와는 관계가 없다. 금송은 세계의 다른 곳에는 없고 오직 일본열도의 중남부에만 자라는 희귀 수종이다. 늘 푸른 침엽수로 원산지인 일본에서는 키 20~39m, 둘레 두세 아름에 이르는 큰 나무다. 바깥 모양이 긴 원뿔처럼 생겼고, 가지 뻗음과 잎이 독특하여 아름답다. 우리나라에서도 중남부지방에 정원수로 가끔 심고 있다. 잎은 두꺼우며 선형으로서 너비 3mm 정도로 짙은 녹색이고 윤기가 있다. 끝이 파지고 양면 중앙에 얕은 홈이 있으며 수십 개씩 돌려나기 한다. 솔방울은 긴 타원형이고 위로 향하며 비늘은 편평하고 둥글며 윗부분은 젖혀진다. 

금송 목재는 습기에 강하여 잘 썩지 않고 오래가므로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고급 목관과 물통, 나무다리 등의 재료로 많이 쓰였다. 일본의 고분시대(3세기 전반~7세 후반) 전기의 전방후원분의 수혈식 석실에서 나온 거대한 목관의 일부는 금송 거목의 통나무를 파내고 만든 것이 많았다고 한다. 일본의 고분시대와 시대가 겹치는 무령왕릉의 관재도 금송이었다. 무령왕(재위 501~523)은 어릴 때 일본에서 자랐다고 알려져 있고 [일본서기]에도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유난히 일본과 관계가 깊은 임금이다. 관재가 일본에서 가져온 금송이라는 사실은 사료가 부족한 백제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였다. 역시 백제시대 무덤인 익산 쌍릉에서 출토된 관재도 금송이다. 당시 일본과의 활발한 교역을 짐작할 수 잇는 실증적 자료이다. 

일본인들은 금송을 '고우야마끼高野槇'라고 한다. 고우야산(高野山)에 많이 자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은 백제와 교류가 많았던 나라 지방과 가깝고, 금송의 일본 이름이 그들의 일반적 발음인 ‘타카노마끼’가 아니라 우리 식 발음인 ‘고우야마끼'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잃어버린 왕국, 백제의 비밀을 조금은 알고 있을 것 같은 금송이 우리에게는 신비롭기만 한다. 

공교롭게도 옛 국립공주박물관(현 충남역사박물관)의 앞뜰에는 일제강점기인 1940년 경에 심은 세 그루의 금송이 자란다. 그들의 선조 나무가 역사의 영겁으로 사라져버린 무령왕의 시신을 영광스럽게 감싸고 있었다는 가문의 영예를 아는지 모르는지 단아한 모습으로, 2004년 박물관이 옮겨가기 전까지 무엄하게 파헤쳐 전시되고 있는 대왕의 유물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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