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황석영의 [장길산]

이춘아 2022. 5. 8. 01:11

김훈 박래부, [김훈 박래부 기자의 문학기행 1], 한국문원, 1997.

황석영의 [장길산]

(작품 줄거리)
조선조 효종 말기, 한 도망 여비의 몸을 받아 길에서 태어난 어린 핏덩이는 광대 장충의 구원으로 재인 마을 광대로서 양육된다. 그가 장길산인데, 길산은 자라면서 같은 재인 마을의 역사 이갑송, 송동상단의 행수 박대근, 구월산 화적인 마감동, 오만석 들과 사귄다. 창기였다가 버려진 묘옥과 정분을 맺은 길산은 해주 간상배 신복동 일파를 징치하다 붙잡혀 도사공 우대용과 함께 해주옥 사형수가 된다. 박대근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한 길산은 양부모의 뜻을 어길 수 없어 누이동생 봉순과 성혼을 하는데, 이때 박대근 이갑송 우대용 마감동 오만석 소금장수 강선홍, 선비 김기 들과 형제의 의를 맺는다. 그 뒤 길산은 뜻하는 바 있어 금강산에 은거한 고승 운부대사를 찾아 길을 떠난다. 

길산이 해주 감영에서 처형된 줄로 알고 있는 묘옥은 자결하려다 승려 여환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달근의 사당패에 섞여 남쪽으로 흘러간다. 여주 도장 이경순은 사당패에 섞인 묘옥에게 정을 느끼고 행중을 따라다니다 살인을 저지르게 되어 그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이경순을 다시 만난 묘옥은 그와 부부를 이룬다. 

길산은 운부의 지도를 받으며 차츰차츰 ‘백성의 나라’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다지게 된다. 그는 금강산을 나와 다시 낭림산맥 운봉사 깊은 골에서 홀로 수도를 계속하며 가득 찬 인간으로 성숙해 간다. 

숙종 10년 봄, 전국을 휩쓴 대기근으로 백성의 울음이 나라 안 곳곳에 가득 차게 되자, 길산은 기민 구휼을 위해 자비령 두령 최홍복을 수하로 끌어들이고 곳곳에서 관창과 부호를 털어 잡초같이 버려진 기민들의 목숨을 건진다. 이에 비로소 장길산의 이름이 백성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해서 감사 이세백은 출중한 무사를 뽑아 토포에 나서나 실패하고 만다. 

조정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권세 다툼이 끊임없이 계속되어 백성들의 원한과 분노는 불길처럼 타오르고 한양성내는 깊은 혼란에 빠진다. 부패한 관리와 무도한 양반을 쓸어내리라고 일어난 검계와 살주계가 부호와 대갓집을 들이치자 포청에서는 포도종사관 최형기로 하여금 이를 토벌하게 한다. 

정묘 사월 초닷새, 구월산 오진암에서는 역질과 흉황과 침학의 고통에서 백성을 구하고자 다짐하는 큰 물길의 흐름이 비롯된다. 자비령의 장길산을 중심으로 한 활빈도, 금강산 운부대사가 이끄는 승병, 해서 무계와 근기 여환을 중심으로 한 미륵교도가 결속을 이룬 것이다. 

미륵 신앙이 고개를 들고 잔류한 검계와 살주계가 미륵교도들과 결을 맺는다. 백성들 간에는 발세에 이르러 약하고 가난한 자들이 살아 남고 권세가와 왕조가 멸한다는 괴서가 나돌며, 미륵이 도래하여 세상을 주장하리라는 용화세계를 염원하는 신앙이 불길처럼 번져 나간다. 

장길산은 언진산 일대에 광산을 열고 곳곳에 주막을 만들어 상로를 연결, 상단 조직을 이룸으로써 민폐를 끼치지 않고 관군과 맞설 자금을 조달한다. 고달근은 관가에 검거되자, 장길산 일당을 밀고한다. 이에 조정은 아연 긴장하여 무관 최형기를 다시 기용, 장길산을 추적케 한다. 그는 길산의 일당이 은둔한 곳을 알아내 포위 급습하지만 길산은 이미 빠져나가고… 그 뒤 길산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역사는 아무리 더럽고 불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마침내는 선을 이루어 내리라는 믿음 위에 소설 [장길산]은 펼쳐진다. 산골짜기와 평야를 실핏줄처럼 흐르는 시냇물들이 모여 큰 강을 이루듯 [장길산]은 시대의 후미진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모이고 쌓여서 장강대하를 이룬다. 그 큰 소설의 맨 앞과 맨 뒤에는 슬프고도 힘찬 한 토막의 이야기가 깃발처럼 매달려서 나부끼고 있는데, 그 앞깃발은 황해도 ‘장산곶의 매’이고, 뒤깃발은 전남 화순의 운주사 미륵불이다. 장산곶의 매는 꿈꾸기 때문에 흘려야 하는 피를 옳게 흘리는 자유의 매인데, 장길산의 넋이 되어 국토의 구석구석을 퍼덕이며 날다가 운주사에 이르러 미륵불을 이룬다. 

