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백제의 후손 나무

이춘아 2022. 4. 15. 22:25

박상진, [부여의 나무 이야기], 부여문화원, 2017.

백제의 후손 나무

[잃어버린 왕국]. 1986년에 출간한 최인호 작가의 소설 제목이다. 비운의 고대 왕국 백제를 두고 이보다 더 사실적으로 표현한 말은 없을 것이다. 나무가 전공인 필자는 나당 연합군에 나라가 짓밟히면서 모든 문화도 역사도 사라져버린 백제 왕국의 작은 실마리라도 나무를 통하여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왔다. 기회는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1992년 무령왕릉 발굴 20주년 세미나에서 출토된 목관재의 재질분석을 맡아 발표하면서다. 이 목관재가 일본 열도에만 자라는 금송임을 밝히는 것을 시작으로 이후 익산미륵사지, 궁남지, 능산리 고분 등의 출토목재를 분석하면서 백제의 나무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다행히 2013년부터 부여문화원에서 주관하는 ‘명사와 함께하는 백제역사문화탐방’의 일환으로 부여 문화유적지의 고목나무를 둘러볼 기회를 갖게되었다. 군민들과 함께 돌아보면서 부여의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라 사라져버린 백제의 후손 나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올해는 부여군의 배려로 나무 탐방과 더불어 부여군 소재 고목나무와 문화재 지역 숲을 조사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부여의 곳곳을 누비면서 만나는 나무마다 살아온 발자취를 돌아보고 지나온 역사의 흔적을 되뇌어 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큰 기쁨이고 영광이었다. 비록 10여 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과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전체를 모두 조사할 수는 없었던 점이 아쉽지만, 부여의 중요한 고목나무와 문화재 지역 숲 40여 곳을 엄밀히 선정하여 부여 나무의 대표가 될 수 있게 했다. 

현장을 여러 차례 답사하여 나무의 키와 둘레 등 생물학적인 특성을 먼저 조사하고 나무의 나이와 얽힌 전설까지 가능한 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했다. 고목나무나 문화재 숲은 믿을 만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간단한 전설이라도 전해지면 다행인 경우가 많다. 이번 조사에서 수집된 기초자료와 문화재 자체의 기록을 바탕으로, 나무의 생태적인 특징을 비교하여 이야기를 끌어내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필자가 다소 일방적으로 추정하거나 불충분한 근거로 논리를 전개하기도 했음을 밝혀둔다. 그러나 변함없이 한자리를 지키면서 대를 이어 살아온 생명체는 오직 나무밖에 없으므로, 나무에 얽힌 이야기들이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징검다리 자료가 되리라고 믿는다. 

보고서를 겸한 이 책은 전체 4부로 구성하였다. 먼저 1부는 부여를 대표하는 문화재 고목나무, 2부 부여 문화재와 함께한 숲 나무, 3부 부여 땅의 대표 보호수 및 고목나무로 나누어 실제 조사결과를 기술했다. 이에 더해 4부 백제 유적에서 출토되는 나무에서 부여를 비롯한 백제 유적의 발굴 과정에서 실제로 출토된 나무의 특징에 관한 내용을 추가했다. 대부분 일본 원산의 나무가 많아, 백제와 일본과의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는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7년 12월 
박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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