서울에서 장산곶 마루까지는 갈 길은 멀지 않으나 행선이 끊겼으므로, 취재팀은 북소리나는 장산곶에 가지 못하고 전남 화순 운주사로 간다. 화순 남쪽에서 일어서는 산줄기는 두 갈래로 갈려, 그 왼쪽 줄기는 보성에, 오른쪽 줄기는 장흥에 닿는다. 운주사는 그 산맥이 찢어져 나가는 천불산 계곡에 들어서 있다. 

화순군 도암면 중장터에서부터 이 천불산 계곡으로 올라가노라면, 봉우리마다 전설과 신화를 안고 있는 산들이 파도처럼 출렁거리면서 이어지는데, 그 계곡 양쪽에 70구의 미륵불상과 18기의 석탑이 흩어져 있다. 논두렁이나 밭고랑 또는 바위틈을 비집고 들어선 그 미륵불상들은 불당 안에 모셔져 공양을 받는 불상이 아니고, 사람들이 일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삶의 현장에서 이룩된 불상들로서 그 하반신은 모두 땅 속에 튼튼히 뿌리를 박고 있는 매몰불이다. 

이 미륵불의 계곡에 들어서면, 소설 속에 나오는 산지니 마감동 이갑송 이경순 운부 여환 그리고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재인마을 식구들이 갑자기 살아나와서 어서 오라고 손을 내미는 듯한 느낌에 빠진다. 그들은 모두 황석영이 소설 속에서 재창조해 낸 인물들이지만, 묘옥과 경순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숙종 시대의 공초에 기록된 실존인물임을 알 때, 이 운주사 계곡의 못생긴 미륵불들은 소설 [장길산]과 함께 더욱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한국일보에 지난 1975년부터 1984년까지 장장 10년에 걸쳐 연재된 [장길산]의 바탕은 미륵 신앙이다. 

장길산은 안성 청룡사의 승려 운부에 의하여 자신이 세우기를 꿈꾸는 ‘새 세상’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확연히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미륵보살의 ‘용화세계’이다. 석가세존은 그 재세시에 수많은 제자들 중에서 특히 미륵을 총애하였다. 미륵은 젊고 늠름한 청년보살이었다. 석가세존은 젊은 미륵에게 인간과 역사의 미래를 맡겼는데, 미륵은 56억만 년 후에 도솔천으로부터 인간 세상에 내려와 석가세존의 이상인 용화세계를 인간의 땅 위에 이루리라 하였다. 석가는 [미륵삼부경]을 통하여 그의 놀라운 상상력으로 그 용화세계의 모습을 인간에게 설명하였다. 

운주사에 얽힌 전설과 민담들은 모두 [장길산]의 바탕에 연결되는 것들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 오른쪽 야산 꼭대기여 누워 있는 한 쌍의 남녀 와불이다. 그 부부 미륵은 다리를 산 위쪽으로 향하고 머리를 낮은 쪽으로 두어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자세로 처박혀 있는데, 전설에 세상이 바르지 못하므로 이 미륵도 거꾸로 처박혀 있는 것이며 이 돌부처가 바로 일어설 때 용화세상이 되리라 했으니, 어느 천 년에 이 돌부처는 일어설 것인가. 거꾸로 누운이 돌부처의 안타까움은 ‘장간곶 매’의 이야기에 나오는 의병장의 죽음과도 흡사하다. 

‘폭풍이 몰아치는 날 서낭 나무는 둥치를 떨고, 내부에서는 구렁이가 꿈틀거리는데, 가지에 걸린 매가 날지 못하여 깃을 퍼덕이는 안타까운 여러 밤이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장길산은 흔적도 기록도 없이 역시 속으로 실종되고 만다. 장길산, 그는 도대체 무엇을 이룩하고 간 것인가. 사랑도 혁명도 용화세상도,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길에서 태어난 장길산은 사랑과 용화세상으로 가는 ‘길’을 자신의 전 생애로 가르쳐 주고 갔다. 와불은 아직도 산 위에 처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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